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줌인] 재보궐 선거로 소환된 美 '워터게이트 사건'

파이낸셜뉴스 2021. 4. 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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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 내곡동 거짓말 논란 계기 
50년전 전대미문 美 정치스캔들 전말  
미국 제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
[파이낸셜뉴스] 4.7 재보궐 선거가 일주일도 채 안 남은 가운데 정치권에선 과거 미국 정가를 뒤흔들었던 '워터게이트 사건'이 소환되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오세훈 후보의 내곡동 땅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다.

내곡동 땅 특혜 의혹도 불거지고 있지만, 이에 앞서 정치권에서 문제를 삼는 오세훈 내곡동 문제의 핵심은 바로 '거짓말 논란'이다. 당초 오 후보는 내곡동 땅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했고, 추가 보상 의혹에 대해서도 말을 바꾸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내곡동 땅 측량 당시 현장에 큰 처남이 참여했다고 했지만, 큰 처남이 아닌 오 후보 본인이 참여했다는 구체적인 증언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오 후보는 내곡동 땅에 대해 본인이 관심을 표했다는 증거가 나오면 후보를 사퇴하겠다고 말한 바도 있다. 급기야 더불어민주당과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는 "거짓말과 말 바꾸기로 우리 국민과 서울시민 유권자들을 속여 왔음이 낱낱이 밝혀졌다"며 오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지난 1972년 미국 닉슨 행정부가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민주당을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 침입과 도청 사건을 말한다. 그런데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 불법 침입과 도청이 문제인 듯이 보였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부정하고 은폐하려 했던 닉슨 행정부의 거짓된 움직임이었다. 결국, 이 같은 문제로 닉슨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임기 중 사퇴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거짓말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다. 닉슨 대통령을 이야기할 때 워터게이트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도청 사건이다. 그런데 닉슨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그만두게 만든 결정적 계기는 워터게이트 도청 건이 아니었다"면서 "자기는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대통령을 그만둔 것이다. 공직자의 공직에 관련된 행위에 대한 거짓말이라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근 50년 전에 미국에서 발생했던 전대미문의 정치 스캔들은 현재까지도 미국은 물론 국내 정치권에도 작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셈이다. 4.7 재보궐 선거를 계기로 소환되고 있는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말을 되돌아봤다.

■사건의 발단
1972년 6월 17일,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다용도 건물인 워터게이트 빌딩 소재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5명의 남자들이 침입했다. 이들은 곧 경찰에 체포됐다. 이에 앞서 빌딩 경비원 프랭크 윌스는 건물 최하부 계단의 외진 곳과 주차장 사이 문 위에 이상한 테이프가 묶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 그는 청소부가 작업 도중 테이프를 묶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체불명의 사람이 테이프를 묶어 놓았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자 워싱턴 시경에 이를 신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은 관련 증거사진들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현행범으로 체포된 5명의 남자들이 3주 전에도 같은 곳에 침입한 적이 있었고, 이번 침입의 목적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던 도청기를 재설치하기 위함이었음이 드러났다. 더욱이 침입자 중의 한 명이었던 버나드 버커는 과거 닉슨 대통령 재선위원회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E. 하워드 헌트의 백악관 연락처를 기록해둔 수첩을 갖고 있었다.

이에 따라 이 사건에 닉슨 대통령의 측근, 더 나아가 닉슨과 백악관이 연루돼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닉슨 대통령의 로널드 루이스 지글러 보도담당관은 이 사건을 '3류 절도'로 치부하며 백악관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FBI 및 다른 정부조사관들의 심문이 진행될수록 예사롭지 않은 정황들이 계속 나왔다. 또 다른 침입자였던 제임스 W. 매코드는 CIA의 옛 직원으로 대통령 재선위원회 경비주임이었고, 그가 대통령 재선위원회에서 자금을 받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 즈음 '워싱턴 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도 독자적인 취재를 통해 사건과 관련된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사실을 보도했다. 해당 보도가 나오자 비로소 미국 정가를 뒤흔든 워터게이트 사건이 본격적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닉슨측의 수사 방해·은폐 시도
사건에 대한 의혹이 커지자 닉슨 측은 수사를 방해하거나 주요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 특히 닉슨 대통령과 H. R. 홀더먼 대통령수석보좌관은 FBI의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를 방해할 것을 CIA에 지시했고, 이 상황은 테이프에 고스란히 녹음됐다. 수사 방해를 위한 정치공작은 E. 하워드 헌트 등 닉슨 대통령 재선위원회 직원들이 주도했다. 아울러 변호사 출신의 닉슨파 고위관리들이 다양한 법률 지식을 동원해 사건 은폐 계획을 꾸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의 음모는 발각됐다.

한편, 침입자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는데 피고 전원에 대해 범죄 공동모의, 가택침입 및 도청에 대한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후 미국 상원에서 워터게이트 특별위원회가 설립돼 그 배후를 캐기 위한 조사로 발전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닉슨을 겨냥한 것이다. 특별위원회가 백악관 직원들을 소환하기 시작하자 닉슨은 다급해졌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증인이 될 수 있는 백악관 법률고문 존 딘을 경질했고, 새로운 법무장관으로 엘리엇 L. 리처드슨을 임명했다. 자신의 가장 유력한 보좌관인 홀더먼 및 얼리크먼의 사직도 강요했다. 또한 닉슨은 이 사건을 수사할 특별검사로 아치볼드 콕스를 지명했다. 특별검사 지명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었다.

■스모킹건·거듭된 거짓말
특별위원회 공청회는 TV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공청회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은 더할 나위 없이 뜨거웠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위원회를 통해 사건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사실이 폭로됐다. 알렉산더 P. 베터필드 대통령 부보좌관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의 모든 대화가 자동녹음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닉슨 측의 사건 수사 방해와 은폐 시도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테이프, 즉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낸 것이다. 콕스 특별검사와 상원조사위원회는 해당 테이프의 제출을 닉슨측에 요구하며 소환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닉슨은 대통령의 특별권한으로 이를 거부했고, 리처드슨 법무장관을 통해 콕스 특별검사에게 소환장 취소를 명령했다. 그러나 콕스는 대통령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화가 난 닉슨은 리처드슨 법무장관에게 콕스 특별검사 해임을 요구했다. 그런데 리처드슨 법무장관마저 닉슨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진사임했다. 이후 윌리엄 D 란케르즈하우스 법무차관도 명령을 거부하고 사임했다. 결국 로버트 H. 보크 법무차관보가 임시 법무장관대리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했다. 사람들은 일련의 과정을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고 불렀다.

이 무렵 닉슨은 플로리다주 올랜드에 모인 수백명의 기자들 앞에서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사건 혐의를 계속 부인하고 있었다. 닉슨의 테이프 제출 거부도 한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의혹과 여론의 압박 등으로 결국 테이프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제출된 테이프에는 18분 30초 분량의 내용이 삭제돼 있었다.

이와 관련해 닉슨의 백악관은 닉슨의 비서 로즈 메리 힌스의 책임이라고 변명했다. 그녀가 전화를 받는 시기에 녹음기의 페달을 눌러 우연히 테이프가 삭제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화를 받으며 페달을 밟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 밝혀졌다. 닉슨과 백악관의 거듭된 거짓말은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그나마 닉슨에 호의적이었던 보수적인 국민들의 지지도 돌아서게 만들었다. 더욱이 자의적인 테이프 편집은 증거물 훼손으로서 범죄행위로 기소 대상이 된다는 판명까지 나왔다.

결국 테이프 제출 문제는 대법원까지 갔다.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테이프에 대한 닉슨 대통령의 특권을 무효화했고, 특별검사 레온 자보로스키에게 테이프를 넘겨줄 것을 명령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명령으로 닉슨은 테이프 원본을 넘겨주게 됐다.

■탄핵과 대통령 사퇴
이에 앞서 대통령의 옛 측근 7명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조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여기에 대배심은 비밀리에 닉슨을 기소하지 않은 공모자로 지명했다. 대통령으로서의 닉슨의 지위가 흔들리는 가운데 하원은 대통령 탄핵이 가능한 형식상 조사를 시작했다. 1974년 7월 27일, 하원사법위원회는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사법방해)을 권고하는 것을 27 대 11로 가결했다. 이어 7월 29일에는 2차 탄핵(권력의 남용), 7월 30일에는 3차 탄핵(의회에 대한 모욕)까지 가결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원은 물론 상원에서도 닉슨에 대한 지지는 약화되고 있었다.

의회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던 닉슨은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도 탄핵 가결이 유력시 될 것으로 점쳐지자 결국 자진 사퇴를 하기로 결정했다. 1974년 8월 8일 밤, 닉슨은 TV 앞에서 행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튿날 정오에 사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의 후임자로 부통령인 제럴드 R. 포드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이후 포드는 재판 이전에 닉슨에 대한 특별사면을 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한 모든 수사와 재판을 면할 수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사면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죄를 인정한다는 의미를 가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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