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대형견'이 산책할 때만 벌어졌던 일

남형도 기자 2021. 4. 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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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왜 큰 개 데리고 다녀", 위협과 시비 잦아..남편·아들이 산책할 땐 없었던 일, '열등감'서 비롯
진돗개 백약이가 산책하다 보호자를 바라보는 사랑스런 모습.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시비를 걸고, 그게 여자 보호자일 땐 더 빈도가 잦다고 했다. 전문가는 그런 가해를 하는 이들의 마음에 '열등감'이 깔려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자세한 설명은 하단에)./사진=백약이 보호자님

같은 개를 같은 시간에 산책시켰는데, 남편은 괜찮고 아내만 자주 불쾌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순둥이(진도 믹스, 3살) 가족 얘기다. 저녁 8시쯤이면 돌아가며 산책을 시켰단다. 산책 코스도 같았다. 미리 더 언급하자면, 순둥이는 성격도 얌전해 짖거나 달려드는 법이 없었다. 남편과 아내 보호자 모두, 순둥이를 산책시키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다녔고, 사람이 올 땐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순둥이를 다루기에 힘도, 요령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단다.

그런데 아내 보호자가 산책할 때만 시비 거는 이들이 많았단다. 법적으로 입마개를 해야 하는 견종이 아님에도 "입마개를 왜 안 하냐"며 으름장 놓는 건 예사이고, "여자가 왜 이런 큰 개를 데리고 다녀!"하며 반말로 예의 없게 구는 경우도 많았다. 주로 50대 이상 남성과 여성이 가장 많았단다. 다시 강조컨대, 순둥이는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으며 한쪽에서 얌전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반면 남편 보호자는 단 한 번도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 그는 "못마땅하게 순둥이를 보는 사람은 있어도, 시비를 걸거나 뭐라고 하는 경우는 못 봤다"고 했다. 그 뒤로 부부는 순둥이를 함께 산책시켰고, 아내 보호자는 기분 나쁜 일을 겪지 않게 됐다고 했다.

여성과 대형견은 '시비 대상'…제보 쏟아져
여성이 대형견을 데리고 산책 나갔을 때 벌어지는 일을 아시냐는 제보를 받았을 때, 처음엔 설마 그럴까 싶었었다. 그러나 실제 그런 일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가 수도 없이 쏟아졌다./사진=뉴스1
순둥이네 가족에게만 벌어진 일이라면 기사가 안 됐을 것이다.

비슷한 피해를 겪었단 제보가 수없이 쏟아졌다. 심모씨는 차량 밑에서 우연히 유기견을 발견한 뒤 구조해 가족이 됐다. 진도 믹스이고, 두 살이다. 심씨의 강아지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으며, 흥분하거나 짖지 않는다. 늘 목줄을 하고, 배변 봉투를 지참해 변도 잘 치운다.

그렇지만 산책할 때마다 시비가 많이 걸린다고. 한 번은 공원에서 환경 미화를 하는 분이 심씨에게 오라고 하더니, "입마개를 왜 안 하는 거야? 입마개 해야지"하며 떠들어댔다.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가만히 앉아 잔소릴 들어야 했다. 심씨는 "여자인 저와 강아지 조합일 때 이런 상황을 겪는 빈도가 가장 잦다"며 "남편에겐 이런 일이 없었다"고 했다.

때론 막말에 폭력까지 당한다고 했다. 은송이(검은 래브라도 리트리버) 보호자는 "계집애가 왜 큰 개를 끌고 다니냐는 말까지 들었다"며 "대형견을 반려하는 가정에선 아들이나 남편 등이 산책에 함께 가는 게 안전하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고 했다.

백약이(진도) 보호자는 "산책 중에 느닷없이 쓰레기를 던지는 할아버지도 만나봤고, 다짜고짜 욕하고 경찰을 부르겠다는 아주머니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입마개 착용 의무 견종이 아님을 설명했더니 '젊은 X이 싸가지가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며 "진돗개와 여자 보호자 조합은 더욱더 많은 시비에 노출되더라"라고 토로했다.

액션캠 달고 산책하는 게 '일상'
액션캠을 달고 산책하는 게 일상이 된 애기(진돗개 흑구)와 순딩이(진돗개 호구) 보호자님. 산책할 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늘 조심하고 멀리서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지켜본다. 그럼에도 시비 거는 이들이 많다고./사진=애기순딩이 보호자님
산책하고 싶을 뿐인데 이렇듯 험한 일을 겪는 게 여자 보호자들 일상. 그러니 몸에 부착하는 캠코더를 챙기는 게 필수가 됐단다. 갈등이 불거졌을 때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다.

진돗개(호구)를 4년째 키우는 보호자는 매일 다니던 공원서 아주머니에게 시비가 걸렸다. 그 아주머니는 다짜고짜 "무서우니까 개 데리고 나오지 말라"며 인상을 썼다. 그의 개는 사람들이 다닐 때 구석에 얌전히 있다가, 지나가면 나왔었다. 그런데 대뜸 불쾌하고 무례하게 굴어 화도 나고 억울해 눈물도 났다고.

그 뒤로는 바디캠을 사서 목에 걸고 산책 다닌다. 보호자는 "시비 거는 사람이 생기거나 목줄 안 한 개가 달려들거나 할 때 증거가 될까 싶어서 샀다"고 했다.

리미킴 펫트워크 대표는 "제주에선 대형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여성에게 술 드신 할아버지가 소주병을 던진 영상도 있었다"며 "여자 가족이 산책시킬 땐 '이런 일 당했다'며 힘듦과 속상함을 토로하는데, 남자 형제나 아버지는 겪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 피해를 막기 위해, 위협하는 이들의 정보를 공유하려 만든 앱이 펫트워크였다고.

심리 전문가 "약자만 골라 혐오, 열등감 깔려 있는 것"
은송이는 산책을 무척 잘하는데도, 이유 없는 위협을 많이 당한다고 했다. 여성 보호자라서 시비도 많이 겪고 때론 성희롱까지 당한다고 했다. 가해자의 심리엔 '열등감'이 깔려 있는 거라고, 비겁한 거라고, 심리 전문가가 그리 말했다./사진=은송이 보호자님
여성 보호자가 대형견을 산책시킬 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가 뭘까. 혹여나 그런 가해 경험이 있는 이들을 위해, 당신의 그 마음이 뭔지 심리 전문가에게 물어봤다.

"그 심리적인 기저엔 열등감이 깔린 겁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열등감이란, 다른 사람에 비해 뒤떨어졌거나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만성적 감정이다.

그러니 열등감이 폭발할 때 대상을 정해 공격하는데, 그게 물리적 힘이 동등하거나 더 강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이에게만 향하는 거라고 했다. 임 교수는 이를 두고 "비겁한 것이고 비난받아야 한다"고 했다. 성폭력이나 강남역 일대서 벌어진 묻지마식 위협과 침 뱉기 등도 비슷한 맥락이라 했다.

성별 특성에 따른 '선입견'도 함께 작용하는 거라 했다. 임 교수는 "큰 개를 힘으로 통제하는 게 아니라, 잘 훈련됐는지 친밀한지 등 이런 특성이 중요한데, 여성은 큰 개를 못 다룰 거란 선입견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성은 마치 운전을 잘 못 하는 것처럼 비하하는 '김여사' 등 혐오 표현과 같은 맥락이라고 봤다.

그러니 '약자 혐오'에 대해 나서서 비난하는 사회적 문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임 교수는 "흑인이 아시아계 사람을 때릴 때 아무도 비난을 못 했는데, 사회적 약자를 괴롭힐 때 잘못됐다고 참견하는 좋은 오지랖 문화가 필요하다"며 "그런 것만 해줘도 움찔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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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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