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선거용 반성문에 홀릴 사람 있을까

최경운 정치부 차장 2021. 4. 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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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폭등은 투기 탓”이라던 與, 갑자기 “우리가 부족했다”
진짜 반성인지 선거 공학인지 정책 기조 지켜보면 알 일
보궐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난 3월 31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 등 민주당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반대자들은 무능하다고 비판하지만 선거 공학에 관한 한 유능한 정당이다. 악재를 돌파하고 선거 판세를 유리하게 끌고 가는 기술에서 “집권당이 괜히 된 게 아니다”란 생각을 갖게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여당의 지난해 총선 압승을 아직도 의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들이 총선 승리를 위해 얼마나 주도면밀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총선을 1년 정도 앞둔 2019년 봄, 대한민국은 미세 먼지로 몸살을 앓았다. 민주당은 곧바로 국민 건강권을 내세워 2조원이 넘는 미세 먼지 대책 예산이 포함된 긴급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나섰다. 그런데 당시 미세 먼지 추경안 편성에 참여한 한 전직 고위 관리는 “‘총선이 치러지는 이듬해 봄에 또 미세 먼지가 몰려오면 큰일 난다'는 민주당 압박에 추경으로 돈 쓸 곳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용처를 짜내느라 미세 먼지와 직접 관련이 없는 예산 항목도 일부 끼워 넣었다고 했다. 미세 먼지와 함께 찾아온 봄 소식에 1년 후 총선을 떠올린 여당이 코로나 복병을 재난지원금 카드로 돌파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미세 먼지 추경과 재난지원금 지급을 주도한 이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다. 그는 현 정권 출범 후 ‘민주당 20년 집권론’을 내걸었다. 이 전 대표는 조선 정조(正祖) 이후 민주당 집권 기간을 제외한 200년 이상을 ‘개혁’ 세력이 집권하지 못해 한국 사회가 한쪽으로 기울었다고 했다. 수구화한 한국 사회를 변혁하려면 민주당 장기 집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예산 비효율 논란에도 선거용 추경을 밀어붙이고, 24번의 정책 실패에도 서울 강남과 다주택자를 때려잡겠다는 일념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20년 집권론과 무관치 않다.

그런 민주당이 연일 ‘부동산 반성문’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반성의 대상이 모호하다. 민주당 지도부 인사들의 발언이나 성명을 자세히 읽어보면 임대차 3법 보완이나 공시가 인상 속도 조절 같은 정책 기조 전환보다 “투기 세력을 더 손보겠다”는 오기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집값 폭등과 부동산 불패 신화 앞에 개혁은 무기력했다”고 한 대목에선 여전히 ‘부동산 시장은 악(惡)’이고, 그런 시장을 이기지 못한 데 대한 분이 묻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은 부동산 폭등에 대해 “한국적 현상만은 아니다”라며 정책 실패론을 부인했다. 여당 핵심 의원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과 기조는 옳았다”고 했다.

최근 만난 한 전직 경제 관료는 ‘부동산은 끝났다’는 책을 쓴 김수현씨가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맡는 걸 보고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 전 수석은 노무현 정부 때도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며 부동산 정책에 관여했다. 그런데 당시 청와대에서 금융 당국에 부동산 폭등에 대한 ‘반성문’을 내라고 했다고 한다. 대출 등 금융 정책 실패가 투기 수요를 유발했다는 취지였다. 2주택자가 있어 전세 제도가 유지되는 측면이 있고 모든 대출자가 투기 수요일 순 없다. 그런데도 이 모두를 투기로 보고 죄악시하는 기조가 현 정부에서도 이어졌고 그 결과는 집값·전세값 폭등이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가 관료들에게 받았다는 반성문과, 지금 민주당이 쓰고 있는 반성문은 맥이 닿아 있다. 부동산을 경제 논리가 아니라 기득권의 탐욕을 꺾어놓겠다는 정치 변혁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런 점에서 여당은 선거가 없었다면 반성문을 쓰기보다 관료들에게 반성문을 받았을지 모른다. “원인이 무엇이든 우리가 부족했다”는 여당의 ‘묻지 마 반성문’이 진짜 반성인지 선거 공학인지 정책 기조 전환 여부를 지켜봐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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