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무거워졌다' 데이터 무게의 진실

이병철 기자 2021. 4. 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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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요즘 컴퓨터가 무거워진 것 같아. 컴퓨터를 바꿔야 할 때가 된 걸까?”

컴퓨터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많은 데이터가 쌓입니다. 데이터가 차오를수록 컴퓨터가 느려지면서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답답함을 유발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두고 ‘컴퓨터가 무거워졌다’라고 표현합니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느려지는 것과 실제로 무게가 늘어나는 것 사이에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죠. 그런데 문득 이 표현이 혹시 과학적 진실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데이터가 정말 컴퓨터를 무거워지게 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등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데이터입니다.

정보통신기술(ICT) 연구에서는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가졌는지, 그 데이터의 질이 얼마나 좋은지가 경쟁력입니다. 이 때문에 각 연구기관과 기업에서는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쉽게 즐길 수 있는 것도 막대한 양의 영상 데이터가 어딘가에 저장되고 있기에 가능하죠.

2017년 미국의 데이터 저장장치 생산기업 씨게이트와 시장조사기업 IDC는 향후 데이터산업 추세를 분석한 보고서 ‘데이터 에이지 2025’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데이터 생산량은 약 163ZB(제타바이트·1ZB는 1조GB)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16년에 생산된 데이터가 약 16ZB 정도였다고 하니, 10년 만에 데이터 생산량이 10배가량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질량과 에너지, 정보 통합해 데이터의 무게 계산

AIP 어드밴시스

지난해 8월 멜빈 봅손 영국 포츠머스대 물리 및 수학과 교수는 ‘정보 재앙’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국제학술지 ‘AIP 어드밴시스’에 발표했습니다. 봅손 교수는 논문을 통해 데이터가 계속 늘어나면 언젠가는 데이터가 지구 무게의 대부분을 차지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죠.

봅손 교수는 매년 데이터 생산량이 증가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매년 데이터 증가율이 50%인 상황을 가정하면 데이터의 기본 단위인 비트(bit)의 수가 150년 후 지구에 있는 모든 원자의 수와 같아질 것이라고 계산했습니다. 데이터 증가율이 20%인 경우에도 340년이 지나면 같은 수준에 이릅니다.

이제는 비트를 무게로 환산할 차례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이론이 필요합니다. 바로 질량과 에너지, 정보가 서로 보존된다는 ‘질량-에너지-정보 등가성 원리’입니다. 이것으로 매년 50%씩 증가하는 데이터를 무게로 계산하면 약 200년 뒤인 2245년에는 데이터의 무게가 지구의 절반에 이릅니다. 

질량-에너지-정보 등가 이론은 데이터를 저장할 때 필요한 에너지를 열역학적으로 계산해 질량으로 환산합니다. 질량과 에너지의 상관관계를 밝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 이론에 정보까지 결합한 결과죠.

황규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인공뇌융합연구단 선임연구원은 “데이터는 불규칙한 정보를 일정한 패턴으로 정렬해 저장하는 개념”이라며 “이를 엔트로피(Entropy) 변화의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계산한 데이터 1비트의 질량은 3.19 x 10의 -38승kg 수준입니다. 가령 1TB의 용량을 가진 데이터 저장장치에 데이터를 가득 채운다면 2.5 x 10의 -25승kg 정도의 질량이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담는 그릇에 따라 데이터도 무게 있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페이스북의 데이터센터 내부의 모습. 게티/연합뉴스 제공

질량-에너지-정보 등가 이론은 아주 그럴듯한 이론이지만, 하나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데이터에 무게가 존재할 수 있는지 아직 측정을 통해 증명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무게 차이를 측정할 수 있는 저울은 아직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계산한 결과일 뿐이죠. 컴퓨터에 쌓인 데이터가 정말로 컴퓨터를 살찌울지 확인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요.

연구자들은 또 다른 방법을 통해 이를 증명할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데이터를 저장하는 원리에 그 단서가 있습니다. 이성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정보통신융합전공 교수는 “대표적인 데이터 저장장치인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의 데이터 저장 원리를 비교하면, 데이터가 실제로 무게를 지닐 가능성을 확인해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SSD와 HDD는 모두 데이터를 2진법 디지털 신호인 0과 1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신호를 만드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HDD는 디스크 표면에 전류를 흘려 자성의 방향으로 신호를 만드는 반면 SSD는 트랜지스터를 구성하는 플로팅게이트에 전자를 가둬 전자의 유무로 신호를 구성합니다. 플로팅게이트에 전자가 갇혀있으면 0을, 전자가 없다면 1의 신호를 나타냅니다.

바로 이 전자 때문에 데이터에 무게가 존재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SSD에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저장장치에 전자가 들어가야 하니 들어간 전자의 무게만큼 SSD가 무거워질 수 있죠. 반면 HDD나 아날로그 방식의 저장장치에 저장한 데이터는 물리적인 무게가 없습니다.

이 교수는 “물론 이 방식으로 계산한 데이터의 무게도 현재 기술로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수준”이라며 “다만 이 모든 과정이 실제 물리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인 만큼 데이터의 무게는 플로팅게이트에 갇힌 전자의 무게를 더해 계산해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컴퓨터가 무거워졌다’는 표현이 처음 사용된 것은 SSD가 개발되기도 전입니다. 비과학적이었던 표현이 SSD의 개발과 함께 과학적인 표현으로 재탄생한 셈입니다. 물론 전자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하지만요.

그렇다면 정말로 앞으로 지구 무게의 대부분을 데이터가 차지하게 될까요. 다행스럽게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황 선임연구원은 “데이터의 무게 증가를 예측한 논문은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기 위해 데이터양의 증가를 과대평가한 만큼 실제로 데이터 무게가 극적으로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신 데이터 증가에 따른 과도한 에너지 사용과 환경오염 등 현재 처한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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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기자 alwaysa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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