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정의의 독점

강구열 2021. 3. 2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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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나의 태도는 회색분자, 혹은 박쥐에 가깝다고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

거창하게 말하면 사상이나 노선,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아서이고, 특별한 이익을 좇는 건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판단이 쉽게 바뀌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개혁을 절대선으로 여기는지 절차적 정당성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는 태도일 때가 적지 않다.

자기들은 언제나 정의의 수호자였던 양 행세하는 걸 볼 때면 어이가 없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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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나의 태도는 회색분자, 혹은 박쥐에 가깝다고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 거창하게 말하면 사상이나 노선,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아서이고, 특별한 이익을 좇는 건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판단이 쉽게 바뀌기 때문이다. 이런 줏대 없음, 우유부단을 자주 자책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하고, 자연스런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옳고 그름, 좋고 싫음, 중요함과 중요하지 않음을 구분하기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을 때도 많지 않나 싶어서다. 이런 이유로 시비와 호오, 경중의 경계가 너무나 분명하고, 그것에 따라 피아를 나누어 물고 뜯는 데 주저함이 없는 요즘 한국사회가 종종 놀랍다.

큰 선거를 앞둔 때이니 그러려니 이해해보려고도 하지만 한국의 정치에서 그것이 마땅히 지향해야 할 통합, 타협의 가치는 공허한 수식에 불과한 듯 보인다. 어느 후보가 상대당을 향해 “이 땅에서 없어져야 한다”며 밝힌 ‘박멸의 의지’는 상대 당 또한 갖고 있을 것이 분명한 속내일 것이다.
강구열 문화체육부 기자
문재인 정권 내내 시끄러운 검찰개혁 이슈는 어떤가. 청와대와 여당은 개혁을 절대선으로 여기는지 절차적 정당성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는 태도일 때가 적지 않다. 검찰과 야당 역시 청와대, 여당이 난장을 치기 전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았던 원인인 ‘일그러진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이 없다. 자기들은 언제나 정의의 수호자였던 양 행세하는 걸 볼 때면 어이가 없기도 하다. 검찰개혁은 이제 진지하고, 치열하게 토론해야 할 국가적 의제가 아니라 편 가르기의 기준이 된 것처럼 보인다.

연예계, 스포츠계를 중심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학교폭력 이슈에서도 극단성이 보인다. 기억이 분명치 않을 수 있고, 오해일 수도 있는 십수년 전의 일까지 한두 사람의 주장, 증언에 기대어 여론은 춤을 춘다. 가해자로 지목됐다는 사실만으로 사회적 매장에까지 이를 수 있는 주장이 이처럼 가볍게 유통, 소비되는 것이 옳은 지가 나는 의심스럽다. 학폭 추방이란 명분에 대한 집착이 무고한 희생자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얼마 전 중국의 ‘분노청년’을 분석한 책을 기사로 소개했다. 점점 두드러지는 중국의 맹목적 중화주의, 외국에 대한 극단적 배타성과 폭력성 등의 선봉에 있는 일단의 젊은이들을 분석한 책이었다. 랴오바오핑이라는 지식인은 분노청년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가짜 정보인지 진짜 정보인지 알지 못한다. 피는 충분히 뜨겁고 이성은 충분히 부족하며, 사람을 욕할 때는 충분히 악독하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분명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피아를 식별해 서로에게 저주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내는 데 점점 익숙해져 가는 한국사회 누군가들과 겹쳐 보인다.

분노청년의 가장 두드러진 면모는 ‘애국 독점’의 태도라고 한다. 애국이란 명분 아래 법과 인권은 능욕해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애국’을 ‘정의’로 바꾸어 한국사회를 들여다본다. ‘우리만 옳다’는 ‘정의 독점’의 태도가 한국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강구열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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