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너무 귀여워서 기사 읽으러 들어옴 ㅋㅋㅋ"

석진희 2021. 3. 2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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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네이버 뉴스채널’ 갈무리

“제목 너무 귀여워서 기사 읽으러 들어옴 ㅋㅋㅋ”(sjin****) “기자 센스가ㅋㅋ 타이틀이 아주 귀욤귀욤”(kest****) “기사 덕분에 아이들 패딩 잘 입고 갔어요. 유익한 뉴스 고맙습니다 :)”(bonb***)

최근 독자님들께서 유독 즐겁게 읽어주신 디지털 기사가 있었어요. 그 기사에 달린 포털 댓글들입니다. 조회수 수십만이라는 숫자도 그렇지만 “ㅋㅋㅋ” 웃음이 이렇게나 많은 댓글 칸이 훨씬 더 기뻤지요. ‘드립 장인’ 개그맨 김신영님께서 라디오 방송 <정오의 희망곡>(문화방송) 3월2일 오프닝 멘트로 그 기사의 제목을 언급하기도 하셨더라고요. 무슨 기사냐고요? 날씨 예보 기사였습니다. ‘님아, 그 패딩을 넣지 마오…내일부터 비 100㎜, 폭설 50㎝’.

기사 제목에 대해 쓰는 첫번째 ‘친절한 기자들’일 듯합니다. 안녕하세요, 디지털뉴스팀에서 일하는 석진희입니다.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는 토요판팀에서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님아, 그 패딩을 넣지 마오…’ 같은 디지털 기사의 제목을 쓰고, 사진을 고르고, 기사를 배치하고, 트위터·페이스북 공식 계정을 운영하는 팀에서 일하고 있어요. 목소리가 너무 많아 정작 ‘들리는 목소리’를 찾기 어려운 디지털 공간에서, 촉감처럼 생생하게 와닿는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날씨 예보 기사는 지난 2월28일치 기사였습니다. 당시 취재 부서에서 뽑은 첫 제목을 볼까요? ‘1~2일 수도권 최대 100㎜ 비, 강원영동 최대 50㎝ 폭설’. 평범해 보이는 기사지만, 평범하지 않은 몇가지 이유가 있는 기사였습니다.

한겨레 ‘네이버 뉴스채널’ 갈무리

먼저, 이 기사는 ‘반전 날씨’를 예고하고 있었어요. 2월21~28일은 평균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적이 없을 뿐 아니라, 21일의 경우 최고기온이 17.4도(서울 기준)에 이르는 등 온화한 날이 지속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수도권을 중심으로 최대 100㎜ 큰비가 내리고, 특히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며 강원영동을 중심으로 경기, 경북 등에 무려 50㎝ 눈이 온다니…. 지난 1월 폭설로 교통대란에 시달렸던 이들의 경험도 떠올렸습니다. 또 한번 방심할 수 없는 추위와 폭설이 이 뉴스의 핵심이었지요.

또한 이 기사에선 다뤄지지 않았지만 느닷없는 3월의 폭설은 기후 위기와도 무관할 수 없겠지요. 3·1절 연휴와 개학마저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디지털 기자의 현장은 디지털 공간이에요. 에스엔에스(SNS) 계정을 운영하다가 언젠가 읽었던 글 하나가 생각났어요. 놀이터도 못 가고 집에만 있던 아이가 결국 서러움이 터져 울었다는 이야기. 그 아이들이 글쎄 학교에 간다는데…. 날씨 때문에 애가 탔어요. ‘팩트에 충실하지만 점잖은’ 원래 제목에 만족할 수 없었지요.

3분의 두뇌 풀가동 끝에 ‘님아’ 두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마음속 얼어붙은 데가 녹아서 눈물이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꼭 그런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패러디 해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러고는 초봄 온기에 패딩을 넣을까 말까 고민했을 많은 이들의 ‘같은 마음’을 모서리 삼아, 거기를 딱 움켜쥐었습니다.(무거운 걸 들어 옮길 때도 모서리를 잡아야 쉽게 들리지요. 마음을 움직이는 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패딩은 방한복 이상의 존재잖아요. 체감온도 영하 30도 겨울을 나는 생존 수단이자, 저처럼 자가용이 없는 사람에겐 추위 속에서도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교통수단’이기도 해요. 그래서 이 제목에 패딩이라는 구체적인, 눈에 그려지는, 소중한(!) 단어가 쓰인다면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훨씬 더 세질 거라 판단했습니다. “기사 제목 너무 귀엽다ㅋㅋ 제목 때문에 얼굴 찡그리게 되는데 이 기사는 제목 때문에 읽어보네ㅋㅋ”(sori****) “나만 제목 보고 들어온 게 아니네. 각종 어그로(약 올리기) 기사 제목만 보다가 이 글 제목 보고 미소 지으면서 들어옴”(zja2****)

기사 제목을 보고 “얼굴 찡그리게 되는” 경우, 많으실 겁니다. 왜곡하는 제목, 악의에 찬 제목, 본문을 충실히 담지 못하는 제목, 이른바 ‘낚시’ 제목. 이런 제목이 언론 신뢰도 하락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합니다. 반성합니다.

저는 디지털 부문에서 약 4년을 보냈는데요. 갈수록 절감하는 게 있습니다. 독자님들은 품위 있는 제목을 알아보십니다. 고품질의 기사는 놓치지 않으십니다. 무엇보다, 따뜻한 소통을 원하십니다. 선의와 존중으로 이루어지는 작고 이름 없는 순간들이 삶을 나아가게 한다는 걸 저는 독자님들을 통해 배웠습니다. 지난 1월 ‘서울역 노숙인과 신사’ 디지털 기사(사진 백소아, 편집 이재명)에 보내주신 뜨거운 반응이 그랬고, 여러분의 패딩을 걱정한 이번 제목이 그랬듯이요. 오늘도 배우며, “미소 지으면서” 읽을 수 있는 콘텐츠와 제목으로 계속 찾아 뵐게요. 다음 겨울, 그다음 겨울 패딩 꺼내실 때까지!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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