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달라도 너무 달라, 사랑하지만 외로워요

신소윤 2021. 3. 26.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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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Q 한참 연상에 사는 곳도 다른 그 남자
삶의 연륜과 결단력에 매력 느꼈지만
생활 패턴도 삶의 태도도 다른 우리
행복해지고 싶은데 자꾸 외로움만 커져
A 상대방의 부족함이 자꾸만 보인다면
나의 욕구와 갈증 무엇인지 돌아보자
내면 속 상처와 결핍 자극된 것일 수도
나를 모르면 진정한 행복 찾기 어려워
게티이미지뱅크

Q 30살 여성입니다. 저는 화목한 가족 사이에서 사랑받으며 평탄하게 살아왔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람과 대화가 깊어지며 연인이 됐어요. 그는 9살 연상의 경상도 남자입니다. 저와 다르게 그는 외롭고 억센 삶을 살았고, 책임질 것이 많아 피로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삶의 경험과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연륜과 생각, 결단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연상을 만나는 게 처음이라 그런 걸까요, 아니면 논리보다 감정에 휩쓸리는 제 천성 때문일까요. 자꾸만 속상한 감정을 느끼고. 그에게 공감받고 싶으면서도 제가 미성숙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에게 사랑은 배려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자유를 존중해줘야 하며 상대의 영역을 지켜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배운 사랑은 더 많은 것을 함께 나누면서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연애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겠지만, 사랑하는 감정을 일부러 덜어내 버리는 것 같아 슬픕니다. 아무래도 제가 바라는 이상적인 연인은 평생을 함께하는, 서로가 가장 우선인 관계였던 것 같습니다.

오빠는 혼자가 익숙한 사람이고 장거리 연애를 결심하기까지 쉽지 않았으리라 짐작합니다. 그가 우리 관계에서 노력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사귈수록 우리가 정말 다른 사람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저는 많은 표현을 하고, 감정적이고, 많은 것들을 함께하고 싶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연애에서도 상대에게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어요. 반대로 오빠 마음의 문은 매우 느리게 열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오빠는 너무 급하다고 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오빠는 정해진 선을 그어놓고 그만큼만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살아온 방식, 직업, 사는 곳, 집안 분위기, 생활 패턴도 다릅니다. 저는 낮에 일어나서 밤에 자는 편이지만, 오빠는 불규칙한 수면 패턴에 오후가 돼서야 일어나는 경우도 잦아서 연락 문제로 저랑 여러 번 싸우기도 했어요.

그런데 오빠는 물러서지 않는 사람, 희생하지 않는 사람이며 원하는 건 묻어두지 않고 요구하기 때문에 저는 오빠가 바라는 부분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점차 오빠에게 바라는 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이 이렇게 슬플 줄은 몰랐습니다. 나이 차이 또한 오빠가 제 행동을 아직 어리게 볼 수밖에 없게 한단 걸 느꼈습니다.

최근에 외롭고 공허하단 감정을 느끼며 전 남자친구가 떠올랐습니다. 저의 전 남자친구는 공기업을 다니는 연하의 학교 지인이었습니다. 물론 재결합의 감정은 전혀 없지만, 전 남자친구는 저를 정말 사랑해줬고, 모든 걸 다 줬습니다. 저는 그 당시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가능했단 걸 미처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와 저는 삶의 반경이 비슷해서, 서로 갈등하고 부딪힐 여지도 적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연애를 시작한 이상 잘하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습니다만,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빠는 분명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저도 문제를 특별히 꼽을 수 없는, 그저 다를 뿐인 우리 관계에서 그냥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면 될까요?

장거리 연애도, 연상도 처음인 저는 오빠가 절 외롭게 만드는 사람인지, 아니면 최근 코로나나 루틴한 업무로 인해 이렇게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 돼버린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혼란스럽습니다. 저는 이 사람과 맞지 않는 걸까요? 만나서 함께하면 행복한데 왜 떨어진 지금은 행복하지 않은 걸까요? 제가 조급한 걸까요. 멋져 보였던 그와 맞는 게 없어 혼란스러운 여자

A 살아온 환경도, 사는 지역도, 낮과 밤의 생활 패턴도,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른 두 사람, 심지어 나이 차이까지 크게 나는 사이였지만 연륜과 결단적인 태도가 멋지다는 생각에 이 연애는 시작되었습니다.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이지만, 당신은 그가 연륜도 있고 나이도 훨씬 많으니 당신을 넉넉히 품어줄 사람으로 기대한 부분이 있었겠죠. 하지만 막상 만나보니 표현도 별로 없고, 연락도 잘 안 되고, 대화해도 공감받기보다 지적당하기 일쑤이니 공허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아무래도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연인의 모습이 보여서, 운명적으로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연애나 결혼을 결정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다 그렇게 시작을 합니다. 하지만 사실 속마음은 모두 이것에 가깝습니다. 매력적인 상대를 내 곁에 두고 싶어서, 나에게 변하지 않고 잘해줄 것 같아서, 이 정도면 어디 가서도 잘 골랐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아서. 이러한 생각에는 내가 이 연애나 결혼을 통해 얻을 ‘이득’에 대한 계산이 들어가 있지요. 그래서 그 이득이 생각만큼 돌아오지 않았을 때는 서운하고 상처받거나 “당신은 변했어!”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한번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하면 많은 것들을 함께하고 싶고, 표현도 많이 하고, 늘 서로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어째서 이 사람과 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이것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을까요? 사랑에 대한 서로의 가치관을 확인하기도 전에, 섣불리 결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가치관의 깊은 영역은 시간이 좀 걸려야 파악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수면 패턴이나 연락 패턴 같은 것들은, 깊은 연인 관계로 접어들기 전 서로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었죠. 연인이 되고 나서 이런 것들로 인해 싸움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그저 두 사람이 잘 알아보지도 않고 관계를 시작했을 만큼 마음이 조급했거나 외로웠었다는 반증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나마 자주 만나는 연인이라면 자주 만나기라도 해서 문제를 축소할 수 있겠지만, 두 사람은 장거리 연애 중이니 문제의 난도는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지요. 그러니 스스로 진지하게 물어보세요. ‘연륜과 결단력이 엿보이지만 따뜻하지도 공감을 잘 해주는지도 몰랐던 사람에게 내가 진짜로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라고요.

삶에서 한 번이라도 솔직하게 자신을 마주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하지 않고서 사는 삶은 누구와 함께하든 내면의 상처와 결핍을 자극하게 되어 있고, 결국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지요. 화목한 가족 사이에서 사랑받으며 평탄하게 자라왔다고 해서, 상처와 결핍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일종의 자만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라 해도, 아이는 결핍과 두려움 상처 등의 내면적 경험을 하게 마련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는 그 사랑이 완전하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지요. 혹은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다 채워주는 부모를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아이는, 내 연인도 내 욕구를 늘 채워주어야 한다는 이상화에 빠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가정환경으로만 판단하면, 당신이 사랑에 대해 갖는 욕구는 정상적인 것이지만 그가 갖는 태도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지요. 가정환경은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도 아닙니다. ‘그 사람은 사랑을 못 받아서 저런가?’라고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당신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나는 사랑을 잘 표현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연락을 더 많이 하기 원하는 것, 늘 공감받기 원하는 것, 연락이 되지 않았을 때 화가 나서 싸우게 되는 것…. 어쩌면 내 마음속에 외로움에 대한 불안, 배신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게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받아서 확인하는 부분도 존재하겠지만, 내가 먼저 길러내어 상대에게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넉넉한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그 사람에게 나는 과연 넉넉한 마음을 나눠주는 사람이었을까요?

늘 공감해주고, 늘 함께 나누고, 내가 원할 땐 늘 연락이 잘 닿고,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것은 연인 사이에서 이상적인 모습일 겁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서운했을 때, 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단 나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 사람과 헤어지고 말고가 문제가 아닙니다.(물론 이대로 두면 헤어지게 될 겁니다.)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연애를 하고, 결혼하면 행복한 척은 할 수 있겠지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연인이 되면 상대방이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든 나에게 늘 따뜻하고 늘 한결같고 공감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어’라고 생각하는 나의 깊은 곳에 어떤 갈증과 욕구가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때라는 뜻입니다. 나를 다정한 마음으로 돌아보게 될 때, 그 사람의 상처와 결핍도 언젠가는 따뜻한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되겠지요? 물론 이 모든 것이 귀찮고 두렵다면 오직 나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는 이상적인 사람을 찾아내면 되겠습니다만, 그런 사람이 과연 지구상에 있을까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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