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밤낮 모니터만 보던 '게임폐인', 美대학에 게임 유학

오로라 기자 2021. 4. 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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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특기로 켄터기대 입학 김현영
전교 20위권 우등생, 고교 자퇴 후
프로게이머 대안학교 'GGA'진학
"공부만큼 노력해서 꿈 펼칠래요"
1일 서울 강남구 젠지 글로벌 아카데미 교실에서 국내 1호 게임 유학생 김현영(19·맨 왼쪽)군이 학교 친구들의 축하 박수를 받으며 웃고 있다. 방역 조치를 완료하고 사진을 찍을 때만 잠깐 마스크를 벗었다. /김연정 객원기자

‘겜폐(게임 폐인)’.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김현영(19)군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게임을 잘하는 것에 대한 감탄도 있었지만, 밤낮으로 게임만 해서 어떡하느냐는 걱정이 더 컸다. 그런 김군은 지난달 24일 미국 켄터키대학으로부터 입학 허가 메일을 받았다. 세계 최대 e스포츠 게임인 ‘리그오브레전드(LOL)’의 게임 랭킹과 관련 활동 경력을 인정받아 유학 문턱을 넘은 것이다. 자신의 대학 합격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을 묻자 김군은 1일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는 반응들”이라며 웃었다.

김군은 국내 ‘프로게이머 대안 학교’가 배출한 1호 유학생이다. 학교 이름은 ‘젠지 글로벌 아카데미(GGA)’. 프로 e스포츠단을 운영하는 미국 기업 젠지가 프로 선수 양성을 목표로 2019년 설립했다. 현재 재학생은 40명. 프로 선수 뺨치는 게임 훈련뿐 아니라, 미국 고교 과정 수업도 제공한다. 이 과정을 전부 거친 김군은 이를 바탕으로 미국 대학에 입학 원서를 냈다.

김군은 2019년 9월 다니던 일반고를 자퇴하고 GGA에 입학했다. ‘페이커처럼 세계 무대에서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우승하는 짜릿함을 느끼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었다. 페이커는 ‘e스포츠계의 리오넬 메시’라 불리는 한국 프로게이머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게임을 진로로 삼은 건 아니다. 김군은 “단기적으로 등수를 올리는게 가장 큰 도전이자 나의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라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밤낮으로 게임에 몰두했다. 결국 LOL 국내 이용자 중 상위 4%에 해당하던 실력을 6개월 만에 상위 0.06% 수준으로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는 수능 5등급이던 아이가 갑자기 1등급이 되는 것처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김군은 일반고 당시 전교 20위권 우등생이었다. 김군의 어머니 이지은씨는 “명문대도 노려볼 수 있겠다는 평을 듣던 아들이 갑자기 게임 연습을 한다고 전 과목 9등급이 찍힌 성적표를 가져왔을 땐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처음엔 극심하게 반대했지만, ‘엄마, 나 게임 정말 잘해’라고 말하는 아이의 눈이 너무 확고해 결국 설득당했다”고 말했다.

김군은 “모두가 나처럼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공부를 못하니 게임이라도 해야지’라는 생각은 금물이란 것이다. 그는 “GGA에서 갑자기 모든 수업을 영어로 듣게 됐는데, 예전에 열심히 공부하던 습관이 없었다면 곧바로 포기했을 것”이라며 “매일 13시간 이상 게임을 하면서도 교과 성적을 유지했다”고 했다.

1일 서울 강남구 젠지 글로벌 아카데미 교실에서 국내 1호 게임 유학생 김현영(19·아랫줄 중앙)군이 학교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웃고 있다. 방역 조치를 완료하고 사진을 찍을 때만 잠깐 마스크를 벗었다. /김연정 객원기자

향후 김군은 대학 켄터키대 소속 프로 선수팀의 일원으로 미국 현지 대학 리그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백현민 GGA 원장은 “미국은 대학 스포츠 리그들이 정규 리그처럼 인기가 많다”며 “요즘은 특히 e스포츠 리그 시장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는데, 거기서 현영이는 무조건 스타 선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대학들은 스포츠팀 소속 학생에게 거액의 장학금을 줄 뿐 아니라, 수십억원 규모의 경기 상금을 선수 개인에게 배분해주기도 한다.

프로게이머는 일반 스포츠 선수들처럼 전성기가 매우 짧고, 젋은 나이에 은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우려에 대해 김군은 “국내에서 해외 대학 진학과 프로 등단(登壇)을 동시에 하는 경우는 내가 처음”이라며 “그러지 않은 경우보다 다양한 길이 열려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그가 대학에서 선택한 전공은 커뮤니케이션과 경영학이다. 그는 “프로 외에도 스트리밍 방송, e스포츠 사업 등 다양한 진로를 열어두고 있으며, 이를 위해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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