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 [12] 나사에선 모두가 같은 색 소변을 본다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인 1960년대. NASA에서 일하는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은 그 누구보다 출중한 능력이 있지만 능력에 걸맞은 대우는커녕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극심한 시대에 그들은 흑인인 데다 여성이기 때문이다.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2016)에서 수학 천재인 캐서린 존슨은 전산원으로 취직했지만 정작 중요한 일은 맡지 못하고 직원들의 잡일을 거든다. 도로시 본은 유능한 프로그래머이지만 정규직 협상에도 늘 실패한다. 메리 잭슨은 NASA의 그 누구보다 뛰어난 공학자지만 로켓 근처엔 가지도 못한다. 그나마 메리 잭슨을 높게 평가하는 상사 질린스키는 이렇게 묻는다. “자네가 백인 남성이었다면 엔지니어를 꿈꿨을까?” 메리 잭슨이 대답한다. “꿈꿀 필요도 없죠. 벌써 됐을 테니까.”(I wouldn’t have to. I’d already be one.) 당차지만 체념 섞인 대답이다.
캐서린 존슨은 왜 화장실을 40분씩 다녀오냐는 상사 해리슨의 꾸지람에 드디어 폭발하고 만다. 유색인종 화장실은 건물을 나가서도 한참 가야 해서 다녀오는 데만 그만큼 걸린다는 것. 백인 남성인 해리슨은 흑인 여성이 겪는 차별과 불편함을 인식하지 못했다. 해리슨은 당장 해머를 들고 나가 멀리 떨어진 화장실에 붙은 ‘유색인종 화장실’이라는 푯말을 부수며 부하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한다. “나사에선 모두가 같은 색 소변을 본다.”(Here at NASA, we all pee the same color.) 백인이든 흑인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같은 색 소변을 본다.
결국 차별이라는 장애물을 실력으로 뚫고 NASA의 전설이 된 세 여성의 실화. “누구의 도약이든 우리 모두의 도약이야”(Any upward movement is movement for us all.) 캐서린을 응원하던 도로시 본의 말처럼 그들의 도약은 궁극적으로 인류 전체의 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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