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저렇게 귀하고 화사한데, 왜 이름이 깽깽이풀일까?
지난 주말 광릉 국립수목원에 간 것은 팔할이 깽깽이풀을 보기위해서였다. 지인이 최근 깽깽이풀이 피었다고 사진을 보내주었다. 야생화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소식을 듣고 가만 있기 어려울 것이다. 충남으로 내려가 과감하게 자생 깽깽이풀에 도전해볼까 고민하다 소심하게도 광릉으로 향했다.
국립수목원 깽깽이풀은 지금이 절정이었다. 열대온실 아래 언덕 등 곳곳에 깽깽이풀이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느긋하게 수생식물원부터 차례로 둘러보려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아차 싶어 깽깽이풀을 향해 달렸다. 깽깽이풀 꽃잎은 연약해서 빗방울에도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보슬비여서 온전한 깽깽이풀을 담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잠시후 빗방울이 좀 굵어지자 상당수 깽갱이풀 꽃잎이 떨어지거나 꽃대가 휘어졌다.
십수년 전 경기도 가평에 유명산 자연휴양림에 놀려간 적이 있는데, 자연휴양림 시설 중 하나로 야생화단지가 있었다. 거기서 처음으로 깽깽이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렇게 화사한 자주빛과 고운 자태를 가진 꽃이 있다니…
깽깽이풀은 삼지구엽초·한계령풀 등과 함께 매자나무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키는 20~30㎝에 습하고 그늘진 계곡 주위에 많다. 3월말부터 지름 2㎝ 정도의 꽃을 피운다. 꽃잎은 6~8개, 수술도 6~8개인데 수술 꽃밥이 또 아주 인상적이다. 노란색인 것과 흑자색인 것이 있다. 5~6월에 기다란 꼬투리 모양의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가을부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초봄 다시 작은 꽃망울들을 내미는 꽃이다. 꽃이 피면서 연잎같이 생긴 잎들도 자란다. 봄에 일찍 돋는 잎은 흔히 적자색을 띠는데,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다.
깽깽이풀은 희귀식물이다. 한때 남한에서 거의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을 정도였다. 꽃이 아름다워 식물원마다 대개 깽깽이풀을 심어놓은 곳이 많지만, 자생지에서 깽깽이풀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필자도 자생지에서 꽃이 핀 것은 딱 한번 보았다. 그 꽃을 보러 서울에서 약 60㎞를 달려갔지만, 비가 온 다음이라 꽃잎이 온전하게 다 붙어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니까 아직 자생지에서 온전한 형태의 꽃은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쓴 사진들은 전부 수목원에서 담은 것들이다.
그런데 이 귀하고 화사한 꽃의 이름이 왜 하필 깽깽이풀일까. 깽깽이풀이라는 이름은 1937년 나온 조선식물향명집에 처음 등장하는데, 이름 유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몇가지 설이 있는데, 맞고 안맞고를 떠나 유래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이 식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깽깽이는 해금 등을 속되게 부르는 말이다. 이 꽃이 바쁜 농번기에 한량처럼 깽깽이를 켜고 놀자고 유혹하는 것 같다고 해서 깽깽이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다. 둘째, 강아지가 이 풀을 뜯어먹고 깽깽거려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 강아지가 이 풀을 먹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냥 무시하기도 어려운 주장이다.
깽깽이풀은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지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깽깽이풀 씨앗에는 젤리같이 생긴 엘라이오솜(Elaiosom)이 붙어 있는데, 개미가 이것을 좋아해 물고 가다 중간에 떨어뜨린 곳에서 싹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번째 주장은 싹이 트는 것이 깨금발(깽깽이)을 뛰는 것처럼 띄엄띄엄 자란다고 이런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이밖에 꽃 줄기가 깽깽이 줄을 닮아서라는 설, 깽깽이풀 옛 이름이 ‘깽깽이잎’인데 잎모양이 꽹과리를 닮아서 그런 이름이 생겼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꽃이름 유래를 아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무슨 근거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꽃 이름 유래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는 것이 좋은 이유는 읽다보면 그 식물의 직관적인 특징이나 생태를 아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꽃의 생태, 어휘에 대한 풍부한 지식에다 통찰력까지 갖춘 현인이 깽깽이풀 이름 유래를 속시원하게 밝혀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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