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샤이 진보

박창억 2021. 3. 25.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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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가 번번이 빗나가는 이유 중 하나로 '숨은 표' 효과를 들 수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오차범위 밖에서 뒤지고 있지만 여론조사에 답하지 않는 '샤이 진보'에 기대를 건다는 말이다.

정권 심판을 위해 야당에 투표하겠다는 여론조사 응답이 55%를 넘는 상황에서 과연 '샤이 진보'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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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가 번번이 빗나가는 이유 중 하나로 ‘숨은 표’ 효과를 들 수 있다. 숨은 표는 특정 정당에 투표할 의도가 분명하지만,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숨은 표 효과에 대한 이론적 분석은 1966년 독일 언론학자 노엘레 노이만이 주장한 ‘침묵의 나선이론’이 대표적이다. 미디어 등이 전파하는 다수 의견과 자신의 견해가 다르면 침묵하게 되는데 이게 숨은 표라는 것이다. 미국 선거에서 상당수 백인이 인종적 편견을 숨기려고 거짓 응답을 한다는 ‘브래들리 효과’도 숨은 표의 원인으로 꼽힌다.

숨은 표로 여론조사기관이 망신을 당한 대표적인 사례가 1992년 영국 총선이다. 보수당(일명 토리)이 여론조사와 달리 노동당에 압승을 거두며 ‘샤이 토리(Shy Tory)’, 즉 ‘샤이 보수’라는 말이 등장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여론조사기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는데 ‘샤이 트럼프’가 그 원인으로 분석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보수 진영에서 ‘샤이 보수’를 주장해 왔으나 이번 4·7 재보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샤이 진보’를 들고 나왔다.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캠프 전략기획본부장인 진성준 의원은 그제 기자회견에서 판세와 관련해 “지지 의사를 적극 표명하지 않고 숨기는 ‘숨은 진보’ 지지층이 있다”고 주장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오차범위 밖에서 뒤지고 있지만 여론조사에 답하지 않는 ‘샤이 진보’에 기대를 건다는 말이다.

정권 심판을 위해 야당에 투표하겠다는 여론조사 응답이 55%를 넘는 상황에서 과연 ‘샤이 진보’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숨은 표’의 심리적 배경은 부끄러움이다. ‘샤이 트럼프’는 트럼프라는 괴짜를 지지한다고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유권자의 심리가 작동한 것이다. ‘샤이 진보’는 진보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말하기를 부끄러워한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180석을 얻어 절대 다수당이 됐다. 그런데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이제는 스스로 ‘샤이 진보’ 운운하고 있으니 민주당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같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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