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에 벚꽃이 피었습니다

한겨레 2021. 4. 4. 16: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봄이다.

어느새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길을 걷다 봄을 알리는 벚꽃을 발견하면 우리는 휴대폰을 들고 팔을 뻗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이제는 꽃을 보던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 공들여 휴대폰 사진첩에 데이터로 저장된 사진과 동영상을 편집하고 보정해서 에스엔에스(SNS)에 올리고 나서야 오롯이 봄을 느낀 기분이다.

해마다 봄이면 나도 팔을 길게 뻗어 휴대폰으로 열심히 벚꽃 사진을 찍는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낯선 기술, 익숙한 일상][낯선 기술, 익숙한 일상]
여의도 벚꽃길에서 모바일기기로 사진을 찍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봄이다.

예년 같았으면 전국 각지에서 봄 축제들이 연이어 열릴 시기이지만, 올해는 대부분의 축제가 취소되거나 예약제로 진행된다고 한다. 하지만 봄은 축제에만 오는 것은 아니다. 봄은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곁에 꽃의 얼굴로 다가와 있다. 어느새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길을 걷다 봄을 알리는 벚꽃을 발견하면 우리는 휴대폰을 들고 팔을 뻗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사진첩 속 내가 찍은 꽃 사진을 보며 ‘봄이구나’ 하며 즐거워한다. 눈으로만 봐서는 본 것 같지 않다. 찍어야 본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꽃을 보던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 공들여 휴대폰 사진첩에 데이터로 저장된 사진과 동영상을 편집하고 보정해서 에스엔에스(SNS)에 올리고 나서야 오롯이 봄을 느낀 기분이다.

꽃이 가득한 풍경이나 유명 여행지뿐만 아니라 공연장이나 유치원 학예회, 결혼식장 피로연 등에서 모두가 한 방향을 향해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는 장면이 이제는 자연스럽다. 많은 사람이 중요한 순간에 휴대폰의 작은 화면을 통해 현장을 바라보고, 디지털 이미지로 저장한다. 휴대폰 속으로 카메라가 들어가고, 그 카메라의 기능이 점점 발전하면서 가능해진 풍경이다.

스마트폰이 상용화하기 전, 세계 최초로 카메라를 내장한 시디엠에이(CDMA) 휴대폰은 삼성이 2000년 출시한 ‘SCH-V200’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휴대폰은 장당 35만 화소로 20장 정도를 찍어 저장할 수 있었다. 동영상 촬영 기능이나 플래시도 없었고 사진 전송도 어려웠으니, 지금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와 비교하기조차 어렵다. 반면 최근 나온 ‘아이폰12 프로’는 1200만 화소에 돌비비전까지 지원하는 카메라를 제공한다. 돌비비전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촬영에 사용했던 기술이다. 즉, 휴대폰의 카메라가 장편 영화를 촬영할 수 있을 정도의 기능을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는 스마트폰 영화제가 열릴 정도로 그 기능은 폰이라는 한계를 넘어섰다. 이제는 전화 통화 기능보다 카메라와 인터넷 기능이 더 중요해진 것 같기도 같다. 그러니 ‘폰’이라기 보다 ‘웨어러블 컴퓨터’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얼마 전 회사 근처 벚꽃길을 산책하던 중 한 친구가 흩날리는 벚꽃을 돌비비전 동영상으로 찍는다고 한참 뒤처져 걸어왔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영상을 에스엔에스에 올렸는데, 용량 제한 때문에 영상의 화질이 떨어져 흩날리는 벚꽃 잎이 기대한 만큼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며 투덜거렸다. 해마다 봄이면 나도 팔을 길게 뻗어 휴대폰으로 열심히 벚꽃 사진을 찍는다. 봄이 무르익을 때 즈음이면 이미 벚꽃 사진이 수십장도 넘게 사진첩에 저장되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고화질로 촬영해도 만개한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잘 담기지 않는다. 그런데도 해마다 데이터로 그 시간을 저장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처럼 사진을 찍어 휴대폰 속에 풍경을 담아 봄을 즐기는 대중 심리에 휩쓸리는 것인지, 스마트폰 카메라의 무한한 성능 향상에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올해도 어김없이 휴대폰에 벚꽃이 피었습니다.

최윤아 ㅣ 넥슨컴퓨터박물관장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