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그려라? 없는 걸 어떻게" 쿠르베는 혁명 그 자체였다

조성준 2021. 4. 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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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예술가의 사회-73] 귀스타브 쿠르베(화가, 1819~1877)

◆세상을 흔드는 사람들

세상을 바꾼 사람 몇 명만 나열해보자. 현대 미술사에서 피카소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그는 기존 회화규칙을 산산조각 냈다. 부서진 조각을 그러모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조합했다. 그렇게 입체주의 사조가 탄생했고, 현대 미술은 빅뱅을 맞았다. 운동의 세계에선 마이클 조던이 있다. 모든 스포츠계를 통틀어서도 조던만큼 천재로 추앙받는 스타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조던은 물리법칙에서 해방된 인간처럼 허공 위로 뛰어올랐고, 날았다. 조던이 점프할 때마다 전 세계 팬들 가슴에선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스티브 잡스는 어떤가. 2007년 그는 스마트폰이라는 발명품을 공개했다. 우리는 모두 그의 유산 속에서 살고 있다.

피카소, 조던, 잡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겸손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강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직설적이고, 고집이 셌으며, 성격은 불같았다. 그래서 때론 모난 돌처럼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결국 세상을 지배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도 이 부류의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쿠르베씨`(1854) / 파브르 미술관 소장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쿠르베가 1854년에 그린 작품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는 화가의 성격을 단번에 보여준다. 그림 왼쪽엔 잘 차려입은 남자 두 명이 있다. 오른쪽엔 평범한 일상복을 입고 화구를 짊어진 남자가 있다. 그는 구두를 신은 왼쪽 두 남자와 달리 흙이 묻은 지저분한 신발을 신었다. 옷도 군데군데 해졌다. 이 인물은 쿠르베 자신이다. 왼쪽 두 남자는 쿠르베의 후원자였던 사람과 그의 하인이다. 제목처럼 두 남자는 쿠르베를 환대하고 있다. 하인은 고개를 숙인 채 인사를 하고, 후원자는 모자까지 벗으며 쿠르베에게 예의를 갖추는 중이다.

반면 쿠르베는 살짝 턱을 들고 두 남자의 인사를 받는 중이다. 살짝 거만해 보인다. 그림을 자세히 뜯어보면 왼쪽 두 남자는 그림자에 파묻혔고, 쿠르베는 온전히 햇살을 맞고 있다. 쿠르베는 이 작품에 '천재에게 경의를 바치는 부(富)'라는 부제를 붙였다. 쿠르베는 후원자와 화가 중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후원자 쪽이라고 봤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물질적인 지원을 하는 사람 앞에서 본능적으로 주눅 든다. 하지만 쿠르베는 정반대였다. 그는 오히려 자신과 같은 천재를 지원하는 것 자체가 영예라고 여겼다.

강철 같은 자존감을 가진 이 남자는 1819년 프랑스 동부 오르낭에서 부농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10대 때부터 미술을 배웠다. 화가가 되기 위한 진지한 미술교육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법률가가 되길 원했다. 쿠르베는 법률학교 입학을 위해 파리로 유학을 왔다. 그러나 그는 루브르에 걸린 거장의 작품 앞에서 압도됐다. 쿠르베는 갑갑한 법복을 입는 대신 붓을 잡기로 했다. 이 결심을 아버지에게 전했다. 아버지는 기꺼이 아들의 변심을 지지했다.

`검은 개를 데리고 있는 쿠르베`(1844) / 프리 팔레 미술관 소장
◆혁명의 공기로 가득했던 파리

쿠르베가 파리에 입성했을 때 낭만주의 화풍이 대세였다. 엄숙한 계몽주의에 질려버린 젊은 화가들은 꿈, 환상, 신화를 주제로 몽환적인 그림을 그렸다. 신비로움이 감도는 이 그림들은 관객의 감성을 자극했다. 쿠르베도 낭만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금세 결실을 얻었다. 1844년에 '검은 개를 데리고 있는 쿠르베'라는 작품으로 살롱전에 입선했다. 낭만주의 흔적이 짙은 작품이다. 가장 권위 있는 미술전에서 선택받았다는 건 주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는 편하고 안락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쿠르베라는 인물을 이해하려면 당시 프랑스 사회에 대해 짚어야 한다. 그가 태어나기 30년 전 프랑스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화가 난 시민들은 왕정을 무너뜨렸다. 황제와 왕비는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프랑스에는 제1공화국이 탄생했다. 프랑스대혁명은 근대 유럽사에서 가장 뜨겁고, 잔혹한 사건이었다. 권력을 잡은 혁명가들은 이제 서로에게 칼을 겨눴다. 그들 역시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등장했다. 다시 황제가 탄생했다. 공화국은 무너졌다. 하지만 혁명의 여진은 잦아들지 않았다. 공화주의자들은 호시탐탐 전복을 모색했다.

쿠르베를 바꾼 사건은 1848년에 일어났다. 그해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크고 작은 혁명이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유럽 전체가 팔팔 끓었다. 파리에 모인 공화주의자들은 다시 한번 왕정을 무너뜨렸다. 제2공화국이 탄생했다. 쿠르베는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거대 권력을 무너뜨리는 모습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그는 이 혁명에서 자신이 추구해야 하는 예술을 봤다. 그는 낭만주의라는 아름다운 옷을 훌훌 벗어서 던져버렸다.

`돌 깨는 사람들`(1849) / 2차 세계대전 중 소각
◆평범한 사람들을 그리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는 급진적으로 변했지만, 미술만큼은 비교적 느린 보폭으로 변화를 따라왔다. 낭만주의 화가들 역시 중세시대 미술을 비판하며 등장한 반항아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신과 귀족을 그렸다. 쿠르베는 이 고리를 완전히 끊으려 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목숨 걸고 권력과 싸울 때, 그들의 등 뒤에는 천사도 신도 없었다. 오직 뜨거운 피를 가진 인간이 두려움에 떨면서도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다. 쿠르베는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천사의 후광보다는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주름진 손등에 집중하기로 했다.

1848년 이후 쿠르베 그림은 혁명적으로 변했다. 그는 집요하게 평범한 사람을 그렸다. 그것도 종교화처럼 거대한 캔버스에 그렸다. 1849년 쿠르베는 잠시 파리 생활을 접고 고향 오르낭에 갔다. 거기에서 두 점의 그림이 탄생했다. '돌 깨는 사람들' '오르낭의 장례식'이라는 작품이다. '돌 깨는 사람들'은 제목 그대로 돌을 깨는 노동자를 그린 작품이다. 채석장에서 해진 옷을 입은 노동자 한 명이 무릎 꿇고 망치로 돌을 깬다. 그 옆에선 소년이 힘겹게 돌을 나르는 중이다. 누추한 노동자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고된 노동을 과장하지도 미화하지도 않았다. 사진 찍듯 현실을 치밀하게 기록했다.

'오르낭의 장례식'은 등장인물이 40명이 넘는다. 가로 길이만 7m에 가까운 대작이다. 시골마을 장례식 장면을 묘사한 이 그림은 도발적이다. 서양화에서 죽음은 단골 소재였다. 예수의 죽음을 그린 그림은 얼마나 많은가. 서양화 속에서 죽음은 신성화됐다. 그런데 쿠르베가 묘사한 죽음의 장면은 푸석푸석하다. 이 그림에서 관객은 누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시신이 담긴 관은 이미 구덩이 안에 들어가 있다. 그저 한 죽음이 있고, 이 죽음 곁에 살아있는 사람 수십 명이 모여 있을 뿐이다. 슬픈 얼굴로 고인을 애도하는 사람도 몇 명 없다. 대부분 사무적인 표정을 하고 있다. 장례식이 얼른 끝나기를 바라는 듯한 한 얼굴도 있다. "보통 사람의 죽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당시 프랑스에서 미술을 향유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기득권이었다. 그들은 하층계급을 그린 쿠르베 작품 앞에서 당황했다. 시골 마을 평범한 장례식 풍경화 앞에서도 고개를 저었다. 그들에게는 밑바닥 삶이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었다. 그들은 쿠르베에게 "당신의 그림은 예술이 아니다"라며 공격했다.

쿠르베는 의기양양했다. 추한 그림을 멈추고 종교화나 그리라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천사를 보여 달라! 그러면 천사를 그리겠다." 쿠르베가 남긴 이 말은 화가의 철학을 요약한다. 그는 자신의 망막에 비친 현실만 그리기로 했다. 쿠르베는 힘겨운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봤다. 이것이 현실이고, 그것을 그렸다. 단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이 쿠르베 그림에 등장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인물을 소재로 삼는 것만으로도 쿠르베는 이단아가 됐다. 쿠르베 스스로도 자신이 규칙을 깨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했다.

`오르낭의 장례식`(1849~1850) / 오르세 미술관 소장
◆사실주의 화풍이 탄생했다

1855년 파리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렸다. 쿠르베는 이 잔치에 그림을 출품했다. 주최 측은 쿠르베가 보낸 그림 중 몇 점을 거부했다. 당시 만국박람회는 유럽 국가들이 자신들이 보유한 예술, 과학, 기술을 뽐내는 경연장이었다. 국력 과시가 목적인 무대에 쿠르베 그림은 맞지 않았다. 누추한 노동자가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어떻게 프랑스의 국력을 자랑할 수 있겠는가. 거절당한 쿠르베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거대한 도발을 실행했다. 박람회장 바로 앞에 보란 듯이 개인 전시장을 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그림 수십 점을 걸었다. 쿠르베는 이 전시에서 처음으로 '사실주의(Realism)'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여전히 기득권에게 쿠르베는 성가신 존재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추종자도 늘었다. 쿠르베는 동시대에 살아가는 화가들 가운데 자신만큼 민중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하는 예술가는 없다고 확신했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을 향해 오히려 크게 비웃었다.

그는 혁명가가 됐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혁명에 가담했다. 1871년 3월 프랑스에는 다시 한번 혁명이 일어났다. 쿠르베 그림에 등장하는 노동자 계급이 봉기를 일으켰다. 그들은 파리에 자치정부를 세웠다.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자 계급이 세운 정부가 탄생했다. 이 정부를 파리코뮌이라고 부른다. 쿠르베 역시 혁명에 가담했고, 파리코뮌에서 중책을 맡았다. 쿠르베는 문화와 관련한 정책 전권을 손에 쥐었다. 박물관 관리와 살롱전 개최 권한까지 얻었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잠깐이었다. 권력은 무섭다. 선량한 사람도 권력을 쥐면 변하기 쉽다. 파리코뮌 지도자들은 과격해졌다. 프랑스대혁명 직후 공화주의자들이 서로에게 칼을 겨눴듯이 파리코뮌 안의 공기에도 사나운 기운이 가득했다. 결국 쿠르베는 직함을 내려놓고 파리코뮌을 떠났다. 이후 혁명 세력은 나폴레옹 황제를 기념하는 기념물을 파괴했다.

파리코뮌은 단명했다. 탄생 두 달 만에 정부군에게 무참히 진압당했다. 실패한 혁명에는 막대한 비용 청구서가 따라온다. 파리코뮌이 붕괴된 후 쿠르베는 체포당했다. 나폴레옹 기념 건축물을 붕괴하는 데 일조한 혐의로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감옥에서 나온 이후에는 막대한 벌금형도 맞았다. 쿠르베는 빈털터리가 됐다.

`송어`(1872) / 취리히 미술관 소장
◆쿠르베가 지킨 원칙, 인상주의를 꽃피웠다

1872년 쿠르베는 '송어'라는 그림을 그렸다. 낚싯바늘에 꿰어져 뭍으로 나온 송어의 눈동자는 절박하다. 쿠르베는 절벽으로 몰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이 그림을 그렸다. 그럼에도 그는 신념을 꺾지 않았다. 여전히 이 세상의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쿠르베는 정치적인 박해를 피해서 1873년 스위스로 망명을 갔다. "나는 단 한순간이라도 나의 원칙을 벗어나거나 양심에 어긋나는 짓은 하고 싶지 않네"라고 말하던 화가는 고국을 떠난 지 4년 후 타국에서 객사했다.

쿠르베가 고수한 원칙은 그가 떠나고도 살아남았다. 쿠르베가 만국박람회 옆에 전시회를 차렸을 때, 이곳을 찾은 젊은 화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쿠르베가 묘사한 진실 앞에서 전율했다. 신화, 종교, 귀족처럼 고귀한 것들만 그리는 시대가 저물었음을 확신했다. 그들은 '나도 이 화가처럼 지금 이 시대를 그리겠다'라고 다짐했다. 이들은 훗날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혁명을 일으켰고 미술사를 바꿨다.

미국인 작가 필립 로스의 작품 '에브리맨'은 제목처럼 '모든 사람'에 관한 소설이다. 특별할 것 없고, 흔해 빠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모두 늙고 병들어 언젠가는 소멸하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건조한 문장으로 묘사한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쿠르베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가는 수많은 사람을 위한 화가였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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