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백화점의 몰락.. 전국 유일 '대백', 너마저
남은 프라자점도 브랜드 이탈 등 암울
부산 미화당, 대전 동양, 광주 송원 등 줄줄이..
“대백(대구백화점 본점)에서 보자.”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백’은 대구 시민들이 도심에서 약속 장소를 잡는 대표 명소였다. 부산의 만남 장소인 미화당 백화점이 외환위기에 사라졌을 때도 대구백화점은 꿋꿋이 그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유일하게 남은 ‘향토 백화점’인 대구백화점 본점마저 오는 7월 기약 없는 휴점에 들어간다. 사실상 본점 역할을 하는 중구 대봉동 프라자점의 앞날도 밝지 않다.
서울 백화점도 울고 가던 대백, 결국 휴업
지난달 29일 대구백화점은 7월 1일부터 본점 영업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부산의 미화당·태화백화점, 광주의 가든·송원백화점, 대전 동양백화점 등 줄줄이 문 닫은 향토 백화점 몰락의 길에 대구백화점마저 이름을 올리게 됐다. 대구백화점은 서울의 유명백화점들의 대구 진출로 경영난을 겪던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휴업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대구백화점 관계자는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구백화점은 1944년 대구 중구 교동시장 인근에서 ‘대구상회’라는 이름으로 창업했다. 1969년 주식회사로 전환한 뒤 이번에 휴점하게 된 동성로에 본점을 열었다. 지역 최초로 정찰제와 멤버십을 도입하고 1993년엔 중구 대봉동에 프라자점을 열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 기세는 서울의 유명백화점도 울고 갈 정도였다. 신세계는 1973년 대구에 진출했지만 대구백화점의 아성과 오일쇼크에 따른 소비부진의 벽을 넘지 못하고 2년 만에 철수했다. 이후 롯데와 현대, 신세계 백화점이 지역 백화점 ‘도장 깨기’에 나설 때도 대구는 무풍지대였다. 대구백화점과 동아백화점이 대구를 굳건히 지켰다. 대구백화점은 30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1995년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와 외환위기도 무사히 넘겼다.
수년째 적자…명품 브랜드도 줄 이탈
상황은 2000년대 들어 크게 달라졌다. 2003년 롯데백화점이 대구역에 입점한 뒤 명품 브랜드 이탈과 매출 감소가 본격화했다. 2011년 현대백화점 대구점, 2016년 대구신세계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입지는 더욱 쪼그라들었다.
대구백화점의 영업이익은 벌써 수년째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16년 84억 원의 영업이익 적자 폭이 지난해엔 175억 원까지 확대됐다. 2017년엔 도심아웃렛도 열었지만 1년여 만에 접었다.
프라자점의 미래도 장담하기 어렵다. ‘백화점의 꽃’이라 볼 수 있는 1층엔 루이비통과 구찌 등 명품 브랜드는 물론, 준명품급도 찾아보기 힘들다. 명품매장이 있던 자리는 화장품이 차지했다. 단골을 자처하는 박모(58)씨는 “명색이 백화점인데 명품브랜드 하나 없으니 백화점이 아니라 대형마트에 온 기분이 든다”고 했다. 앙꼬 없는 찐빵처럼 느껴졌단 것이다. 그는 "프라자점마저 문을 닫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극소수 백화점만 살아남을 것”
동아백화점에 이어 대구백화점까지 쇠락하자 신세계·현대·롯데가 각축전을 벌이던 대구 백화점업계는 신세계백화점 ‘일강’ 체제로 재편되는 분위기다. 대구신세계백화점은 개점 첫해 매출 1위로 올라선 뒤 그 자리를 한 번도 내주지 않고 있다.
백화점의 ‘급’을 나타내는 지표로 볼 수 있는 명품 브랜드만 봐도 대구신세계백화점은 세계 3대 명품으로 일컫는 에르메스와 샤넬, 루이비통이 모두 입점해 있다. 반면 이들 브랜드를 모두 품고 있던 현대백화점에선 에르메스가 철수했고, 샤넬도 8월 만료인 입점 계약 연장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한때 대구 1등을 차지한 롯데백화점 대구점도 주요 명품 브랜드가 줄줄이 이탈하고 있다.
대구의 백화점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 여파로 일부 명품을 제외한 백화점 취급 상품 대부분이 온라인 시장으로 넘어가고 있다”며 “쇼핑과 레저, 관광 등 복합공간을 갖춘 극소수 백화점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몰락한 향토백화점 길을 뒤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도시 향토백화점은 일찌감치 씨말라
대구를 제외한 다른 지방도시에선 향토백화점을 찾아볼 수 없다. 부산은 미화당백화점, 유나백화점, 태화백화점 등이 성업했으나 1990년대 서울 유명백화점 진출에 이어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모두 일찌감치 무너졌다.
부산의 대백, 광복동 약속 1번지 미화당백화점은 1949년 문을 연 부산 최초의 향토백화점이지만 1997년 부도났다. 부산 최초의 직영백화점으로, 1981년 문을 연 유나백화점도 1997년 부도를 맞고 1999년 최종 폐점했다.
특히, 서면의 랜드마크 태화백화점은 서울 백화점 진출에 맞서 공격적인 경영에 나섰지만 되레 부메랑이 됐다. 1997년 법정관리와 CEO의 극단적 선택에 이어 2001년 결국 파산했다. 2003년 인수한 업체가 패션의류 쇼핑몰로 리모델링해 운영 중이다.
대전과 광주도 사정은 비슷하다. 1979년 대전 중구 선화동에 문을 연 동양백화점은 외환위기로 무너져 2000년 한화유통에 넘어가는 등 향토백화점의 맥이 끊겼다.
광주에선 화니, 가든, 송원백화점 등 모든 향토백화점이 2010년을 전후해 문을 닫았거나 서울 대형 업체 손으로 넘어갔다. 호남 최초의 백화점인 화니백화점은 1997년 부도를 맞았고, 1986년 문을 연 가든백화점도 2010년 11월 폐업했다. 1995년 개점한 송원백화점은 1998년부터 현대백화점에 경영을 위탁하면서 향토백화점 시대를 마감했다. 2013년엔 다시 NC그룹으로 넘어갔다.
지역 한 백화점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 여파로 일부 명품을 제외한 백화점 취급 상품 대부분이 온라인시장으로 넘어갔다”며 “쇼핑과 레저, 관광 등 복합공간을 갖춘 극소수의 백화점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몰락한 향토백화점을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구= 정광진 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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