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194] 눈빛과 말귀

백영옥 소설가 2021. 4. 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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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은행이나 관공서 어딜 가나 투명 아크릴과 유리 칸막이를 볼 수 있다. 문득 ‘마음사전’에서 읽은 유리에 관한 문장이 떠올랐다. 시인은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는 차단되기 싫은 마음”이 유리를 존재하게 한다고 말한다.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게 하는 아크릴 또한 그렇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군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홀로 고립될까 두려워한다. 가까이 하면 아프고 멀리하면 외로운 고슴도치의 딜레마 같다.

창 너머 은행원의 설명을 듣고, 카페에 앉아 대화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깨닫게 된 게 있다. 서로가 서로의 눈을 더 많이 바라보고, 서로의 말에 더 귀 기울인다는 것이다. 모두 마스크로 가려진 상대의 표정을 더 잘 읽기 위해서였다. 나는 마스크 속에서 이전보다 간절해진 사람들의 눈빛과 말귀를 발견했다. 그렇게 우리들 눈에 본래 빛이 있고, 말에 귀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코로나로 소통이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은 더 늘고 있다.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참여할 수 있는 강연과 회의 플랫폼이 넘쳐 나고, 듣기만 할 수 있는 커뮤니티도 생겨났다. 변화의 속도가 세상을 혼돈에 빠뜨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길 위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있다. 어느 날, 한 시인이 유리에서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가기 싫은 마음의 역설’을 발견한 것처럼, 마스크 또한 인류 생존을 지키는 보호막에서 더 간절해진 소통의 역설로 재정의 될 수 있다.

눈과 비가 유독 많은 겨울이었지만, 끝내 봄이 왔다. 벚꽃 아래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 중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눈과 말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본다. 그렇게 우리 눈에 본시 빛이 있고, 말에 귀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명랑하고 찬란한 봄, 정진규 시인의 말처럼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를 믿고 싶다. 그렇게 예상과 달리 길었던 코로나가 예상과 달리 빨리 끝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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