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도대체 일본 원정서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2021. 3. 2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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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25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닛산스타디움에서 열린 축구 한일전에서 일본 대표팀 선수들이 골 성공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도 설마…’했던 우려가 현실로 이어졌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남자축구대표팀이 10년 만의 한·일 평가전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2011년 ‘삿포로 참사’로 기억되는 0-3 스코어가 지난 25일 일본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에서 재현됐다. 조직력과 스피드를 앞세운 일본축구의 파상공세에 벤투호는 경기내내 무기력함을 끊지 못한채 완패했다.

역사적인 한·일전 패배에 따른 후폭풍은 크다. 한·일전 축구는 전국민의 관심을 받는 흥행 보증수표지만, 이번 만큼은 발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코로나19로 A매치를 치르지 못하며 재정난에 빠진 일본축구협회의 제안을 카타르월드컵 2차 예선 일정이 연기된 벤투호가 받아들이면서 급히 성사된 한·일전이었다.

왜 무리해서 한·일전을 잡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서 비판이 거셌다. 대표팀 구성부터 쉽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국제축구연맹(FIFA)이 클럽팀에 대표팀 차출 거부권을 주면서 유럽파 주력 선수 선발은 난항이 예상됐다. 황의조(보르도), 황희찬(라이프치히), 이재성(홀슈타인 킬) 등은 소속팀의 대표팀 차출 거부로 무산됐다. 여기에 대표팀 에이스인 손흥민(토트넘)을 비롯해 황인범(루빈 카잔), 김진수(알 나스르) 등의 부상도 겹쳤다. 반면 일본은 오는 30일 몽골과의 월드컵 2차 예선을 앞두고 전용기를 동원해 유럽파 대부분을 불러들리면서 일찌감치 대패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또 우리 선수들이 도쿄올림픽 강행하려는 일본의 ‘홍보 도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실제 도쿄올림픽에 적용될 스포츠 이벤트의 선수 ‘방역 절차’가 이번 경기에서 첫 선을 보였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속 여전히 확진자가 증가세에 있는 일본을 굳이 찾아가 경기하냐는 지적도 잇따랐다. 대표팀은 이미 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 평가전에서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무리한 원정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선수 포함 10명의 확진자까지 나오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한·일 라이벌전 결과를 넘어 긴장감 높은 양국 상황을 고려하면 연이어 상식을 벗어난 결정을 내린 협회 행정력은 여론의 질타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패배 직후에는 한국 선수들이 일장기가 붙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뛴 것이 알려지면서 분위기는 최악이다. 관례적으로 A매치 유니폼에는 양국 국기와 경기 날짜 등 경기 정보가 새겨져 기념한다. 그렇지만 일본 유니폼에는 한국 국기를 붙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를 불편하게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25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닛산스타디움에서 열린 통산 80번째 축구 한일전에서 0-3 완패한 태극전사들이 관중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2022년 카타르월드컵까지 계약된 벤투 감독의 리더십도 큰 타격을 입었다. 선수 선발 과정에서 올림픽대표팀, 각 소속팀과 ‘소통’에도 문제를 드러낸데다 경기력 마저 실망스럽다. 스코어를 떠나 ‘평가전’이라는 의미도 무색한 경기 내용이었다. 한국축구가 그동안 일본보다 우위를 보였던 피지컬과 투지까지 밀렸다. ‘플랜B’의 부재를 통해 대표팀 에이스 의존도도 확인했다.

두 번째 골을 넣은 일본 공격수 가마다 다이치(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는 “상대 압박이 심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한국은)시작부터 맥이 풀린 느낌이었다”고 했다. “지금 세대에 맞지 않는 말일지 모르지만 다리가 부러져도, 몸이 망가져도 한국과 싸움에서는 밀려서는 안된다”고 강조한 일본 대표팀 주장 요시다 마야(삼프도리아)같은 리더도 없었다.

벤투 감독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정당한 패배”라며 고개를 숙였지만, 그가 공들인 ‘빌드업 축구’도 일본보다 더 강한 상대를 만나는 월드컵 도전에 대한 물음표만 키웠다.

경기가 열린 25일에는 도쿄올림픽 성화 봉송이 시작됐다. “코로나19 공포 속에 도쿄올림픽 성화 봉송은 시작하지 말았어야 한다” 등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미국 NBC를 비롯한 주요 외신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축구는 일본의 ‘기획’ 안에서 최고의 조연이 됐다. 과연 한국축구가 이번 한·일전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일까.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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