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쉬고, 혀를 차고, 가사도 없다..낯선 이 음반, 대중음악일까
"좋아할 곡보다 좋은 곡 들려주고 싶어" 공간반응>
[경향신문]
한희정의 최근 음반 <공간반응>은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한희정이 20년 가까이 인디음악계에서 활동하는 동안 들려줬던 포크·록 계열 음악이 아니라 당황스럽고, 이 음반을 ‘대중음악’ 영역에 넣을 수 있을지 몰라 혼란스럽다.
일단 가사가 없다.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등 클래식 악기들이 종잡기 힘든 멜로디와 화음을 쌓으면, 한희정은 한숨, 허밍, 물 마시는 소리, 혀 차는 소리 등으로 악기 소리 사이에 틈입한다. 곡과 곡 사이에 “이 프로젝트는 소리를 매개로 주고받는 비가시적 현상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감각을 확장하고 확고히 하기” 등 알쏭달쏭한 내레이션을 넣었다.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밴드 푸른새벽의 보컬리스트로, 2008년 데뷔 음반 <너의 다큐멘트> 이후 솔로 아티스트로 들려준 서정적 음악과 거리가 멀다.
새 음반 작업 중 e메일로 만난 한희정은 “솔로 음반 작업할 때 동료에게 곡을 들려줬더니 ‘너무 아방가르드하다. 좀 더 친절한 곡으로 데뷔해야 하지 않겠냐’ 하더라. 그 조언을 따랐다”며 “ ‘이전의 음악’으로 대표되던 내 정체성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답했다.
가사 없는 멜로디 또는 멜로디 없는 목소리를 내는 <공간반응>의 한희정을 ‘가수’라고 할 수 있을까. 한희정은 “노래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여러 악기로 곡을 만드는 과정에서 목소리의 기능을 확장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열린 공연 역시 낯설었다. 애초엔 헤드폰을 쓰고 공연을 관람하는 스튜디오에서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1년간 미뤄지다 이후 대관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한희정은 각자 공간에 있는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연주자 등과 온라인에서 만나 합주하기로 했다. 한희정은 메일링을 통해 공연 준비 과정을 관객과 공유했다. 온라인 관객에게는 공연 댓글창에 의성어·의태어로 반응을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온라인 관객의 텍스트가 현장 관객의 소리를 대체한 것이다. 한희정은 “공연장에서 거시적으로 볼 수 있는 연주자의 움직임과 소리를 자세히 동시에 볼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희정은 <공간반응>을 ‘대중음악’이라고 생각할까. 혹시 기존 한희정의 노래를 좋아하던 팬들이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몇 년 전 최선을 다해 대중적인 곡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대중적이지 않다는 반응을 받은 음반도 있었습니다. <공간반응>을 통해선 ‘대중음악에서 너무 멀어지지 말아달라’는 반응도 받았습니다. 음반을 발매할 때마다 기존 팬들이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하지만 좋아할 곡을 들려주는 것보다 좋은 곡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제 기준에서 좋은 곡이란 고여있지 않은 것이에요.”
한희정은 10월쯤 새 음반을 낸다. 예전의 음악들처럼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로만 구성된 노래들이지만, “전혀 다른 소리의 형상이 떠올라 힘들다”고 전했다. 예전의 한희정과 <공간반응>의 한희정이 충돌해 만드는 음악, 다른 음악 같지만 결국 한 사람이 만드는 음악이 궁금하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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