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미얀마 정부도, 군대도 아닌 반란군이다"

김원진 기자 2021. 4. 3.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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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윙라이 NLD 한국지부 당원(왼쪽) 얀나잉툰 NLD 한국지부장 / 김원진 기자


본보기면서 겁주기였다.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는 지난 3월 10일 방송과 신문에 얀나잉툰 민주주의민족동맹 (NLD) 한국지부장(51)과 소모뚜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공동대표를 지명수배 했다고 알렸다. 혐의는 불법 후원금 모집이었다. 불법 후원금은 미얀마 민주화 항쟁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에서 미얀마로 보낸 후원금을 의미했다.

군부는 지난 3월 23일 두 사람을 또 한 번 지명수배했다. 이번에는 군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했다. 방송과 신문에는 가족 관계와 현지 거주지까지 공개됐다. 군부는 이들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만나 미얀마 상황을 왜곡해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얀나잉툰은 본국에 여든이 넘은 아버지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괜히 연락하지 말라”고 전했다. 그는 “지명수배자가 많아질수록 군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고, 그만큼 군부가 불리해진 다는 의미다. 지명수배자가 더 많아져도 좋다”고 했다.

지난 3월 31일 밤 인천시 부평에서 얀나잉툰을 만났다. 원활한 소통을 도우려 한국어가 유창한 NLD 한국지부 소속 윙라이(49)도 함께했다. 얀나잉툰은 “한국 정부와 국회는 단순히 성명을 내는 데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각종 군부 제재에도 열심히 동참하고 있어 감사한 마음뿐이다” 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8888항쟁’으로 불리는 1988년 미얀마 민주화 항쟁에 참여했다. 군부의 핍박을 피해 1991년과 1992년 차례로 한국에 왔다. 두 사람 모두 현재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얀나잉툰은 20년째 한 목재공장에서 일한다. 윙라이는 부평역 인근에서 미얀마 식당을 운영한다.

‘군사정부’라는 표현 쓰지 말아야
얀나잉툰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 (NLD) 한국지부는 1998년 만들어졌다. 초창기에는 당원만 40명이 넘었다. 현재는 10명 정도만 활동한다. 2010년 이후 상당수 본국으로 돌아갔다. 인도, 태국 등지에 있던 14개 NLD 지부도 줄어드는 추세다. 얀나잉툰은 “미얀마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NLD 해외지부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많았다”고 했다.

NLD 한국지부는 이번 군부 쿠데타 국면에서도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임시조직인 미얀마군사독재타도위원회 설립을 이끌었다. 위원회는 현재 미얀마 유학생과 노동자를 합쳐 30여명이 활동한다. 거리 시위에 참여하는 미얀마 공무원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미얀마는 공무원의 평균 급여가 일반 회사원의 절반 수준이다. 얀나잉툰은 “공무원들의 불복종 시위 참여가 늘어나야 정부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 공무원 파업을 독려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NLD 한국지부는 평소 1인당 회비 10만~15만 원으로 운영된다. 최근에는 본국 지원을 위해 갹출하는 비용을 늘렸다.

얀나잉툰은 임시정부격인 연방의회 대표위원회(CRPH)와 한국을 잇는 역할도 맡는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을 만나 CRPH의 의중을 전한다. 지난 3월 21일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만났을 때는 CRPH 인사와 그 자리에서 화상 통화를 연결해줬다.

얀나잉툰은 언어부터 명확하게 써야 한다고 했다. 군부를 인정하는 듯한 용어를 조심해주길 당부했다. 그는 “군대가 아닌 반란군이다. 군대라고 부르지 말고 무차별 살인·강도를 하는 반란군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윙라이는 “군사정부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정부가 아니다”라고 했다.

군부에 불복종하는 시민을 지지하길 주저하는 주한 미얀마대사관에 아쉬움도 나타냈다. 미얀마는 현재 한국에서 대사관과 대사관 무관부 건물이 따로 있다. 대사관은 서울 한남동에, 무관부는 옥수동에 있다. 무관부에는 군에서 파견한 이들이 있다. 얀나잉툰은 “무관부에서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유학생이나 노동자를 하나하나 체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NLD 측은 지난 2월 미얀마 대사에게 ‘우리를 도와달라’고 공식 요청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얀나잉툰은 “주한 미얀마대사관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답을 듣지 못했다. 사실상 거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부평역 인근 미얀마인들이 운영하는 상점 앞에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선전물이 붙어 있다. / 김원진 기자


“무력 투쟁 피할 수 없어”
얀나잉툰은 이날 인터뷰 도중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전투기 사진을 가리키며 “군에서 띄운 전투기”라고 했다. 그는 “쿠데타 세력이 전투기를 띄워 소수민족인 카렌족을 공습했다고 한다. 사실상 내전 상태에 돌입한 것”이라고 했다.

얀나잉툰은 “이제 마지막으로 선택해야 할 카드를 꺼내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무장 투쟁을 피하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얀나잉툰은 “국제사회에서 군사적으로 도움을 줄 움직임이 없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희생자가 너무 많아졌다. 500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아마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 이다. 저항활동을 하지 않아도 죽인다. 거북처럼 조금씩 싸워나갔는데 더 두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나. 학생들이 하나둘 죽어 나가는데 기다리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미얀마 안팎의 움직임도 긴박하다. CRPH는 지난 3월 31일 군부가 만든 헌법을 폐지하고 국민통합 정부를 출범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CRPH가 무장한 소수 민족과 연대해 군부와 싸울 가능성도 있다. 얀나잉툰은 “소수민족과 연합 군대를 만들려고 한다. 자체 군대가 있는 소수민족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결국은 이제 우리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아마 10명 중 9명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무기 같은 것도 지원받게끔 해달라는 본국의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삶과 죽음은 한 순간/ 다시는 접할 수 없는 것/ 염려 말아요 여보/ 평화로운 버마/ 독재는 멀리 사라지고/ 민주주의 바람/ 찬란한 빛 영광의/ 선봉이 되어 들어올 것이오/ 맞이해주오”(‘아내를 그리워 하는 시’ 중에서)

얀나잉툰이 2001년 문학 계간지 ‘실천문학’ 겨울호에 쓴 시다. 죽음을 감수한 민주화 항쟁의 열망이 담겼다. 이 시는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얀나잉툰은 당시 ‘실천문학’과 인터뷰에서도 “버마(미얀마) 군부독재에 대해 희망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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