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중국도 두려워하는 대만 반도체의 힘

이길성 산업부 차장 2021. 4. 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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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부터 美전투기 부품까지 반도체 장악한 대만 TSMC
미·일에 공장·연구센터 검토… 中에 공장 둔 삼성은 어떻게?

석유 판매소 앞 장사진, 주유소를 에워싼 차량 행렬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일 것이다. 1970년대 초반 1차 오일쇼크,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걸친 2차 오일쇼크 때 지구촌 풍경이 그랬다. 반세기 지난 지금 새로운 오일쇼크가 지구촌을 덮치고 있다. 전기차, 5G 이동통신, 인공지능을 구동시키는 ’21세기의 오일’인 반도체 부족 사태 얘기다. 옛날 오일쇼크가 중동발이었다면, 이번 쇼크의 진원은 TSMC(대만), 삼성전자(한국) 같은 첨단 반도체 회사들이 포진한 동아시아다. 지구촌 각지 자동차 공장에 이어 일부 가전 공장 라인까지 멈춰 서자 전 세계가 이들을 향해 “반도체 좀 달라”며 아우성이다.

세계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의 파운드리 라인(팹16) 외부 모습. /TSMC

21세기의 반도체 쇼크를 20세기 오일쇼크에 비유하는 이유가 있다. 그 수급이 지정학적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반도체 지정학’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존재가 전 세계 파운드리(위탁 생산) 시장의 60~70%를 장악한 대만의 TSMC다. 미국 인텔도, 한국 삼성전자도 넘보지 못하는 최강의 시스템 반도체 제조 기업이다. TSMC는 대만 말고는 아직 대규모 해외 공장이 없다. 미·중이 서로를 동반자라고 할 때만 해도 TSMC의 입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미·중이 신냉전 시대로 치닫고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까지 제기될 정도가 되면서 얘기가 달라지고 있다.

반도체 자립을 갈망하는 중국은 최근 수년간 TSMC 기술자들을 빼내갔다. 하지만 ‘대륙판 TSMC’가 등장했다는 말은 들려오지 않는다. 반도체 업계에선 “인텔·삼성전자도 못 따라잡는 기업이 TSMC”라며 “강제로 뺏는 것 말고는 그 같은 기업을 다른 곳에 만들 방법은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중국은 안정적인 원유 수송로 확보를 위해 지구 반 바퀴 거리에 이르는 21세기판 육·해상 실크로드(일대일로)를 필사적으로 구축했다. 하지만 불과 180㎞ 건너 대만에 있는 TSMC는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것이다.

대만 TSMC 웨이퍼 공장 내부 모습.

애플 아이폰용 부품부터 최강 스텔스 전투기 F-35에 들어가는 군용 반도체까지 TSMC에 의존하는 미국은 TSMC ‘어르고 달래기’에 여념이 없다. 거대 중국에 맞선 인구 2360만 대만의 최강 방위 전략이 TSMC라는 말까지 나온다. 미국은 중국이 대만을 무력 침공해 TSMC를 손에 넣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은 한편으론 미 애리조나에 TSMC 공장도 끌어왔다. 공장 신설에 30조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TSMC는 일본에 연구센터와 생산 라인 신설도 검토 중이다. 제대로 된 반도체 기업 하나 없이 기술 굴기의 사다리를 올라야 하는 중국으로선 TSMC를 축으로 한 반중(反中) 반도체 동맹은 열불이 터질 일이다.

오는 3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중국 푸젠성 샤먼(廈門)으로 간다. 대만 영토 진먼다오(金門島)의 새벽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대미(對美) 강경 쇼맨십에 능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는 것이다. 샤먼에서 서북쪽으로 1400㎞ 떨어진 시안(西安)에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공장이 있다. 중국 IT업계의 거대한 수요를 배경으로 한 중국의 압박 때문에 삼성전자가 모래 먼지 날리는 그곳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지었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TSMC를 상대로 한 기술 주도권 싸움도 버거운데, 볼모 아닌 볼모를 중국에 두고 있는 삼성전자로선 미·중 갈등 속에 균형 잡기가 힘겨울 수밖에 없다. 정 장관이 부디 왕이와 마주 앉기 전 선거판에 활용할 만한 ‘시진핑 조만간 방한 추진’ 같은 몇 마디를 기대하기보다 21세기 반도체 지정학 속 한국의 위치를 가슴에 새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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