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인민의 자격, 정치의 자세 / 조형근

한겨레 2021. 4. 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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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조형근 ㅣ 사회학자

1987년 3월3일, 전국에서 산발적인 시위가 있었다. 나도 서울 종로 거리를 헤매다녔다. 넥타이 맨 남자와 코트 입은 여자들이 고개를 돌리며 종종걸음을 쳤다. 경찰을 피해 도망치던 어느 골목에서였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로 연인들이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최루탄에 눈물 흘리는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아름다웠고, 나는 멍했다. 고문받다 죽은 박종철의 49재 날, 사람들은 바빴고 연인들은 사랑했다. 비난의 감정은 아니고, 다만 깊은 단절감이었다. 세상은 부조리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잘 알려져 있다. 연인들은 미구에 뜨거운 시위대가 됐다. 코트를 벗은 여인들은 구호를 외쳤고, 넥타이들은 짱돌도 던졌다. 흩어졌던 이들이 물결이 되고, 역사가 됐다. 나는 브레히트의 시를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떵떵대는 소리는 지배자의 소리뿐이고/ 시장에서는 착취가 외쳐댄다, 본업은 이제부터라고/ 그러나 피지배자 대부분은 말하고 있다/ 우리들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살아 있는 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견고한 것도 견고한 것은 아니다/ 변하고 있지 않은 것은 없다 … 생각하라 오늘의 패자는 내일의 승자/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오늘 중에라도 이루어지는 것이다”(‘변증법을 찬양하라’)

굴종과 저항이 교차하는 대중의 양면성은 지식인과 정치인들에게는 늘 숙제거리였다.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은 <군중심리>에서 군중은 진실을 갈망한 적이 없고, 자신을 부추겨주면 오류도 신처럼 경배한다며 비난한다. 이 군중이 자신을 주권자 인민으로 조직한 것이 민주주의다.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내몬 민주주의에 환멸을 느꼈다. <국가>(정체)에서 민주정체의 극단적 자유로부터 가장 야만스러운 예속인 참주정체가 나온다고 경고한다. 자격 없는 인민이 아니라 철학자 왕이 다스리는 왕국 칼리폴리스를 꿈꾼 이유다.

지금도 인민의 자격을 따지는 자칭 민주주의자들이 적지 않다. “대중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거나, “어떤 지도자는 한국인들이 갖기에는 너무 위대했다”며 인민의 자격을 묻는다.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도 마찬가지다. 정권과 지지자 중 일부는 보수정권 시절 교육받은 탓에 역사에 무지한 20대가 보수야당을 지지하고, 부동산 투기 탐욕에 보수야당을 지지한다며 인민을 심문한다. 바로 그들이 촛불광장의 인민이었다. 개혁하라며 180석을 준 이들이다.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의 저자 자크 랑시에르는 민주주의를 폄훼하려는 자들이 탐욕스러운 대중들이니, 무지한 하층민이니 하며 들먹인다고 통찰했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자격 없고 몫 없는 인민들이 자격 넘치는 엘리트들을 심판하는 체제다. 지금 인민은 촛불 ‘혁명’의 완수를 스스로 약속한 정권에게 성적표를 묻고 있다. 인민의 자격을 따지고 드니 적반하장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늘 지는 편에 속했다. 불의한 자들, 기회주의적인 자들만 지지하는 것 같아 인민에게 섭섭하고 화도 났다. 내 맘을 다스리려고 작년 총선 다음날 페이스북에 단상 셋을 올렸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승을 축하한 후 정의당에 대해 이렇게 썼다. “정의당은 초라하게 쪼그라들었다 … 이 비루한 진영이 조금은 덜 비루해지고, 공화국 정치사회의 한 좌석에 제대로 자리잡기를 오랫동안 희망해온 입장에서 그저 희망사항 하나를 적는다 … 억울하거나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절대로 대중을, 유권자를 비난하거나, 그들과 싸우려 들지 마시길. 진보정당의 정치인이기 이전에 공화국의 선출직 공직자가 지녀야 할 기본자세일 것이다. 대중이 늘 옳아서가 아니다. 그들의 오류조차도 정치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패배의 쓴맛 앞에 정치인과 그 지지 세력이 빠지곤 하는 저 손쉬운 비난의 처방전이야말로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이끄는 마약인 탓이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그 어려운 길을 고 노회찬 의원은 평생 보여주었다. 나같이 자신의 부족함을 합리화하기 위해 비난할 대상을 찾아내고야 마는 범속한 인간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어쩌랴, 진보세력의 대표이자 국민의 대표인 헌법기관이 되었으니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 짐 단단히 지시길.” 여당과 핵심 지지자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인민을 비난할 때가 아니다. 자세를 바로잡고, 그 짐의 무게를 감당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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