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어느 쪽이 더 견고한가

남상훈 2021. 4. 2.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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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발발 이후 세 학기째 온라인으로 실시간 화상 강의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갈피를 잡지 못해 우왕좌왕했지만, 대학의 온라인 강의 시스템이 문제점을 보완해가며 점점 정교해졌고, 나 역시 프로그램 운용에 익숙해지면서 이제는 온라인 강의를 더 편하게 느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대학생 때부터 철통같은 디지털의 세계에 안전하게 보관했던 일기장 파일들은 오히려 깨져서, 암호가 손상되어서, 그 밖의 갖은 오류로 잃은 것이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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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발발 이후 세 학기째 온라인으로 실시간 화상 강의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갈피를 잡지 못해 우왕좌왕했지만, 대학의 온라인 강의 시스템이 문제점을 보완해가며 점점 정교해졌고, 나 역시 프로그램 운용에 익숙해지면서 이제는 온라인 강의를 더 편하게 느낄 정도가 되었다.

사실 온라인 강의에는 장점이 많다. 일단 프로그램이 학생들의 강의 접속 시간을 초 단위까지 정확히 알려주니 출결 여부가 즉각 확인된다. 강의 자료를 클릭 한 번으로 공유할 수 있고 화이트보드에 마우스로 판서도 할 수 있다. 과제물 수합 과정도 오프라인보다 훨씬 간단하고 학생들에게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방식도 한결 쉽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놀라운 디지털 세상의 이기를 찬양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제 수업에서 종료를 몇 분 앞두고 학생들의 발제 순서를 정했다. 스무 명 남짓한 학생들이 각기 손을 들고 발제하고자 하는 문학 작품을 언급했다. 나는 그것들을 컴퓨터 화면에 부지런히 입력했다. 수업이 끝났다. 온라인 강의 시스템의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 판서하느라 켜놓은 화이트보드며 이미지 파일 등 강의에 쓰인 자료들이 차례로 물었다. 저장하시겠습니까?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그렇게 로그아웃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방금 학생들의 발제 순서를 입력한 프로그램에도 ‘아니요’로 응했음을. 아무것도 저장하지 않은 것이다.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민망하게도 다음 수업 때 같은 일을 되풀이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잠시 망연해 있었다. 학생들이 말할 때 펜으로 종이에 받아썼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며.

생각해보면 그렇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왔다. 원래는 공책에 썼는데 대학 시절 일기장을 한 차례 분실한 후부터 컴퓨터의 한글 프로그램으로 쓰기 시작했다. 암호를 걸어둔 한글 파일을 컴퓨터 본체에, 플로피 디스켓에, 외장 하드에, 클라우드에 저장하면서 얼마나 안심했던지.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어떤가. 초등학생 때의 공책 일기장은 빛이 바래고 모서리가 나달나달해졌어도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대학생 때부터 철통같은 디지털의 세계에 안전하게 보관했던 일기장 파일들은 오히려 깨져서, 암호가 손상되어서, 그 밖의 갖은 오류로 잃은 것이 태반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어느 쪽이 더 견고한가. 어느 쪽이 더 신뢰할 만한가.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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