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노매드랜드', "집이 없다고, 모두 홈리스인 건 아니야"

강영운 2021. 4. 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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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이후 밴 타고 유랑
경제난민 삶 생생하게 그려
아카데미 6개부문 후보로
영화 `노매드랜드`는 불황으로 폐허가 된 마을을 떠난 현대 유목민들의 삶을 천천히 담아낸다. [사진 제공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무주택자(Houseless)라고, 홈리스(Homeless)인 건 아니다. 누구나 하나쯤은 자신만의 안식처가 있어서다. 남루한 셋방이라도, 세간 가득한 트럭이라도, 묵상을 길어 올리는 자신만의 신전은 대체될 수 없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2008년 금융 위기 후 마을공동체가 붕괴되고, 방랑자로 내 몰린 중년 여성 펀의 이야기다. 불황이 어떻게 개인을 균열 내는지, 또 인간은 어떻게 삶을 이어가는지를 담담하게 그린다. 미국 아카데미 6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됐다. '미나리'의 강력한 경쟁상대다.

 남편과 사별한 펀은 홀로 큰 밴을 타고 전역을 떠 돈다. 주유소 한 켠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거대 기업 아마존의 물류 창고에서 단기 일자리로 연명한다. 방랑자에게 길은 집이자 학교였다. 스페어 타이어를 가는 법을 배우고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면서 삶의 실타래를 풀어나간다.

 감정의 과잉으로 흐르기 쉬운 주제임에도, 극단으로 흐르지 않는다. 유랑자의 삶을 여과없이 담아낸다. 공용 화장실에서 세면을 하는 모습이나, 밴 안에서 변을 보는 장면도 사실적이다. 아들을 잃은 방랑자, 미래를 잃고 술에 절어사는 히피들, 시한부를 선고받고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할머니까지.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고, 감정이 차오르다고 또한 이지러진다. 서사가 밋밋하지만, 영화의 잔향은 깊이 남는다.

 긴장이 흐르는 장면은 펀이 정착민들인 가족·이웃에게 돌아갔을 때였다. "금융위기에 집을 더 샀어야 해. 지금 엄청나게 부자가 됐을 텐데". 이웃들의 욕망에 펀은 욕지기가 났다. 누군가의 아픔과 상실을 돈벌이로 여기는 저속한 태도 때문이었다.

 사전 정보가 없었더라면, 다큐멘터리로 읽혔을 것이다. 거친 삶을 이어가는 펀을 연기하는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방랑자의 모습 그대로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은 경제 대국 미국을 은유할지도 모른다. 맥도먼드는 '노매드랜드'에서의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의 현대적 유목민의 삶을 그대로 그려낸 건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인 감독 클로이 자오다. 베이징 출신으로 고등학생 시절부터 미국에서 생활했다. 2014년에는 사우스 다코다 아메리칸 원주민 청소년들의 삶을 다룬 '내 형제들이 가르쳐준 노래'를 연출했다. 3년 뒤에는 낙마 사고로 카우보이로서의 삶을 접어야 했던 브랜디의 이야기를 담은 '로데오 카우보이'를 선보였다. 미국 중서부 소외된 이들을 탁월하게 그린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이때부터다. 경계인으로 미국 사회를 견뎌 온 그의 명민한 감각은 청진기처럼 사회의 아픈 곳을 들춘다. 지난해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노매드랜드'로 여성 감독으로 두 번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방랑자의 삶은 하나하나 비루하기 이를 데 없는데, 그들이 누비는 땅은 아름답기만 하다. '미나리'가 이민자의 과거를 보듬는다면, '노매드랜드'는 광야에서 방황하는 현대 미국인을 위로한다. 닮은 듯 다른 두 작품을 비교하는 것도 씨네필에겐 즐거운 일이다. 개봉은 15일.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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