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포스텍의 고민

김민철 논설위원 2021. 4. 3.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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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정문술빌딩, 양분순빌딩, 박병준홍정희KI빌딩, 김병호김상열IT융합빌딩, 정몽헌우리별연구동… 카이스트 캠퍼스 지도를 보면 이처럼 사람 이름이 들어간 건물이 많다. 학문 연구에 써달라고 이 대학에 수백억원을 기부한 사람들을 기려 건물 이름을 명명한 것이다. 서울대에도 LG경영관, CJ어학관, SK연구동, 관정도서관 같이 기부한 기업이나 기부자 이름이 붙은 건물이 수두룩하다.

▶카이스트와 더불어 국내 양대 과학기술대학으로 꼽히는 포스텍(포항공대)에는 30여 동 건물이 있지만 기업이나 기부자 이름이 들어간 건물이 LG연구동 정도다. 포스코라는 대기업이 뒤에 있다는 이유로 대규모 기부를 하는 개인이나 기업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리과학관, 화학관, 제5공학관 등과 같이 건물 이름이 단순하다.

만물상 삽입

▶포스텍은 세계 20위권 연구 중심 대학에 진입해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배출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1986년 개교했다. 초기엔 첨단 시설에 젊고 유능한 교수진을 대거 유치해 기세 좋게 치고 올라갔다.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 평가에서 2010년부터 6년 연속 특성화 대학 분야 아시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개교 30년을 넘기면서 활력이 떨어졌다. 한 교수는 “인적 자원이 노화한 데다 어느덧 시설도 낡았는데도 재정 부족으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아 목요일 오후부터는 불이 켜져 있는 연구실이 손으로 꼽을 정도라고 했다. 포스텍은 2018년 아시아 대학 평가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20위 밖으로 밀려났다.

▶이 대학 이사회가 최근 학교를 국립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고 있다. 포스코 지분 2%와 그 계열사 주식 등 1조원이 넘는 법인 자산을 갖고 있지만 막상 학교 운영에 쓸 수 있는 자금은 다른 대학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주요 이유다. 주식 배당금 등으로 현상 유지는 가능하지만 다가올 미래에 대비해 AI대학원, 바이오센터 같은 대규모 연구 시설을 짓고 우수 연구 인력을 유치하려고 해도 재정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지난달 말 특별법까지 통과시켜 전남 나주에 한전공대를 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호남 공약이라는 이유 말고는 설립 이유를 알 수 없는 대학이다. 개교 10년까지 무려 1조6000억원이 든다. 포스텍 처럼 우수하고 필요한 대학이 재정 문제로 학교를 내놓는 것까지 논의하고 있는 마당에 황당한 일이다. ‘문재인공대’ 만들 돈으로 포스텍 같은 진짜 대학을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누구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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