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초중생이 푹 빠진 게임, 로블록스 신드롬

안상현 기자 2021. 4. 2.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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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미국 16세 미만 55%가 로블록스 게임, 학부모도 배우느라 난리

월간 이용자(MAU) 수 1억6600만명에 하루 평균 이용자(DAU) 수는 3713만명. 동시 접속자 수는 570만명을 넘나들고, 한 번 시작하면 평균 2시간 26분을 이용한다. 요즘 전 세계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빠져들고 있다는 온라인 게임 서비스 로블록스(Roblox)의 위상이다. 월간 이용자 수로 이 분야 최고라던 ‘리그오브레전드(LOL)’의 1억1100만명을 가뿐히 뛰어넘고, 평균 이용 시간으로는 세계인을 사로잡은 소셜 미디어 틱톡(58분)과 유튜브(54분)가 근처에도 못 온다.

해외 언론에선 하루가 멀다고 로블록스 이야기가 쏟아진다. 지난달 10일 뉴욕 증시에 상장, 당일 시가총액 380억달러(약 43조원)를 달성하며 경제 면의 단골 소재가 됐고, 사회 면엔 로블록스에 빠진 자녀와 부모 간의 갈등 이야기가, 사람들 면엔 로블록스로 돈을 벌어 부모님의 주택담보대출을 갚아줬다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로블록스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자 미국 캘리포니아의 방과 후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업체 ID 테크는 학부모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2월부터 ‘로블록스 101’이란 무료 워크숍을 운영 중이다.

로블록스는 단순한 게임을 넘어, Z세대(2000년대 중반 이후 출생 세대)와 알파세대(2011~2015년 출생 세대)의 대표 문화이자 일상생활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에선 16세 미만 어린이의 절반 이상이 로블록스를 하고 있고, 10대의 52%는 현실 친구보다 로블록스 내 관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나타났을 정도다. 로블록스 붐은 한국으로도 옮아 붙고 있다. 국내 모바일 게임 이용자 수 기준으로 벌써 전체 게임 중 4위(2월 기준)다. 도대체 어떤 게임 서비스이기에 전 세계가 로블록스에 열광하고 있는 것일까.

◇이용자 2억명에 개발자는 800만명

로블록스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공학과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데이비드 바수츠키(58) 로블록스 CEO(최고경영자)가 공동창업자 에릭 카셀(2013년 사망)과 함께 2006년 내놨다. 15년 전 등장한 서비스인 만큼 겉모습은 볼품이 없다. 게임 캐릭터는 마치 블록 장난감 레고(LEGO)처럼 투박·단순하고, 배경 그래픽은 만화 영화를 닮았다. 실사(實寫)에 가깝게 진화한 최신 게임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로블록스의 경쟁력은 독특한 운영 방식에 있다. 게임 회사가 아닌, 이용자가 게임을 만들어 올리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 게임을 다른 로블록스 유저들이 해보고 재미가 있으면 친구들을 불러들여 함께 즐긴다. 게임이 소문을 타 이용자가 북적이면 아이템 판매로 돈도 번다. 여러 면에서 유튜브와 비슷해 ‘게임계의 유튜브’라고도 불린다.

로블록스엔 지난해 말 기준 800만명의 게임 크리에이터와 이들이 만들어 올린 5000만개 이상의 게임이 있다. 전체 이용자는 2억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유튜버는 별도의 촬영 장비나 영상 편집 소프트웨어가 필요하지만, 로블록스는 게임 제작 도구 ‘로블록스 스튜디오’를 무료로 제공한다. 이를 이용하면 복잡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몰라도 게임을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 수 있다. 시뮬레이션 게임 ‘심시티’나 ‘심즈’처럼 쉽고 직관적이다.

RPG(역할수행게임), FPS(총싸움), 레이싱, 어드벤처, 캐쥬얼 등 온갖 종류의 게임이 있고, 하루 수만개, 연간 2000만개의 새 게임이 올라온다. 가상 모임이나 콘서트를 열기 위한 공간을 열 수도 있다. 이 회사가 지난해 청소년 이용자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응답자의 62%가 ‘대화’를 주요 활동으로 꼽았다. 로블록스가 청소년의 ‘사교장’ 역할도 하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 힙합 뮤지션 릴 나스 엑스는 지난해 11월 로블록스에서 이틀간 네 차례 콘서트를 열어 3300만뷰를 올리기도 했다.

◇연간 3700억원의 개발자 소득 창출

이처럼 게임 이용자의 적극적 참여를 통한 몰입(沒入)과 끊임없이 갱신·재생산되는 콘텐츠가 로블록스의 경쟁력이다. 최근 로블록스에 대한 투자 보고서를 낸 삼성증권은 “현재 시점에서 가장 진화된 형태의 ‘메타버스 플랫폼(가상현실세계 서비스)’”이라고 분석했다.

로블록스는 단순한 가상현실세계가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경제’가 됐다. 게임을 즐기던 청소년들이 로블록스 게임 개발자의 길로 접어들면서 이들의 성공 스토리가 화제다. 로블록스의 최고 인기 게임 중 하나인 ‘탈옥수와 경찰(Jailbreak)’을 만든 알렉스 발판즈(22)가 대표적이다. 그는 로블록스에서 만난 친구와 9세 때부터 게임 개발에 몰두, 고등학교 3학년이던 지난 2017년 이 게임을 내놓았다. 탈옥수와 경찰의 누적 이용자 수는 48억명으로, 게임 내 아이템 판매액은 연간 수십억원으로 추정된다. 그는 현재 듀크대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 중이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등교를 못 한 아이들이 로블록스에 모여들면서 로블록스의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지난해 4분기 기준 로블록스의 일일 이용자 수는 1년 만에 94% 늘어난 3713만명에 달했고, 이를 바탕으로 로블록스는 게임 개발자들에게 3억2900만달러(약 3731억원)의 수익을 배분했다. 미국 벤처 캐피털 메리테크의 크레이그 셔먼 경영 이사는 “로블록스는 이미 유튜브 같은 창업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면서 로블록스에 구축된 경제 구조가 현실 세계 직업으로 연결될 만큼 높은 수익성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미국 CNBC는 “작년 한 해 127만명의 개발자가 벌어 들인 평균 수익은 1만달러(약 1300만원), 상위 300명은 10만달러(약 1억1300만원) 이상을 벌어들였다”고도 보도했다.

로블록스는 게임 내에서 가상화폐 ‘로벅스(Robux)’를 쓴다. 게임 내 아이템과 유료 게임 입장권 구매 등 로블록스 내 모든 거래는 로벅스로 이뤄진다. 코인 하나당 0.0035 달러로 환전 가능하며, 이것이 회사 매출과 개발자 수입의 원천이 된다. 게임에서 사용된 로벅스는 수수료(게임 아이템 기준 30%)를 떼고 게임 개발자의 수입이 된다.

이러한 수익 구조는 광고 수익에 기반한 유튜브, 또 게임 머니로 수익을 올리기 어려운 일반 게임들과 다르다. 게임 시장 조사 기관 뉴주(Newzoo)의 시장 분석 책임자 캔디스 머드릭은 “로블록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게임 그 이상”이라며 “많은 게임에 사용자 제작 콘텐츠가 있지만, 전체 비즈니스 모델이 이런 (이용자가 창작한) 콘텐츠 위에 구축된 게임을 찾긴 어렵다”고 했다.

로블록스용 게임 제작 소프트웨어 ‘로블록스 스튜디오’로 게임을 만드는 모습.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한 복잡한 코딩 기법을 몰라도 손쉽게 게임을 만들 수 있다. /로블록스

◇'게임 기업' 아닌 ‘테크 기업’

가상공간 안에 거대한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게임 제작과 운영은 물론이고 게임 내 결제와 환전, 정보 보안 등 전 과정에 걸쳐 유기적으로 연결된 강력한 IT(정보기술) 인프라가 필요하다. 로블록스의 강점 중 하나가 이를 집약한 이른바 ‘로블록스 클라우드’다. 게임 서비스를 완전히 클라우드화해 수백만명의 동시 접속자로부터 쏟아지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해 낸다.

차세대 첨단 산업이라는 VR(가상현실) 기술력도 갖췄다. 로블록스는 2016년 VR 기기인 ‘오큘러스 리프트’와 ‘HTC 바이브’를 위한 VR 콘텐츠를 출시하고, 2017년에는 어지럼증 완화를 위한 ‘컴포트 캠’ 기술 특허를 출원하는 등 시장 선점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페이스북이 새로 출시한 ‘오큘러스 퀘스트2’가 3개월도 안 돼 100만대 넘게 판매되는 등 인기를 얻자 로블록스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김중한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로블록스는 게임 업체라기보단 테크 기업”이라며 “비용 구조만 봐도 개발자에게 주는 돈을 빼면 인프라와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가 가장 크다”고 말했다. 로블록스는 지난해 인프라 구축에 2억6420만달러(약 3000억원), R&D(연구개발)에 2억140만달러(약 2280억원)를 썼다. 한 해 지출의 절반 수준이다.

◇부족한 확장성·수익성은 과제

승승장구 중인 로블록스도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우선 어린이와 청소년에 치우친 이용자를 전 연령대로 확대하는 것이다. 로블록스 이용자 중 16세 이하의 비중은 67%에 달한다. 메타버스 전문가인 김상균 강원대 교수(산업공학)는 “이는 네이버Z의 메타버스 서비스 ‘제페토’와 비교가 되는 부분”이라며 “(제페토는) 소셜 기능에 방점을 둔 만큼 다양한 연령에 대한 확장성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제페토는 2018년 서비스를 시작해 현재 누적 이용자 수가 2억명에 달한다.

회사가 설립 이후 지금까지 돈을 벌지 못한 적자 기업이라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로블록스의 작년 영업 손실은 2억6610만달러로 전년 영업 손실 대비 3.5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고속 성장으로 인프라 등 투자를 크게 늘린 탓이다. 매출이 지금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에는 수익성에 대한 우려가 적지만, 성장 속도가 처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다만 로블록스는 로벅스 판매 시점과 매출이 잡히는 시점 간에 시차가 있어 매출 대비 영업 손실이 커 보이는 것뿐이란 분석이 있다. 이용자들이 로벅스를 살 때가 아닌, 게임 안에서 로벅스를 소비하거나 현금으로 환전할 때 매출로 잡히기 때문이다. 즉 실제 매출은 더 크고 로블록스가 절세를 위해 의도적으로 영업 적자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작년 로블록스에 순유입된 현금을 나타내는 잉여현금흐름(FCF)으로 보면 4억1120만 달러로 전년(1450만달러) 대비 28배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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