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내장이랑 간 많이~!" 순댓국집 주인 좋아할까?

한겨레 2021. 4. 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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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박찬일의 안주가 뭐라고]

순댓국. 클립아트코리아

옛날에 내 친구가 있었다. 이 녀석이 입시에 실패하고 가출했다. 배는 고프지, 한겨울이라 춥지, 해는 저물지, 하여간 따뜻한 집이 그리웠다. 그렇다고 가출 당일 귀가하면 그건 늦은 귀가지 가출이 아니므로 버티기로 했다. 당시엔 가출했다가 당일 귀가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겁쟁이로 취급받았다. 궁하면 다 통한다고, 추위를 막을 방법이 있었다. 그때는 연탄재를 대문 밖에 그대로 버렸다. 녀석은 그걸 껴안고(?) 추위를 버텼다. 그때 나온 시가 이거다.

“연탄재 함부로 버리지 마라. 가출 청소년이 껴안고 버티느라 집에 안 간다.”

문제는 허기였다. 요즘은 배가 고프면 절친에게 휴대전화를 쳐서 카뱅(카카오뱅크)으로 돈을 받거나 엄마 카드를 쓰면 되지만 그때는 시장에 가야 했다. 걸인이 시장에 모이는 건 이유가 있는 법이다. 우선 구걸을 할 수 있고, 여차하면 뭐라도 주워 먹거나 최악의 경우 훔칠 수 있다. 시장 물건은 노상에 진열되어 있고 절도방지용 태그가 안 붙어 있으니까.(옛날에 무슨 태그냐고 따지지 마라.) 그는 시장 한 바퀴를 돌았다. 순간 보이는 게 있었다. 순댓집이었다. 막 쪄낸 순대가 김을 무럭무럭 피워 올리는.

그는 눈이 휙 돌아갔다. 펄펄 끓는 함지 위에 똬리를 튼 순대 한 가락을 집어 들고 튀었다. 이때 주인 할머니가 뒤따라오면서 이렇게 외쳤다.

“헐레벌떡! 학생, 그렇게 뛰다간 순대 다 식어. 안 쫓아갈 테니까 돈 생각 말고 맘 편히 먹어!”

정말 그랬다면, 삼각지 국숫집의 신화처럼 되는 것인데…. 참고로, 그 국숫집에서 돈 없고 배고픈 이가 국수를 먹고 그대로 줄행랑을 치자 맘씨 좋기로 소문난 천사표 주인 할머니가 쫓아가면서 “먹고 급하게 뛰면 체하니까 뛰지 말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순댓국집 할머니는 그럴 여유가 없으셨던 것 같다. 그가 장물을 손에 쥐고, 같이 가출한 친구랑 만나기로 한 집결지에 나타났다. 그는 엉엉 울고 있었다. 순대 한 가락을 훔친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 고난을 청산하고 집에 돌아가서 참회하겠다는 의지의 오열이었을까. 친구가 어깨를 두드리며 “정태야(실명이다) 너무 슬퍼 마라 어쩌고저쩌고” 하고 위로했다. 그러자 그가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씨바, 그게 아니고. 손 다 데었어, 으허헝.”

막 쪄낸 순대가 얼마나 뜨거웠겠는가. 게다가 반들반들하게 기름이 발라져 있다. 기름은 빨리 식지 않는다. 그걸 들고 냅다 뛰느라 미처 몰랐는데, 뛰다 보니 엄청나게 뜨거웠다는 얘기다. 자고로 순대를 훔치면 손바닥에 2도 화상을 입는 벌을 받는다는 게 의학계의 정설이다.

요즘 시장은 뭘 사러 가기도 하지만 먹으러 가는 곳으로 더 유명해지고 있다. 시장 맛집은 주요 검색어다. 싸고 맛있다. 시장 안에는 반드시 잘하는 순댓국집이 있게 마련이다. 지방 시장일수록 확률이 높아진다. 내가 가끔 가는 사당동의 한 시장 안 순댓국집에는 희한하게도 이런 글귀가 붙어 있다.

‘순댓국에는 순대가 안 들어 있습니다.’

해석하면, 순대와 머리고기, 내장 등의 부산물로 만드는 것도 순댓국이라 사람들이 부른다, 그런데 우리 집은 순대를 안 넣는다, 하지만 다들 그걸 순댓국이라 부르니 하는 수 없이 순댓국이라 이름 지었다, 그러니 컴플레인은 하지 마라. 먹고는 별점 테러할 생각일랑 말라 이런 뜻인 것이다. ‘칼국수에 칼 안 들어간다’ 수준의 난센스 문제가 아니다. 이런 관습은 심각한 논의가 필요하다. 갈비가 안 들어간 갈비탕은 사기죄로 걸린다. 그러나 순대 안 들어간 순댓국은 미리 밝혀두면 전혀 문제없다.

순대는 이렇듯 논란의 음식이다. 순대 안에 당최 아무 상관 없는 당면을 넣을 생각을 최초로 한 사람은 누구인가(아무도 모른다), 왜 돼지는 죽은 것도 억울한데 사람들은 제 창자 안에 제 피와 고기를 넣어 두 번 죽게 하는가(더구나 당면처럼 엉뚱한 걸 넣어 사자를 유린하는가!), 멀쩡한 순대를 그냥 먹지 왜 매운 양념에 볶아서 역시 두 번 죽이는 사파(邪派)가 등장했는가, 도대체 순대 찍어 먹는 양념은 뭐가 정통인가. 다음 사지에서 고르시오, ① 초장 ② 막장 ③ 소금 ④ 고춧가루 소금.

그러자 또 다른 주장이 나왔다. 순대는 아무 것도 찍지 않는 게 정통이다, 아니다 새우젓이 진짜다. 아니다, 깨소금을 뿌린 소금이 원조다…. 아, 이 글을 읽은 수많은 독자는 또 얼마나 인터넷 댓글로 토론을 벌여 신문사 시스템 다운을 시킬지 벌써 겁이 난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순댓집에서 “내장이랑 간 많이”라고 외치면 주인이 좋아할까, 싫어할까.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내장을 순대 양에 맞추어 이미 준비했으니 적절히 주문해주는 게 좋다, 노노! 내장은 순대보다 비싸므로 시킬수록 손해다.

순댓집 주인에게 물어봤다. 정답은 ‘오소리감투는 몰라도 다른 내장은 비싸지 않으니 같이 달라고 해도 문제없다. 어차피 떨어지면 달라고 해도 못 준다’이다. 쿨 하시다.

오소리감투는 돼지 위다. 이거 요구하면 일단 순댓집에서 좀 알아준다. 많이 달라고 하면 진상이다. 비싸고 양이 적어서다.

다음 시간에는 순대도 아닌데, 순댓집에서 팔리는 억울한 존재인 돼지머리 안주에 대해서 구라를 풀 예정이다. 요즘 유행하는, 도살장 직원들만 먹었다는 전설의 ‘뒷고기’가 바로 돼지머리라는 설의 진위를 파헤쳐 볼 작정이다. 갓 삶은 돼지머리 뭉텅뭉텅 썰어서 새우젓 찍어 맑은 거 한 잔 딱!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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