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뉴 아메리카] 아시안 혐오는 뉴노멀? / 유혜영

한겨레 2021. 4. 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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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유혜영 ㅣ 뉴욕대 정치학과 교수

미국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2020년 한 해에만 3800건이 넘게 발생했다. 이 가운데 68%는 피해자가 여성이었다. 온라인상의 인종차별까지 합하면 그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아진다.

트위터를 포함한 인터넷상에선 아시아인, 특히 동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빈발하고, 중국이나 중국인을 향한 혐오발언도 급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꿋꿋이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그때마다 인터넷은 아시아 혐오로 넘실댔다. 노골적 혐오가 아니더라도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는 미국 사회 곳곳을 파고들었거나, 내재한 혐오가 이제야 가면을 벗고 분출됐다는 근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최근에 발표된 한 연구를 보면, 어떤 지역에서 첫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뒤 그 지역 사람들은 구글에서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는 혐오표현을 전보다 훨씬 더 많이 검색했다. 초기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겪은 이탈리아와 같은 유럽 국가에서도 코로나19와 함께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범죄가 크게 늘었다. 이민자와 난민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앞세워 성장한 극우 정치인들은 이런 차별과 혐오를 적극 더 부추겼다.

미국에서 아시아계는 약 2200만명(2020년 기준)이다. 전체의 6%에 조금 못 미친다. 많진 않지만 아시아계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늘어나는 집단이다. 아시아 출신 이민자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2050년엔 미국 인구의 9%가 아시아계가 될 것이다. 인구는 늘고 있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미국 사회의 인식은 과거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미국에 이민 온 사람이든,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든 영원한 이방인, 외부인 취급을 받는다. 아시아인을 향한 단골 혐오발언이 “너희 나라로 돌아가!”다. 미국에서 평생 자란 아시아인도 다른 미국인을 만나면 “영어 어디서 배웠냐?” “어디서 왔느냐” 등 마땅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는다. 실제 출생지를 말해줘도 “거기 말고 진짜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이 이어진다. 백인도, 흑인도 아닌 “낯선 동양인”이 영어가 모국어일 리가 없고, 미국 중서부의 작은 동네에서 태어났다는 말도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편견이 쌓이면 사회적인 통념에도 그 편견이 투영된다. 뉴저지주 3번 지역구를 대표하는 연방하원의 앤디 김 의원은 지난달 트위터에 자신이 국무부에서 일할 때 성이 “김”이라는 이유로 한국 관련 업무에서 배제됐다고 썼다. 김 의원은 이런 일이 아시아계에 유독 많이 적용된다고 지적했다.

아시아 혐오를 막기 위한 노력도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를 멈추라”는 구호를 해시태그(#StopAsianHate)나 일상 속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더 내려는 움직임도 시작되고 있다.

과거 선거를 보면 아시아계 미국인의 투표율은 다른 인종보다 낮았다. 평균 교육수준이나 소득은 가장 높은 데 반해, 투표율은 백인이나 흑인보다 10% 이상 낮았다. 그러나 2020년 주요 경합지역이었던 조지아주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유권자들은 4년 전보다 91%나 높아진 투표율을 기록하며 선거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3명 중 2명이 민주당 성향이다. 아시아인들이 대거 투표하면서 바이든은 근소한 차이로 조지아주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 결선투표까지 치러진 상원 두 석마저 민주당이 차지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여전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다양한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한 바이든 행정부도 무역대표부 수장을 아시아계로 임명한 것이 전부다. 부처 장관으로 추천되거나 임명된 사람 중에는 아시아인이 없다. 아시아계 상원의원들의 공식 항의 뒤에야 바이든 행정부는 아시아계 인사를 고위급 대통령 자문위원으로 위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시아 혐오가 팬데믹 이후의 뉴노멀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아시아계의 목소리가 미국 사회 각계각층에서 크고 분명하게 들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극복할지도 계속해서 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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