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의 힘으로 준비한 항암..깔깔거리며 주사를 맞았다

한겨레 2021. 4. 2. 23: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S] 양선아의 암&앎][토요판] 양선아의 암&앎
항암주사 잘 맞는 나만의 요령
지인들의 격려와 응원 속에서 항암
"두려워 말라" 지독한 외로움 덜어
응원의 말 새기고 암세포 맞설 준비
질문 적은 수첩 들고 진료실 들어가
짧은 시간에 궁금한 것들 답변 얻어
의무기록지로 암 정보도 정확히 파악
항암주사 맞을 때 볼 동영상 마련
웃으면서 항암주사 맞아 덜 힘들고
멀미증세도 덜해 견디기 훨씬 수월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두렵지 않고 걱정이 없었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항암 주사를 맞고 온갖 부작용을 경험하고 나니, 2차 항암 날짜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게 무서웠다. 혹시라도 호중구 수치가 낮아지면 어쩌지, 항암이 밀리면 어쩌지, 부작용은 또 어떻게 감당하지 하며 걱정을 사서 했다. 1년 뒤인 지금 생각해보면, 호중구 수치는 백혈구 촉진제만 믿고 마음을 탁 내려놓으면 되고, 부작용이 나타나는 양상은 항상 같지 않으니 그때그때 대처하면 될 일이었다. 그때는 왜 그리 애면글면했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의 응원을 가슴에 새긴다

가족들에겐 태연한 척했지만, 2차 항암 하는 날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손에는 땀이 났고, 심장은 두근거렸다. 그러나 운 좋게도 그런 나의 긴장을 봄눈 녹듯 사라지게 만들어주는 이들이 존재했다.

종양내과 진료를 보기 90분 전 병원에 도착했다. 피검사를 하고 흉부 엑스선을 찍기 위해서다. 채혈실에 먼저 들렀는데, 능수능란하게 채혈하는 담당자가 내 번호를 불렀다. 채혈 담당자들의 실력은 대체로 비슷하지만, 유독 바늘이 들어가는지 모르게 주사를 잘 놓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그분’에게 딱 걸린 것이다. 속으로 ‘야호~’ 쾌재를 부르며 소매를 걷고 의자에 앉았다. “선생님~ 따봉~ 따봉~.” 친정어머니는 ‘그분’의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에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감탄사를 쏟아냈다. 나도 “선생님 정말 최고예요~. 어쩌면 이렇게 안 아프게 피를 잘 뽑으세요. 환자들은 피만 잘 뽑아도 감사하답니다”라며 꾸벅 인사했다. 피검사를 순조롭게 끝내니 그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병원 오기 전에도 기분 좋은 일은 있었다. 유머 감각이 있고 나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선배 몽덕맘(별칭)이 아침 일찍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선아야 오늘 2차 항암 날이지? 오늘 가톨릭에선 모든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야. 매년 오늘 성모님이 오신대. 오늘 너랑 같이 계실 거야. 우리 선아! 몽덕이(반려견 이름)가 응원한다고 짖는다.”

말의 힘이 얼마나 센지 나는 암 진단을 받고 나서 실감했다. 그날 아침 선배의 그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모른다. 선배에게 빡빡 민 내 민머리 사진을 보여주니 선배는 “자꾸 만져보고 싶은 두상”이라며 “빡빡머리 안 해봤음 억울할 뻔했다”며 웃었다. 나는 “나중에 만져볼 특권을 드리겠다”고 응수했다. 선배와의 대화로 긴장감이 풀렸고, 내 가슴은 온기로 가득 찼다. 또 문자 메시지로 교회 부목사님께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선아 성도님, 항암 2차 치료, 힘든 과정 잘 이겨낼 줄로 믿고 응원합니다. 힘내십시오.”

두려운 마음이 있었는데, 그 마음을 어떻게 알고 ‘두려워 말라’고 ‘정밀 드론 타깃’ 메시지를 보내셨을까. 전혀 교회 다닐 것처럼 보이지 않던 동기 영세(별칭)씨도 메시지를 보냈다. “선아씨, 힘든 항암치료 씩씩하게 견디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 나이롱 집사지만 교회 갈 때마다 기도할게요.” 피식 또 한번 웃었다.

항암치료를 받는 그 시간은 지독하게 외롭다. 독한 항암제를 혈관 속으로 주입해 암세포를 박멸하는 일은 그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고 온전히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외로운 터널 속에 들어가기 전, 여러 사람이 내게 건네준 따뜻한 말, 응원의 말은 내 곁을 단단하게 지켰다. 말들은 살아 움직여 나를 일으켜 세웠고, 나는 그 말을 방패 삼아 암세포와 싸울 마음의 태세를 갖췄다.

의무기록지와 질문을 확인한다

“6811번 들어오세요~.”(병원에서는 당일 접수 번호를 배부해주고, 접수번호로 호명을 한다) “네~.”

나는 수첩과 볼펜을 들고 친정어머니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대학병원 진료를 계속 받다 보니 진료 때 나만의 요령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바쁜 교수들과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마치 기자가 취재원을 만날 때처럼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다. 수많은 인터뷰 경험이 있는 나조차도 진료실 의자에 앉으면 이상하게 머리가 ‘멍’해지면서 의사에게 꼭 물어봐야 할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철저한 준비를 위해 1차 항암 후 나는 노트를 한권 마련했다. 내 몸 상태를 꼼꼼하게 기록하기 위해서다. 노트에는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 소변과 대변 본 시간, 물 먹는 양과 횟수, 체온, 식사 시간과 양, 위쓰림 등 부작용 양상 및 그날그날의 기분 상태 등을 기록했다.

의무기록지를 떼서 내 암에 대한 정보도 다시 명확하게 파악했다. 내가 아는 한 환자는 의사에게 “암이 복막까지 전이됐다”라고 듣고 절망에 빠졌다가 나중에 의무기록지를 보고 “복막 뒤 깊숙이 있는 림프절에 전이가 된 것이지 복막 전이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의무기록지 특히 조직검사지를 떼서 내 암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파악해둬야 의료진과 의사소통할 때 착오가 줄어든다. 유방암의 경우 카카오톡 채널에서 ‘나의 유방암 비서, 나비(NABI)’를 검색해 채널을 추가하고 조직검사기록지 사진을 보내면 무료로 알기 쉽게 번역해주니 도움이 되었다.

병원에 가기 전날엔 3주 동안의 기록과 의무기록지 등을 다시 훑어보면서 의사의 예상 질문을 뽑고, 압축적이고 간결하게 그동안의 내 몸 상태에 대해 설명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그리고 내가 반드시 의사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 목록을 미리 작성했다. 2차 항암에 들어가기 전 의사에게 물어볼 나의 질문 목록은 다음과 같았다.

1. 보통 다른 환우들은 7~10일째 호중구 수치가 떨어진다. 지난번 중간 검진 때도 호중구 수치가 1501로 기준치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서 지내다 너무 몸이 지쳐 요양병원에 갔는데, 15일째 되는 날 피검사에서 호중구 수치가 180으로 떨어졌다. 촉진제 주사를 두번 맞았고, 호중구 수치는 6560으로 올랐다. 카페에서 보니 호중구 수치를 올리는 데 닭발곰탕이 효과가 좋다고 해서 먹고 있다. 끼니마다 단백질도 열심히 챙겨 먹는다. 그런 노력을 하면 호중구 수치 안 내려가나? (의사 답: 백혈구 수치 180 나온 결과지 가져오면, 항암주사 맞고 다음날 촉진제 맞을 수 있다. 수치가 500 이하이면 보험 처리가 된다. 촉진제를 맞는 것이 호중구 안 내려가는 방법이다. 닭발곰탕은 먹어도 되는데, 근거가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것은 환자가 먹고 싶으면 먹고 만약 안 맞는다면 안 먹어도 된다.)
 2. 자연치유 전문가가 항암 후 3시간 뒤 녹두죽을 먹으면 독소가 빨리 빠진다고 한다. 그런데 친정어머니는 녹두죽이 해독 작용을 하는데, 또 항암제의 효과를 떨어뜨릴까 봐 걱정하신다. 녹두죽을 먹어도 괜찮나? (의사 답: 녹두죽 먹어도 상관없다. 앞엣것도 아니고, 뒤엣것도 아니다. 맛있으면 먹고 맛없으면 먹지 말고 그게 정답이다. 항암 땐 잘 먹어야 한다.)
 3. 항암 이후 물 2리터 이상을 먹으라고 해서 평소보다 물을 많이 먹는다. 그런데 그 부작용으로 밤에 새벽 2시, 3시, 5시 이런 식으로 잠을 깨서 소변을 본다. 지난번에 혹시 방광염이 아닐까 소변검사를 부탁드렸다. 그 결과는 어떻고, 잠의 질이 현격하게 떨어졌는데 방법은 없나? (의사 답: 물을 하루의 맨 마지막에 언제 먹나? 물 많이 먹으니 물 많이 나오는 것 당연하다. 소변검사 결과 보니 전해질이 없는 물이 소변에서 많이 나왔다. 물이 많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물이 많이 나와서 악순환이 될 수 있다. 심해지면 요붕증이 될 수 있으니 물의 양도 조절할 필요가 있겠다. 목마른 것을 억지로 참을 필요는 없지만, 저녁 6시 이후로는 목마르지 않을 정도만 먹어라.)
 4. 지난번 1차 항암 뒤 위쓰림 증세가 심해 소화기내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은 지 3주 이상 됐다. 그 약을 먹으니 위쓰림 증세는 현격하게 줄어들었는데, 계속 먹어도 되는지 궁금하다. (의사 답: 소화기내과 선생님이 15주 주셨다. 계속 먹어도 상관없는데, 2차 항암 하고 속쓰림이 덜하다 싶으면 끊었다가 증상이 나타나면 다시 먹어도 된다.)

대학병원 진료실에서 의사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넉넉히 잡아도 5분이다. 그것보다 더 짧을 때도 있다. 만반의 준비를 했더니 그 짧은 시간에 궁금했던 것들을 다 물어보고 나왔다. 만족스러웠다.

주사 맞는 시간을 견딜 방법을 찾는다

진료를 위한 대비뿐만 아니라 항암 주사를 맞는 시간도 내 나름대로 준비했다. 첫 항암의 경험을 해본 나는 2차 항암 주사를 맞을 때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주사를 맞을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어차피 인생에서 고통은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고, 삶이 내게 쓴 레몬을 준다면 가만히 앉아 쓴 레몬을 먹기보다 달콤한 레모네이드를 만들라고 했다. 어차피 항암 주사는 맞아야 하지만, 아픔·고통·두려움·외로움 등을 덜 느낄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찾아야 했다. 그때 딱 떠오른 것이 재밌는 동영상이다. 호중구 수치가 떨어져 병실에 혼자 격리돼 꼼짝 못 하고 있을 때, 날 구원해준 것은 책과 텔레비전이었다. 텔레비전을 평소에 많이 보지 않는 편인데, 요양병원에서 우연히 본 <아는 형님>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그 우울한 순간에 얼마나 비타민과 같은 구실을 하던지!

2차 항암 주사를 맞으러 가기 전날, 나는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여보~, <아는 형님> 중에서 제일 재밌는 것으로 두편만 다운로드받아서 태블릿에 저장해주라.” “응, 그래~. 혹시 ‘스카이 캐슬’ 편 봤어? 그거 엄청 재밌는데~.” “아니. 안 봤어. 나 그거 다운로드해줘. 항암 할 때 그거 볼래.”

항암 주사를 맞으면서 태블릿을 펼쳐 <아는 형님>을 보았다. 얼마나 재밌던지 낄낄거리며 주사를 맞았다. 다들 눈을 감고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데, 나 혼자만 낄낄대며 주사를 맞고 있었다. 1시간20분 정도 ‘빨간 약’ 항암제 에이시(AC)를 맞는데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주사를 다 맞았는데도, 많이 웃어서인지 1차 때보다 덜 힘들었다. 순조롭게 2차 항암 주사를 맞고 집에 돌아왔다. 1차 땐 차에서부터 멀미 증세가 심했고, 저녁 식사 하고 난 뒤 거의 해롱해롱 상태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2차 항암 땐 멀미 증세가 1차 때보다 덜했다. 1차 땐 와인과 막걸리, 소주, 맥주를 섞어 마시고 오바이트하기 바로 직전의 상태였다면, 2차 땐 멀미약을 먹지 않고 시골로 가는 버스를 오래 타서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멍한 느낌 정도의 고통이 느껴졌다. 그래도 웃으면서 항암 주사를 맞을 수 있어 감사했고, 1차 때보다 덜 힘들어 몸을 내 뜻대로 가눌 수 있어 고마웠다. 집에 돌아와 항암제가 내 몸속에 들어가 열심히 암세포들을 없애고 있는 상상을 했다. ‘벌써 전체 항암 가운데 4분의 1을 끝냈어’라는 생각을 하니 저녁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양선아 | 사회정책팀 기자

▶ 2020년 연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8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암 치료를 받고 있거나 완치 판정을 받은 ‘암 유병자’가 2018년 기준 20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다수가 자신 또는 가족이 암 환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2019년 말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한겨레> 사회정책팀 양선아 기자(anmadang96@kakao.com)의 체험기를 격주로 싣는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