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 식목일'에 열린 비대면 행사 '나무를 심는 사람들' [커버스토리]
[경향신문]
김모씨는 과일을 먹고 나면 씨앗을 버리지 않는다. 지피펠릿(압축배양토)에 씨앗을 넣고 발아시켜 화분에 심는다. 최근엔 원두 찌꺼기로 만든 친환경 화분에 감 씨앗을 심었다.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을 올렸다.
“작은 실천이 만드는 큰 변화라는 게 저에게 많은 의미를 줍니다.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하고 있어요. 나무를 심는 것은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일이고요. 식물을 구입하기보다는, 먹은 과일 속 씨앗을 발아시키는 걸 취미로 삼게 됐습니다.”
‘나무를 심는 사람들’은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지난달 20일부터 진행하는 ‘온난화 식목일’ 비대면 행사다. 코로나19 사태로 한곳에 모여 나무심기가 어려워진 만큼 각자 자신의 공간에 화분을 들이고 나무를 심으며 참여한다. 지난달 26일엔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활동가들만 모여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 물푸레나무, 헛개나무 등을 심었다. 이 단체는 2010년부터 3월 중하순을 ‘온난화 식목일’로 지정해 나무를 심고 있다.
시민들은 환경보전, 공기정화, 심신안정 등 다양한 이유로 나무심기에 참여했다. 집에 커피나무 화분을 들인 SNS 아이디 ‘midnsmh’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나무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는 “지구온난화 개선에 도움이 될 정도는 아니겠지만, 내 집 안에서만이라도 공기정화에 도움이 되는 나무들을 잘 키워보려 한다”고 말했다.
화장품 업체인 ‘슬로소피’는 판매 금액의 일정액을 나무 심는 데 후원하는 것으로 참여했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용기를 활용하고 있지만, 기업으로서 종이 사용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종이 낭비도 플라스틱 사용만큼이나 자연에 해로운 것인데요. 나무심기를 통해 작게나마 지구에 되돌려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업체 관계자)
기후변화로 나무를 심기 좋은 날짜는 법정 식목일인 4월5일보다 앞당겨졌다. 식목일이 제정된 1940년대 서울지역의 4월5일 평균기온은 7.9도였다. 2007~2016년에는 평균 10.2도로 2.3도가 올랐다. 식목일의 땅속 5㎝ 온도 역시 1940년대보다 3~5도가량 높아졌다. 봄철 기온이 1도 오르면 식물의 잎눈(자라면 가지나 잎이 될 식물의 새싹)이 트는 시기가 일주일 정도 빨라진다. 이 때문에 영양분이 뿌리와 줄기로 분산돼 갓 식목된 어린 나무가 성장하는 데 좋은 환경이 아니다.
식목일을 앞당겨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는 오래됐다. 2007년과 2013년, 2017년에 날짜 변경 논의가 있었지만 바뀌진 않았다. 올해는 산림청이 식목일을 3월로 앞당기는 방안을 적극 추진 중이다. 지난달 31일 발표한 ‘나무심기와 식목일 변경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선 응답자의 79.2%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나무심기 기간을 앞당겨 운영할 필요성이 있다고 답했다. ‘3월 중으로 식목일 날짜를 변경해야 한다’는 데는 응답자 절반 이상(56.0%)이 찬성했다.
기후변화의 거대한 흐름은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 막기 어렵다. 산림청은 올해를 탄소중립 원년으로 삼고 2050년까지 30년간 30억그루를 심을 계획을 세웠다. 이달 말까지 4800만그루를 심는 게 시작이다. 시민환경단체 (사)생명의숲은 산림청과 협약을 맺고 ‘탄소중립의 숲 조성’에 나선다. 탄소중립의 숲 1호는 유한킴벌리와 함께 경기 용인시 호동의 19.3㏊에 5년간 5만8000그루를 심어 조성할 계획이다.
나무를 심는 사람들은 작은 손길이 모여 ‘나무가 숲이 되고, 숲이 지구가 되는’ 날이 올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달 말 마당에 스위트사파이어포도 묘목을 심은 SNS 아이디 ‘greeny_box’는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를 고민하게 되면서 소소하게나마 참여하고 있다”면서 지구와 나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해왔다. “푸른 지구와 아낌없이 주는 나무야, 항상 고맙다. 외롭지 않게 더 많은 친구들을 심고, 산과 바다가 더 푸르게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할게.”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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