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두려움은 영혼을 먹어 치운다
[경향신문]
올해 초 미국 프린스턴 예술위원회는 ‘마틴 루서 킹의 날’과 ‘흑인 역사의 달’을 맞이하여 폴 로브슨 아트센터 옥상에 깃발을 설치했다. 이 깃발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태국·독일·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태국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작품 ‘무제 2017(두려움은 영혼을 먹는다)(백기)’로, 작가가 비영리문화단체 ‘크리에이티브 타임’이 기획한 프로젝트 ‘충성의 맹세’ 출품작으로 제작했던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타임은 저항을 상징하는 장소를 점유하는 방법으로 ‘깃발’을 선택해, 예술가 16명에게 싸울 가치가 있다고 믿는 메시지를 담은 깃발 작업을 의뢰했다. 리크리트 티라바니자는 2011년 선보였던 프로젝트의 제목 ‘두려움은 영혼을 먹는다’를 하얗게 색을 뺀 미국 국기 위에 적어 깃발을 제작했다. 작가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요리 레시피를 공유하고, 다양한 음식을 나눠 먹고, 대화를 나누는 이 프로젝트의 제목을 1974년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가 발표한 영화의 영어 제목에서 차용했다.
한국에서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소개된 파스빈더의 영화는 청소부로 일하는 늙은 백인 여성 에미와, 모로코에서 온 젊은 아랍계 이주노동자 알리의 사랑이야기다. 독일 내 아랍인을 멸시하는 정서가 팽배하던 시절, 이들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멸시와 위선이 두 사람을 어떻게 상처 입히는지 보여주는 영화에서 이 문장은 알리의 입을 통해 나온다. 주변의 배타적인 시선으로 불안해하는 에미에게 알리는 모로코의 속담을 어눌한 독일어로 전했다. 모로코의 속담은, 다양한 문화권, 다양한 인종을 거치며 혐오와 차별 사이로 퍼져나간다. 두려움을 혐오로 치유하는 시대, 두려움은 여전히 영혼을 야금야금 먹어 치우는 중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d/p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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