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0km 성지순례 준비하다 걷기 마니아 돼.."새 세상 펼쳐졌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지난해 5월부터 인도 성지순례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45일간 성지 7곳 1080km를 걷는 대행진이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죠.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때문에 못 가게 됐습니다.”
정 이사는 성지순례를 위해 매일 새벽 일어나 2~3시간씩 걸었다. 오전에 일이 있으면 오후에 짬을 내서 걸었다. 평소 가끔 등산을 했고 골프 등 스포츠도 즐겼지만 이렇게 빠져 본 적은 없었다. 그는 “걸어보니까 이렇게 좋은 게 없었어요. 아무런 준비가 없어도, 누구의 도움이 없어도, 훈련이 없어도 걸을 수는 있습니다”고 말했다. 물론 바른 자세로 걸어야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 정 이사는 유튜브 등을 찾아 바르게 걷는 방법을 공부했고 신도회 회원인 ‘걷기 박사’ 성기홍 대한브레인걷기협회 이사장(61)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걸으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결국 인도 성지순례는 취소 됐다.
“당초 10월쯤 인도에 가려고 했는데 코로나19로 상황이 여의치 않아 취소 됐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기획한 게 대구 동화사에서 출발해 서울 봉은사까지 511km를 21일에 완보하는 자비순례였습니다.”
정 이사는 지난해 7월 충남 공주 마곡사 인근에서 100km를 걷는 예비행사에 참여했다. 당초 인도 성지 순례를 대비한 전초전격인 걷기 행사였다. 무더위에 폭우까지 왔지만 거뜬히 100km를 완보했다. 그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완보했습니다. 혼자는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스님, 신도분들과 함께 걸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걷기가 제 신체에 딱 맞는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고 했다.
인도 성지순례 대신 지난해 10월 7일 시작된 자비순례에는 본진 80명이 참여해 말 그대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21일간 행선이 이어졌다. 산과 강을 따라 걸으며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대중들을 위로하는 기도를 이어갔다. 코로나19로 모임이 금지된 상태라 실내투숙도 불가능했다. 모두 1인용 텐트에서 밤을 보냈고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다. 하루 적게는 6시간에서 많게는 9시간을 걸었다. 하루 평균 30km, 최대 35km를 걸었다.
“요즘은 친구들과 다양한 주제를 잡아 걷고 있습니다. 일명 도심지 역사투어라고 해서 서울 청계천일대 황학시장 광장시장 등을 둘러보는 ‘시장 탐방 투어’, 최근 삼일절을 기념해 삼일운동이 벌어진 태화관, 탑골공원, 그리고 인사동을 둘러보는 투어도 했습니다. 함께 점심이나 저녁도 먹습니다. 친구들 만족도가 아주 높습니다.”
서울 한양도성길, 서울 둘레길,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여러 걷는 길을 만들어 갈 곳이 아주 많았다. 그는 “걷기 투어는 투자대비 만족도가 아주 높다”고 강조했다.
“제가 2년여 전에 은퇴를 했습니다. 솔직히 계획도 없이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하고 정년퇴직을 했는데…. 걷기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찾게 됐습니다. 걸어서 몸이 건강하니 정신도 맑아졌습니다.”
정 이사는 경기도 의정부 영석고 교장을 맡아 지역 명문고로 키운 인물이다. 개교 이래 처음으로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하는 등 경기도교육청 2017년 사학기관 평가 최우수 등급을 받기도 했다. 교육계를 떠난 그는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회장으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며 지내고 있다.
정 이사는 올해도 인도 성지순례가 쉽지 않아 대안으로 준비하고 있는 승보사철 송광사(전남 순천)에서 출발해 법보사찰 해인사(경남 합천)를 거쳐 불보사찰 통도사(경남 양산)에 이르는 불법승 3사 투어 행선에도 나설 예정이다.
정 이사에 따르면 자비순례를 다녀오신 스님들이 각 지역 사찰에서도 걷기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4월 7일 해인사에서도 걷기 행사가 열린다.
“걷다보니 새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건강도 따라왔습니다. 100세까지 살고 싶어서가 아니고 오늘을 건강하고 즐겁게 살려고 걷고 있습니다. 걷기에 대해 늦게 눈을 떴지만 걷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하며 평생 걸을 생각입니다.”
이제 본격 걷기 인생 2년차인 그의 걷는 모습에선 건강함과 즐거움이 함께 묻어났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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