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리뷰]40조짜리 '초딩들의 놀이터' 로블록스 체험기.."근데 형 일안해?"

김근욱 기자 2021. 4. 3.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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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대세' 게임들 맞아?..고전게임 느낌 물씬
포장은 허술, 맛은 강력한 '불량식품' 같은 매력
'로블록스' 메인 화면 (홈페이지 캡처) © 뉴스1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그러니까 이 게임들은 문방구에 펼쳐진 불량식품들 같은 것이었다. 외관은 부실했으나, 내공은 탄탄했다. '달아요, 셔요, 매워요'처럼 각 게임들은 정확히 하나의 재미요소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를 끝내면 다른 것에 손이 갔다.

'미국 초딩 놀이터'로 알려진 '로블록스' 이야기다. 초딩 놀이터라 얕봤다간 큰코 다친다. 지난달 10일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로블록스의 시가총액은 42조4718억원 (2일 기준). 미국을 대표하는 게임사 EA의 시가총액과 맞먹는 수치다. 증시 데뷔 무대를 '찢었다'는 평이다.

도대체 어떤 게임이길래 이토록 난리일까. 'MZ세대 메타버스 열풍의 중심'이라는 멋진 칭호까지 붙여졌는데, 게임이라곤 '술게임'밖에 모르는 내 마음도 찢을 수 있을까. 그래서 직접 '플레이' 해봤다.

◇ 이거 '대세' 게임 맞아?

로블록스 시작 후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건, 오와 열을 맞춰선 수백 개의 게임들이었다. 로블록스에 등록된 게임만 무려 5000만 개에 달한다고 한다. 혹 게임 군대의 열병식 같기도 했다. 그들은 Δ나를 위한 추천 게임 Δ가장 주목받는 게임 Δ최고 평점 등의 완장을 차고 있었지만, 저마다 그럴싸한 매력을 어필하는 탓에 어느 하나 쉽게 선택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녹색창에 '로블록스 게임 추천'을 검색했다.

내가 추천받은 게임은 '타워 오브 헬' (Tower of Hell). 로블록스 최고 인기 게임 중 하나로 제한 시간 내에 탑을 오르는 게임이다. 누적 이용자는 107억명에 달했다. 부푼 기대를 안고 5분 남짓한 시간동안 게임을 이용한 나는 입에서 '이게 무슨~' 소리가 흘러나왔다.

벽에 붙은 사다리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올라가다 떨어지는 1차원적인 방식, 화면을 확대하면 캐릭터의 머리카락과 머리가 분리되는 '날 것'의 그래픽, 어느 고전게임에서 들었을 법한 전자 BGM 등 내가 생각한 '대작'과는 거리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로블록스 게임 '타워오브헬' 플레이 화면 © 뉴스1

◇ 마치 '불량식품' 같은 매력

글로벌 '대세'에 합류하기엔 내가 부족한 걸까. 몇 가지 게임을 더 이용해보기로 했다. '아스널'이라는 제목의 총게임에 접속하니 권총을 쥔 레고 모양 캐릭터가 등장했다. 상대를 향해 왼쪽 마우스 버튼을 눌러 열심히 쏘고, 맞고, 죽이고, 죽었다.

'프리즌 라이프'라는 술래잡기 게임도 했다. 경찰은 도둑을, 도둑은 경찰을 잡으면 되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경찰이 되어 '테이저건'으로 범인을 잡기도, 범인이 되어 하수구에 숨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몇 가지 게임을 경험한 끝에, 나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이 떠올랐다. 포장은 하나같이 허술했으나, 맛은 강렬한. 주머니 속 동전을 털어 이맛저맛 골라먹는 재미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로브록스 게임도 그랬다. 스토리, 그래픽, 스킬, 효과 등 모든 것이 평균 이하였지만, 각 게임은 저마다 고유한 '재미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수백 개의 선택지 중에서 이게임, 저게임을 골라 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로블록스 게임 '아스널' 플레이 화면 © 뉴스1

◇ 단순한 게임·낮은 그래픽이 성공요인?

어쩌면 앞서 단점으로 지적한 '단순한 방식' '낮은 그래픽'이 로브록스의 성공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로브록스에 등록된 게임은 모두 쉬웠다. 어떤 설명도 없이 무작정 게임을 시작했지만, 직감적으로 내가 해야 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로브록스가 '초딩들의 놀이터'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로브록스의 월간 활성 이용자수는 1억5000만명. 이중 16세 이하의 비중은 67%에 달한다.

그래픽이 낮으니 게임 간의 이동도 쉬웠다. 게임 하나를 시작하려면 수십 분씩 다운로드 해야하는 일반 게임과 달리 A게임에서 B게임으로 이동하는 데 20초면 넉넉했다. 이것이 이용자 '체류 시간'을 늘린 요인이 아닐까? 로블록스 IR자료에 따르면, 로블록스의 하루 평균 사용시간은 2시간36분이다. 틱톡(58분), 유튜브(54분) 등 주요 플랫폼 이용시간의 2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 로블록스의 한계

"너도 로블록스 좀 하냐?" 밤늦도록 로블록스 게임을 이용한 다음 날, 드디어 대세의 흐름에 탑승했다는 뿌듯함에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사촌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황당 그 자체였다.

"형, 초딩이야?" 자신은 이미 3년 전에 졸업한 게임이란다. 주변에 로블록스를 하는 친구들도 거의 없다고. 로블록스 같이 할 사람 찾으면 자기 동생에게 연락해보라며 '초딩' 취급을 당했다.

정말 로블록스는 초등학생만 하는 건지, 왜 중학생은 로블록스를 안하는지 묻자 또 한번 황당한 대답이 날아왔다.

"근데 형 일 안해?"

나는 더이상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의 고민 끝에 불량식품은 딱 초등학생 때까지만 즐겨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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