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뺄게요. 먹고살기도 힘든데..신고하실 거예요?"

권구성 2021. 3. 2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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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강북구의 한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 정차된 한 승합차에 다가가 "정차하면 안 되는 구간"이라고 말하자 신경질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학교 앞의 한 가게 주인은 "등하교 시간에 정차 차량이 많아서 늘 조마조마하다"고 전했다.

취재진이 최근 경찰과 함께 강북구 소재 초등학교 5곳의 스쿨존 실태를 동행취재한 결과 곳곳에서 불법 주정차 차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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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주정차·과속 여전 아직도 위험한 '스쿨존'
'민식이법 1년' 바뀌지 않은 안전
강북 5곳 가보니 안전불감 만연
차량 3대 중 1대꼴 속도 미준수
단속 카메라 3대 중 1대 미인증
활용 못하고 2022년에 모두 작동
전문가 "구조적 개선책 마련을"
22일 오전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초등생 사망 사고''가 발생한 인천시 중구 한 초등학교 앞에 목재를 실은 화물차가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아 뺄게요. 안 그래도 먹고살기도 힘든데… 신고하실 거예요?”

22일 서울 강북구의 한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 정차된 한 승합차에 다가가 “정차하면 안 되는 구간”이라고 말하자 신경질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주정차가 금지된 ‘황색복선’ 구간인 이곳에는 학원과 교회 등의 승합차가 줄지어 정차해 있었다. 주변을 지나던 아이들은 차도와 인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갔지만 운전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인근의 다른 초등학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화물차 여러 대가 좁은 골목길을 차지하고 있는가 하면, 후문 바로 앞에는 승합차가 떡하니 주차돼 있었다. 학교 앞의 한 가게 주인은 “등하교 시간에 정차 차량이 많아서 늘 조마조마하다”고 전했다.

스쿨존 내 교통사고를 막기 위한 ‘민식이법’(개정 도로교통법)이 25일 시행 1년을 맞지만 학교 앞은 여전히 어린이들에게 위험한 환경이었다. 어린이들의 시야를 막는 불법 주정차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문 채 서 있었고 과속단속카메라 3대 중 1대는 작동조차 되지 않는 깡통 카메라인 것으로 집계됐다. 시민들의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상황에서 단속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 공분 속에 제정된 민식이법을 무색하게 하는 부끄러운 현장이었다.

취재진이 최근 경찰과 함께 강북구 소재 초등학교 5곳의 스쿨존 실태를 동행취재한 결과 곳곳에서 불법 주정차 차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찰에 적발된 운전자 대다수는 스쿨존에선 주정차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잠깐 세워 두는 건데 뭐가 문제냐”고 따졌다.
사진=연합뉴스
초등학교 앞에서 달리는 차량의 속도를 측정한 결과 3대 중 1대꼴로 속도 제한(시속 30㎞)을 지키지 않았다. 지난해 민식이법이 통과되면서 스쿨존에 과속단속카메라 설치가 대폭 확대됐지만, 3개 중 1대는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의 경우 스쿨존 과속단속카메라는 2019년 기준 100대도 안 됐지만, 지난해에만 484대가 설치됐다. 그러나 이 중 134대(27.7%)는 도로교통공단의 인증을 받지 못해 작동이 되지 않는 상태다. 이밖에 △전남 220대 중 170대(77.3%) △광주 173대 중 89대(51.4%) △경남 283대 중 107대(37.8%) △세종 98대 중 35대(35.7%) 등도 인증을 받지 못한 깡통 카메라였다.

단속카메라가 상시 작동하려면 도로교통공단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공단 직원이 카메라가 설치된 장소에서 해당 카메라가 차량을 적발할 수 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하는데 지난해 단속카메라 설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인력 부족으로 인증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 공단 측의 설명이었다. 서울의 경우 인증 전담 인력은 9명으로, 이들이 하루에 인증할 수 있는 카메라는 2∼3대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서울시는 연말까지 400여대를 새로 설치해 스쿨존 단속카메라 목표치를 채운다는 계획이다. 그렇지만 인력 부족 탓에 설치된 카메라들은 내년에야 모두 작동될 전망이다. 지자체가 단속카메라 설치 실적 채우기에만 급급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스쿨존 단속이나 처벌을 강화하는 것 못지않게 구조적인 개선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교통시스템학과)는 “시민의식이나 단속에 기대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학교 주변을 보행자에 친화적인 환경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스쿨존 주변의 도로 폭을 줄여 차량 유입을 줄이거나, 도로의 과속방지턱을 늘려 차량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조치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구성·이지안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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