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도 결국 혼자.. 부모세대 황혼 이혼 보며 허탈
작년 51년 통계사상 최저 결혼.. 치솟은 집값-고용불안에 고민
어디서 어떻게 살게될지 몰라
결혼 질문에 여성들 답변 1위는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없어서"
서울 마포구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정모 씨(29)에게 ‘결혼’은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다. 식당을 운영하며 벌어들이는 순수익은 월평균 350만 원. 또래 중 소득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그는 “결혼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정 씨는 최소한 서울에서 집을 구할 수 있을 만큼의 자산을 벌기 전에는 결혼을 생각하지 않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직장인처럼 안정적인 수입을 거둘 수 없으니 집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모으고서 결혼을 하는 게 낫겠다는 거다. 정 씨는 “최근 집값이 오르는 것을 보니 집이 없으면 가정을 꾸리더라도 계속 불안정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결혼이 줄어들고 있다. 청년들이 불안정한 직업, 높은 집값 등으로 결혼을 포기하거나 미루며 혼인 건수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만남도 쉽지 않고 예비부부들의 결혼 일정이 미뤄지며 이런 추세에 속도가 붙고 있다. 결혼한 뒤 쪼들리게 살 바엔 자신의 월급으로 행복한 솔로 생활을 누리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부모 세대의 ‘황혼이혼’이 늘어나며 자녀 세대가 일찍이 결혼을 단념하는 측면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 지난해 통계 작성 이후 혼인 최저
결혼에 대한 사회 분위기는 통계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21만3502건으로 전년에 비해 10% 넘게 줄었다. 전체 건수로는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결혼식을 연기한 커플이 많았고 외국인 입국이 제한돼 국제결혼이 줄어든 것도 이유로 꼽히지만 근본적으로 청년들이 결혼을 기피하거나 미루는 경향이 큰 것으로 해석된다.
1월 혼인 건수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9%(3539건) 줄어든 1만6280건으로 집계돼 1월 기준으로 역시 통계 작성 이후 가장 적었다. 통계청 관계자는 “인구가 줄고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변하며 2012년 이후 혼인 건수가 계속 줄고 있고 여기에다 코로나가 겹치며 감소 폭이 커졌다”고 말했다.
결혼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은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비관적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여성가족부 의뢰로 15∼39세 1만101명을 조사해 이달 초 발표한 ‘청년의 생애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미래 전망 연구’에 따르면 남녀 모두 절반 이상이 ‘결혼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예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응답도 여성 23.9%, 남성 11.0%였다.
우리의 미래가 달린 미성년 학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지난해 8, 9월 초중고교생 70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전체 응답자 중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한 학생은 16.7%였다. ‘결혼은 필수’라는 공식이 이미 깨졌다는 의미다.
청년들이 결혼을 꺼리며 1인 가구는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6월 발표한 ‘1인 가구 고용 동향’에 따르면 전국의 1인 가구 수는 2019년 603만9000가구로, 전년 대비 25만1000가구 늘었다.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다. 1인 가구가 국내 10가구 중 3가구꼴이란 얘기다.
○ “가족 부양 부담”, “굳이 할 이유 없다”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성별에 따라 차이가 크다. 여가부의 청년 설문을 보면 결혼을 망설이거나 하지 않으려는 이유에 대해 남성은 △가족 생계부양 부담(23.0%) △굳이 할 이유가 없어서(21.2%) △집 혼수 등 결혼비용 부담(20.5%) △관계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16.0%) 등을 꼽았다. 수도권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이모 씨(37)는 “월급이 밝히기 창피할 만큼 적다 보니 주위에서 여자를 소개해주지도 않는다”며 “내 조건과 환경까지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에 기대도 점점 접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반면 여성은 △굳이 할 이유가 없어서(26.3%)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전통적 가족 문화, 가족 관계의 부담(24.6%) △관계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18.4%) 순이었다. 남성은 경제적인 문제, 여성은 시가 등 결혼 이후 꾸리게 될 새로운 가족 형태에 대한 부담이 결혼을 기피하는 가장 큰 요인인 것이다. 미용업에 종사하는 조모 씨(31·여)는 ‘연애는 OK, 결혼은 글쎄’란 생각이다. 남자친구를 사랑하긴 하지만 결혼해 시가와 관계를 맺는 게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조 씨는 “거창하게 ‘비혼주의’까지는 아니지만 전혀 모르던 사람과 가족으로 얽히는 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며 “남자친구도 이런 생각을 아직 충분히 이해해주진 못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치솟는 집값은 청년들의 결혼 의욕을 꺾고 있다. 결혼해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려면 내 집이 필요한데, 언제 내 집 마련이 가능할지 알 수 없는 세상이 됐다. 21일 한국경제연구원이 고용노동부와 통계청, KB국민은행 등의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성실근로자 울리는 5대 요인’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20년 전국 아파트 중위 매매 가격 상승률은 연평균 7.4%다. 서울 아파트의 주위 매매 가격 상승률은 연평균 12.9%에 이른다. 근로자가 서울 중위가격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지난해 근로자 평균 임금(352만7000원)을 21.8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모아야 가능하다는 의미다.
○ 부모의 황혼이혼에 자녀들도 “결혼 안 해”
결혼해 오래 살다가 느지막이 갈라서는 ‘황혼이혼’이 늘어나는 점도 자녀 세대의 결혼 기피에 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전체 이혼 건수가 전년보다 줄어드는 사이 결혼 생활을 20년 이상 한 부부들의 황혼이혼은 3만6971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30년 이상 혼인 생활을 유지하다가 갈라선 부부도 1만6629건이나 됐다. 전체 이혼 건수 중 황혼이혼의 비율은 약 40%에 이른다.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이혼을 다루는 변호사들 사이에선 우스갯소리로 50대가 최우수 고객이라는 말까지 나올 만큼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며 “황혼이혼 상담을 하러 온 고객 중에는 ‘결혼식장에서 애들이 떳떳하지 못할까 봐 이혼이 꺼려진다’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부모가 황혼이혼 하면서 자녀들이 결혼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경우가 생긴다고 설명한다. 자녀들은 부모들이 지지고 볶으며 싸우다 결국 늙어서 헤어지는 결말을 보고 나면 ‘어차피 결혼해봤자 행복을 찾기 어렵다’는 인식이 싹튼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직업도 없고, 집도 없는데 부모까지 갈라서면서 자신도 모르게 무기력해지고 주눅이 드는 경우가 많다”며 “상견례 때 부모 모두 나올 수 없고 결혼식장에서도 부모 자리를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는 상담 사례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 비혼자를 위한 제도를 고민할 때
결혼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 영역이긴 하지만 청년들이 결혼을 꺼릴수록 국가적으로는 손해일 수밖에 없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출산율도 낮아지져 인구 구성 중 고령층의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서다. 고령화가 심각해지면 경제활동인구가 줄어 경제 활력이 떨어지기 쉽다. 고령인구가 늘고 경제활동인구가 줄면 고령층 부양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데 젊은층들이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이 때문에 결혼 제도를 청년들에게 강제할 수 없으니 이들이 최소한 마음 놓고 아이라도 낳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필요하다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은 아이와 관련한 대부분의 제도들이 혼인신고한 부부를 전제로 구성돼 있다”며 “정부가 비혼을 장려하진 않더라도 사회 변화에 발맞춰 꼭 결혼하지 않은 커플이라도 아이가 있다면 주택 공급이나 돌봄 지원 등에서 차별을 없애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혼자가 늘어나는 만큼 비혼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할 시점이라는 의견도 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현재 비혼자들에 대한 연구는 결혼하지 않는 집단이 전체의 5% 수준일 때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라며 “비혼자와 1인 가구가 많아지는 만큼 이들이 원하는 주거 환경, 사회 환경 등을 분석해 사회제도와 시장 환경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했다.
세종=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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