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그림을 봅니다. 수많은 푸른 점들. 아득히 멀어진 당신이거나 외로운 나이거나. 어딘가에서 애타게 부르거나 간절히 손짓하거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아주 잊은 줄 알았던 이름이 쓱 떠오르기도 해요. 김환기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앞에 설 때면 언제나 내 안의 우주에서 길을 잃곤 합니다. 길을 잃고서야 당신을 만나지요.
숭례문학당에서 진행하는 예술 감성 글쓰기 강좌에서 이 그림을 소개 했습니다. 수업 한 달 정도 지난 후라 아이들이 그림 보기에 어느 정도는 단련이 되어 있었고, 추상화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실 어렵지요, 추상화는. 그래도 마음으로 그렸으니 마음으로 보면 된다고 격려했습니다. 자칫 힘들어 할까봐 부모님과 함께 보고 느낌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권유했지요.
놀라웠습니다. 아이들이 그림을 보는 방식은 직관적입니다. 어떤 미화나 왜곡 없이 내 눈에 보이는 진실을 말하죠. 김환기의 푸른 전면점화를 보고는 "개구리알 같아요." "나를 보는 눈 같아요." "바다 같기도 하고 내마음 같기도 해요." 그런 후에 이렇게 그린 작가의 마음을 상상합니다. "힘들었을 것 같아요." "외로웠을 것 같아요." "무슨 생각을 하며 점을 찍었을까요?" 그러면서 그림 속으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반면에 어른들은 거의 다 삶의 이야기를 합니다. 수요일에 책방이듬에서 열리는 그림과 에세이 강좌에서도 김환기를 보여주었거든요. 그림은 거들 뿐, 내가 우르르 쏟아져 나옵니다. 나와 당신의 관계, 우주적 존재의 슬픔 등 그림 너머의 세계를 불러오며 예술은 완벽하게 자기화 됩니다. 첫사랑이라거나 애도라거나 고유한 나의 경험이 오버랩되어 재현되기도 하죠.
물론 두가지 다 그림을 만나는 훌륭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이 두가지를 균형있게 조화하면 참 좋아요. 어떤 의도도 없이 그림의 본질에 쉽게 접근하는 아이들, 어떤 의미를 찾아 그림의 함의를 유추하는 어른들. 외연을 이해하고 심연을 통찰하는 두 개의 눈이 점점 더 밝아지는거죠. 이처럼 예술은 잘 살아가는데 몹시 유용합니다. 심미안을 키우며 그림 한 점으로 나와 너의 다름을 볼 수도 있지요. 정답은 없으니 서로를 경계없이 수용할 수 있고요. 너는 개구리알 나는 눈알 이러면서요. (웃음) 아이들도 어른들도 스스럼없이 예술을 매개로 삶을 즐기게 됩니다.
이 강좌를 진행하며 여러 자료와 책을 보았어요. 미국에서 인정받은 VTS 수업이 있습니다. 하버드와 뉴욕 모마 미술관에서 그동안의 미술 교육이 모두 다 잘못됐음을 깨닫고 Visual Thinking Strategies VTS (시각적 사고 전략)라는 기법을 통한 획기적인 교수법을 개발했는데요. 그림을 보고 관찰하고 이야기하고 질문하며 토론하는 수업인데, 직관력과 사고력에 아주 탁월하며 새로운 시대의 융합형 인재 교육법이라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그림을 보고 글을 쓰는 것이 당장 성적에는 큰 도움이 안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림을 보는데서 나아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조금씩 깨닫지요. 그림으로 생각하고 글로 사유하며 봄나무처럼 성장해 나갑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감성은 결코 휘발되지 않아요. 제 맘을 아는지 아이들이 너무 재밌게 참여하고 다음 그림을 기다린다는 후기들을 전해주셨어요. 찡했습니다. 무슨 그림을 보여줄까 공들여 고르고, 또 아이들 글을 읽으며 깔깔 웃다가 울컥 뭉클하기도 했지요. 아이들은 난데없이 웃기고 대책없이 감동적이거든요. 그래도 정말 기쁜 건, 이 아이들이 예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향유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림 한 점으로 깜짝놀랄만한 동화를 쓸 수도 있지요. 이렇게만 성장한다면 예술처럼 삶을 향유하는 사람이 될 것이 확실하지 않겠어요?
즐기는 사람 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예술도 공부도 삶도 그렇지요. 그래서 간절히 바래봅니다. 부디 어린 향유자들이여, 어디서 무엇이 되던 다시 만나자.
임지영 우버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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