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는 딸, 엄마가 만든 지도에 장애는 없다

정혜선 기자 doer0125@lifejump.co.kr 2021. 3. 2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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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대표..장애를 가진 딸 위해 휠체어 지도 만들어
장애가 무의미해지고 다양성으로 인정 받는 세상 꿈꿔
장애가 무의미 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홍윤희 무의 대표를 만났다./사진=정혜선
[서울경제]

세상의 모든 생물은 각기 다르다. 그 다름을 인정받고 살아가지만, 가끔 다름을 인정받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인종이 그렇고, 장애가 그렇다. 갓 태어난 딸이 병을 앓다 겨우 살아났지만, 후유증으로 장애를 얻게 돼 평생 휠체어를 타게 된 홍윤희 무의 대표는 딸로 인해 ‘다름’에 눈을 뜨게 된다. 한 번도 휠체어를 탄 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던 홍 대표는 이제 그것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 그 일은 휠체어를 타고 자유롭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에서 시작됐다. 누구든 살아가면서 장애물에 부딪히기 마련이지만, 장애가 있는 이들은 생활 속에서 많은 장애물을 만나게 되고 그 안에서 좌절을 경험한다. 휠체어를 탄다고 해서, 앞이 안 보인다고 해서 아픈게 아니라 그저 걷는 방법이, 보는 방법이 다를 뿐이라고 말하는 홍 대표는 오늘도 장애가 좌절로 이어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발걸음을 뗀다. 그 발걸음에 라이프점프가 동행하고자 홍 대표를 만났다.

- 처음 뵙겠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반갑다. 저는 장애인 이동권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협동조합 ‘무의’의 홍윤희라고 한다.”

- ‘무의’에 대해 모르는 분이 많을 듯하다. 짧게 소개한다면.

“장애인 이동권. 즉 장애인들이 어디나 갈 수 있도록 돕는 콘텐츠나 지도를 만드는 협동조합이다. 한자로 없을 무(無), 뜻 의(意) 자를 쓰는 ‘무의’는 장애를 무의미하게 만들자는 뜻이 담겨있다.”

- 무의의 활동 목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상호다. 참 잘 지었다.

“그런가(웃음). 상호는 협동조합을 같이 설립한 김건호 이사가 지었다. 김 이사도 휠체어를 타는데, 미국에서 20개 주를 휠체어를 타고 여행 다니는 콘텐츠를 제작했다. 이후 이와 관련된 협동조합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무의’라고 이름을 미리 지어놨더라. 발음이 쉽고 편한데다 한자어라 외국인이 물었을 때도 설명하기 좋아 지은 이름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무의를 치면 인천 ‘무의도’가 먼저 나와 우스갯소리로 실패한 이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웃음).”

- 직업이 따로 있는데 무의를 창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딸이 태어난 직후 신경모세포종이라는 척추 종양 진단을 받았다. 14번의 항암치료와 10번의 방사선 치료 끝에 딸은 살아났지만,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가 돼 휠체어를 타게 됐다. 그러면서 휠체어로 갈 수 없는 곳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 최근에는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많이 생기지 않았나.

“그렇긴 한데 엘리베이터 위치를 찾는 게 쉽지가 않다. 그렇긴 한데 엘리베이터 위치를 찾는 게 쉽지가 않다. 한번은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집에서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에 갔다. 엘리베이터가 아무리 찾아도 없어 민원을 제기했다. 그나마 그 역에 있던 휠체어 리프트도 수백 미터를 걸어간 출구 한군데에만 있어서 이용하기 어려웠다.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찾기 힘든 곳에 만들어진 데도 많다.”

- 그건 맞는거 같다. 가끔 보면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는 필요한 곳에 있다기보다 공간이 있는 곳에 만들어진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지하철이 40년에 걸쳐 완성돼 그런 거 같다. 가끔은 휠체어를 타고 찾아갈 수 없는 동선에 엘리베이터가 있어 좌절감이 올 때가 있다.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으면 좋은데, 그 의지부터 꺾이는 게 싫었다. 그래서 휠체어로 갈 수 있는 동선을 지도로 만들면 어떨까 싶어 카카오스토리펀딩을 시작했다.”

- 스토리펀딩을 잘됐나.

“다음 카카오스토리펀딩에 글 연재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600여만원이 모였다. 처음에는 이 돈으로 지도를 만들기 보다는 지하철역에 휠체어 동선을 스티커로 붙이려고 했다. 그런데 공공장소에 시민이 스티커를 붙이는 건 불법이라고 해 지도 제작으로 진행하게 됐다.”

무의는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할 때 도움이 되는 ‘서울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를 만들었다./사진=무의

- 스토리펀딩에서 끝낼 수 도 있었을 텐데 ‘무의’를 설립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스토리펀딩을 마무리할 즈음 함께 협동조합을 만든 김건호 이사를 만나게 됐다. 저와 김 이사는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마음이 맞아 의기투합해 협동조합 ‘무의’를 만들게 됐다. 그렇게 2015년에 무의를 만들었고 협동조합이 된 것은 그다음 해다.”

-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대표님 행동의 원동력은 역시 딸인가.

“맞다. 이 활동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은 사실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살아가는 데 있어 좌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고 싶어서다. 그 과정에서 동지도 만들어주고 싶었다. 저는 휠체어를 타지 않다 보니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좌절감을 느끼는지 알 수 없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심리상태를 갖게 하지 않도록 무슨 일이든 시도하는 거였다. 제가 시도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나아가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 서울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 부산 이동권 실태 비디오 등 다양한 활동을 하셨다. 현재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올해는 서울 시내 50개 지하철역 주변에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데이터로 모으려고 한다. 휠체어로 갈 수 있는 음식점이나 화장실 위치 등을 말이다. 이미 만들어진 자료가 있는데, 만든 곳에 따라 디지털과 페이퍼로 나누어져 있어 정보 확인이 어렵더라. 게다가 업데이트가 제대로 안돼 있어서 이 정보를 보고 가면 낭패를 볼 수도 있어 올해는 이 작업을 하려 한다. 이게 공공데이터화가 되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이다. 일단 시작해 길을 가다 보면 도와주는 분들이 생기더라.”

- 무의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일단 제가 본업이 있다보니까 시간을 쪼개서 해야 하는 게 힘들었다. 그리고 ‘무의’ 일이 목표를 가지고 한다기보다 해 나가면서 목표나 설정이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마다 주변에서 쓸데없는 짓을 왜 하느냐는 식의 피드백을 줄 때 힘들더라. 이런 적도 있다. 서울시에서 하는 프로젝트를 할 때였는데, 청중 앞에서 무의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하는 자리에서 한 분이 “애 엄마가 그걸 왜 만들고 있느냐”고 묻더라. 자기 딴에는 안타까워서 하는 질문이라고 했는데 그런 시각으로 바라봐질 때 힘들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민간데이터인지 공공데이터인지 물을 때 정의하는 것도 어렵더라.”

- 반면 고마운 분들도 많지 않나.

“맞다. 그래서 이 일이 보람이 있고 계속 해 나갈 수 있는 거 같다. 저는 길치에다 디자인이나 코딩도 할 줄 몰라,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다녔더니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분들이 많이 도와줬다. 저희 지도의 원형도 서울 디자인재단에서 만들어준 거다.”

- 무의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노원역에서 휠체어 이용자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어르신 한 분이 같이 타서는 우리를 보더니 “요즘은 대통령보다 장애인이 더 대접받는다”고 말하더라. 사연인즉 본인이 백화점에 갔는데, 장애인 주차구역이 비어 있어 그곳에 주차하려고 하자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한 번은 어르신들과 함께 일을 해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지도를 만들 때,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하는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활동에 무의 프로젝트가 뽑혔다. 50세 이상 어르신 6명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지하철 자료를 수집했다. 이분들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이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활동했다며, 좋은 경험을 하게 해줘 감사하다고 하더라. 그해 무의가 장애인 인권상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그때 이분들을 모셔 기념사진도 찍었다.”

- 서울지하철과 인천지하철 교통약자 환승 지도는 완성했으니 다음은 부산인가.

“(웃음) 서울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지방에 내려가 일을 진행하는 게 어렵더라. 올해는 지도를 만드는 것보다 지도 데이터가 업데이트되고 많은 사람들이 쓰일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장애를 아프다고 설명하지 말고 ‘다르다’고 설명해야 한다고 홍 대표는 말했다. 다리가 아파서 휠체어를 타는 게 아니라 걷는 방법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사진=정혜선

- 무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서울 4대문안 휠체어 소풍지도‘가 있더라. 인상적이었다.

“그것도 딸의 경험에서 시작됐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사대문 안으로 체엄학습을 갈 때가 많은데, 이때 목적지까지 친구들과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대부분이다. 그런데 딸은 휠체어를 타다 보니 친구들보다 1시간 정도 일찍 나와야 하고, 보조교사와 동행해야 한다. 가는 길이 심심하고 재미가 없다 보니 소풍 가기를 싫어하더라. 그래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을 미리 짜 시간을 계산하고 같이 갈 친구 2~3명을 섭외해 함께 가도록 했다. 이런 정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만들게 된 거다.”

- 딸이 엄마의 활동에 대해 무척 뿌듯해 할 거 같다.

“저희 애는 엄마가 좋아서 하는 일을 자기 때문에 한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더라(웃음). 엄마는 엄마의 삶을, 본인은 본인의 삶을 사는 거라고 쿨하게 말한다. 그러면서도 한 번은 좋아하는 아이돌 행사를 보러 간다기에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무의 지도 보고 가면 된다고 하더라(웃음).”

- ‘휠체어의 눈높이로 세상을 보는 장점’이라는 제목의 대표님 칼럼을 봤다. 인상적이었는데, 장애인을 대하는 시민 의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듯하다.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내가 틀릴 수도 있고, 내가 차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좋을 것 같다. 저도 이 활동을 하고 있지만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분들의 장애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 이처럼 다양성에 대해 나도 무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타인이 알려줬을 때 받아들일 수 있는 열려있는 자세면 좋을 듯하다.”

- 저희 아이가 다섯 살인데, 요즘 다름에 대해 많이 물어본다.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는 게 좋을지 항상 고민인데 조언해달라.

“저희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면 엄마와 손잡고 가던 아이들이 다가온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저 누나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엄마들은 “다리가 아프다”고 대답하더라. 아프다고 하지 말고 그냥 걷는 방법이 다르다고 설명해주면 좋을 거 같다. 보는 방법, 듣는 방법, 걷는 방법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 무의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저희 아이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른 종류의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장애는 장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장애로 느끼게 하는 장애물이 있는 세상이 문제다. 아이가 다음 단계에서 그런 장애물을 만나지 않도록 치울 수 있다면 사람들과 함께 그 장애물들을 치워 나가고 싶다.”

/정혜선 기자 doer0125@lifejum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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