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금 한국은 공수처장이 제 차 보내 '황제 피의자' 모셔오는 나라

조선일보 2021. 4. 3.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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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전 차관 불법출금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달 7일 오후 5시 11분쯤 경기도 과천 공수처 청사 인근 도로에서 김진욱 공수처장 관용차인 검은색 제네시스에서 내리는 장면이 CCTV에 촬영됐다. 이 지검장은 이날 오후 3시 48분쯤 같은 장소에서 해당 차량을 타고 (윗사진)공수처 청사로 들어가 1시간20분가량 면담 조사를 받았다. 공수처가 이 지검장에게 ‘황제 조사’ 특혜를 제공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TV조선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공수처에 조사받으러 들어가고 나오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공개됐다. ‘황제 조사’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공수처 인근 뒷골목에 이 지검장이 외제차를 타고 들어온다. 이어 다른 차가 나타나고 이 지검장이 재빨리 뒷자리에 올라탄다. 떠나는 차 번호판에서 깜짝 놀랄 사실이 드러났다. 공수처장이 출퇴근 때 타는 관용차다. 대통령까지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수사기관장이 본인 관용차로 피의자를 모신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지검장은 조사를 마치고 나올 때도 공수처장 차를 탔다. 뒷골목에 내린 이 지검장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자기가 처음에 타고 왔던 차를 타고 떠났다. 범죄자들의 은밀한 거래를 위한 비밀 접선을 연상케 한다. 피의자가 자신을 조사할 수사기관장의 차를 타고 온다. 지금 한국은 이런 나라가 돼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수사) 보안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렵다. 공수처에 처장 관용차 한 대뿐인가. 범죄 혐의자에게 공수처장 차까지 내주며 떠받들어야 하는 까닭이 뭔가. 피의자가 대통령 수족이라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겠나. 이 지검장은 2019년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 금지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에 압력을 가해 수사를 막은 혐의를 받는다. 징역 5년까지 처벌받을 수 있는 중범죄다.

김 처장은 야당 의원이 국회에서 추궁하자 그제야 이 지검장 조사 사실을 밝혔다. 김 처장은 이 지검장 사건을 검찰에 다시 이첩하면서 ‘백지 보고서’를 보냈다. 조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전혀 알 수 없게 했다. 그러면서 이 지검장 기소 여부는 공수처가 판단할 테니 검찰은 수사를 마친 뒤 사건을 다시 공수처로 보내라고 했다. 검찰이 이 지검장을 재판에 넘기지 못하게 한 것이다. 검찰은 “해괴망측한 논리”라며 반발했고 이 지검장과 함께 재이첩된 이규원 검사를 직접 기소했다. 이제 김 처장은 “별다른 입장이 없다”고 한다. 공수처의 수사, 기소 원칙만이 아니라 그 존재 이유를 알기 어렵다. 공수처가 일시적 정권 호위 기관 이외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김 처장은 하루라도 빨리 물러나는 것이 옳고, 공수처는 폐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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