[전범선의 풀무질] 서울에 라이브클럽을 허하라

한겨레 2021. 4. 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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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7일 서울 홍대 앞 라이브클럽 '네스트나다'에 마포구청 공무원들이 들이닥쳤다.

라이브클럽은 공연장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나는 네스트나다를 비롯한 라이브클럽에서 숱하게 공연해봤지만, 한번도 식당에서 노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렇게라도 구차하게 내가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90년대 말 라이브클럽 합법화 운동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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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의 풀무질]

전범선의 풀무질

지난 2월27일 서울 홍대 앞 라이브클럽 ‘네스트나다’에 마포구청 공무원들이 들이닥쳤다. 방역지침 위반이라며 공연을 중지시켰다. 관객 입장 3분 전이었다. 네스트나다는 2월15일 구청에 문의하여 공연이 가능한지 확인했었다. 공무원들이 제시한 방역지침은 금시초문이었다. 사전 공지도 없이 이러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의했지만, 영업정지가 두려워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생계가 어려운 음악인들은 허탈하게 귀가했다.

뮤지컬, 연극, 클래식 음악은 되는데 대중음악은 왜 안 될까? 다른 장르와 달리 대중음악 공연은 ‘모임, 행사’로 분류되어 있어 100인 이상 집합 금지다. 라이브클럽은 공연장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영세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네스트나다 같은 라이브클럽은 일반음식점이다. 공연법이 아닌 식품위생법의 관리를 받는다.

마포구청이 공연을 강제해산한 근거는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조정에 따른 유흥시설 및 음식점 등 방역조치’였다. 유흥시설 5종(유흥주점, 감성주점, 콜라텍, 단란주점, 헌팅포차)과 음식점 및 카페를 관리하는 내용이다. 식당에서의 좌석 거리두기, 이용시간 제한 등을 안내하다가 갑자기 ‘영업장 내 설치된 무대시설에서 공연행위 금지’라고 나온다.

나는 네스트나다를 비롯한 라이브클럽에서 숱하게 공연해봤지만, 한번도 식당에서 노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일반음식점도 운영해봤지만, 한번도 영업장 내에 무대시설을 설치해서 공연을 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라이브클럽과 일반음식점은 너무나도 다르다. 그런데 왜 법은 같다고 하는가? 음악을 연주하고 듣고 즐기는 행위가 어째서 식품위생법의 관리를 받는 것인가?

마포구청의 답변이 압권이다.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이 공연장이다. 일반음식점에서 하는 칠순잔치 같은 건 코로나19 전에야 그냥 넘어갔던 거지, 코로나19 이후에는 당연히 안 되는 것 아니겠냐.” 황당하기 짝이 없다. 여태껏 내가 해왔던 공연은 “일반음식점에서 하는 칠순잔치 같은 것”이었나? 공무원을 탓할 생각은 없다. 도대체 어떤 법을 집행하길래 이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가능할까?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별표17 ‘식품접객영업자 등의 준수사항’에 따르면 일반음식점 영업자가 음향 및 반주시설을 갖추고 손님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도록 허용해서는 아니 된다. “다만 회갑연, 칠순연 등 가정의 의례로서 행하는 경우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그래서 “칠순잔치 같은 것”이라는 말이 나왔구나. 라이브클럽에서 나와 관객들이 노래하는 행위를 대한민국은 “가정의 의례로서” 눈감아주고 있었구나.

이렇게라도 구차하게 내가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90년대 말 라이브클럽 합법화 운동 덕분이다. 대중음악계의 요구로 1999년 식품위생법 시행령이 개정되기 전까지 라이브클럽에서 공연하는 예술가는 ‘유흥접객원’이었다. 흥을 돋우고 손님을 접대하는 직원. ‘딴따라’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편견이다.

이 땅의 지배계급은 식당에서 술을 마시며 ‘유흥접객원’에게 성과 음악을 사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기방에 드나들던 양반들이나 룸살롱에 드나드는 사장님들이나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똑같다. 흥을 돋우기 위해 아랫것들이 제공하는 서비스. 미풍양속을 해치는 불건전한 놀이. 라이브클럽이 일반음식점인 이유는 대중음악에 대한 구시대적 관점이 여전히 지배하기 때문이다.

1937년 이서구, 오은희 등 8인의 예술가는 <삼천리>에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글을 기고했다. “아시아 문명도시에는 어느 곳이든 다 있는 딴스홀이 유독 우리 조선에만, 서울에만 허락되지 않는다 함은 심히 통탄할 일로….” 지금도 바뀐 게 없다. 서울에 라이브클럽을 허하라. 나는 식당에서 노래하고 싶지 않다.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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