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황제의 칠순 잔치에 정조가 사신 보낸 이유

유석재 기자 2021. 4.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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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선 '큰 일' 없었던 1780년
젊은 임금 정조는 실리 외교 택했다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구범진 지음 | 21세기북스 | 352쪽 | 1만7000원

조선 정조 4년이자 청나라 건륭 45년이던 서기 1780년, 한국사에선 ‘그다지 큰일이 없었던 해’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 근세사 전문가인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바로 그해를 분수령으로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가 크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조선 건국 이래 줄곧 만주족을 오랑캐로 업신여기던 조선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은 뒤 겉으로는 청나라를 섬겼지만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었다.

그런데 1780년 청 건륭제의 칠순 잔치가 열하에서 열렸고, 정조는 파견 의무도 없었던 하례 특사를 자발적으로 보냈다. 이것은 건륭제조차 기대하지 않았던 이례적인 성의 표시였다. 병자호란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고 청나라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때, 젊은 임금 정조가 실리 외교를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주목해야 할 것은 특사를 이끈 박명원의 팔촌 동생인 연암 박지원이 현장에 함께 있었고, 이로써 그 유명한 ‘열하일기’가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당시 공식 수행원 신분도 아니었던 박지원이 ‘사신 일행이 불상을 선물로 받았다'는 비난이 일자, 이를 변호하기 위해 ‘열하일기'에서 직접 본 목격담뿐 아니라 들은 이야기를 실감나게 엮어 뒤섞었다는 새로운 주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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