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질게 살아남은 바위 틈 소나무..절벽서 40m 오르락내리락 찍었다
화가인 남편이 말했다. 예술가로도 한번 살아보라고.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그러마 했다. 배낭 메고 산과 들로 나서던 여자는 2000년부터 카메라를 자신의 짐에 더했다. 15㎏이 넘는 장비를 두르고 바위에 올랐다. 사진 각도를 잡기 위해 목에, 배에, 발가락에 힘을 주고 버텼다. 근육이 부풀고 호흡이 들썩거렸다. 그 순간 그는 ‘내가 살아있구나’ 느낀단다.
강레아(53).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클라이밍 사진작가다. 7일부터 서울 인사동 갤러리 밈에서 7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삶을 이어가기 위한 ‘의지의 발현’은 여전히 그의 테마다. 이번엔 소나무다. 정원수로, 가로수로 평온한 삶을 영위하는 그런 소나무가 아니다. 바위틈에 깃들어 모질게 살아가는 소나무다.
바위에 깃든 소나무에 주목한 계기는 1990년대 후반, 인수봉에서 뿌리가 드러난 소나무를 보았을 때였다. 며칠 뒤 흙 한 포대 짊어지고 올라가 뿌리를 덮어줬다. 턱도 없는 양이었지만.
“소나무를 보면 위에서 찍을 건가, 옆에서 찍은 건가, 건너편에서 찍을 건가 정한 뒤 바위 꼭대기에서 로프를 풀어 하강하면서 촬영합니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 걸어 내려오죠. 절벽에서 30~40m는 기본으로 오르락내리락해요.”
소나무는 푸르되 그의 모든 작품은 흑백이다. 수묵화처럼, 흑백은 우리나라 풍경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강 작가는 사진 찍기 전 바위의 소나무에게 인사를 한다. “‘잘 계셨어요?’라고 하면 묵묵히 있다가 잘 내려가라는 답이 돌아온다”고 했다. 앞서 언급한 인수봉 소나무와는 더 이상 인사를 나눌 수 없다. 2019년 태풍 ‘링링’에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 소나무의 과거와 마지막 모습도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26일까지.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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