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뮤지션의 솔직한 자화상, 김형환 '솔직히 말해봐'[김성대의 음악노트]

2021. 3. 2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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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스타일(장르)마다 듣는 포인트가 따로 있다. 프로덕션 차원의 사운드 디자인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음악이 있는 한편 연주와 가창, 편곡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음악이 있다. 때론 멜로디나 리듬보다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가사)가 더 중요한 음악도 있다. 아마 말(詩) 자체가 정체성일 랩이나 통기타 한 대에 상념을 맡기는 포크가 그럴 것이다.

김형환의 ‘솔직히 말해봐’는 음악보다 가사가 더 절실한 앨범이다. 그는 지금 무언가에 화가 나 있고 또 누군가를 그리워 하고 있다. 사람들이 애써 내세우는 고결과 심오와 순수를 덧없는 “가식”이라 일갈하는 첫 곡 ‘솔직히 말해봐’는 전자에, 가버린 사람을 떠올리는 ‘아껴주려 해’는 후자에 수렴된다.

네 번째 곡 ‘밑지는 장사’는 어떤가.

“5년 전 발매한 음원 / 이번 달 저작권료 2원 / 제작비 거진 200만원 / 저작권협회 가입비 20만원”

2021년을 사는 언더그라운드 싱어송라이터 김형환은 저 절망적인 경제 지표(저작권료 2원!)를 들며 이건 정말 “누가 봐도 밑지는 장사”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 허황된 ‘한류’라는 개념을 앞세운 무슨무슨 ‘콘텐츠 구축’이라는 공익적 명분 아래서만 반짝 조명을 받고 평소엔 헌신짝처럼 방치되는 다수 인디 뮤지션들의 고달픈 현실을 김형환은 “애초에 돈 벌려고 한 건 아니지만 (결국엔) 벌자고 하는 장사 아닌 장사”라 뇌까린다.

이 모순과 절망의 공존. 그래도 김형환은 “후회는 하지 않”는다며 계속 기타를 친다. 노량진 고시원으로 가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려는 ‘현실 직시’가 음악이라는 꿈을 쫓는 삶보다 나을 건 없으리란 얘기다. 이처럼 작품 절반 가까이를 넋두리 하는데 쏟은 김형환은 ‘테돌이’라는 곡에서 이제 장르를 건들기 시작한다. 가령 반바지 같은 사각팬티를 입고 소파에 누워 하루종일 텔레비전 채널만 돌리는 “테레비왕” 아버지를 묘사한 ‘테돌이’는 우리네 1940~50년대 트로트를 느긋하게 재연하고 있고, 담배 끊은 이들을 “민폐 끊고 애국하다 만 사람들”이라 노래하는 ‘담배 블루스’는 먼 옛날 미국 델타 블루스 향수를 은근히 뿜어낸다.

또 브래드 피트가 투자하고 정이삭 감독이 연출한 화제작 ‘미나리’를 닮은 ‘우리농장’이 뭉게뭉게 낭만 구름을 띄우고 나면 알 리 없는 사람 속을 노래한 ‘모르겠다’가 그 구름 아래 털썩 주저 앉는다. 물론 마지막 곡 ‘45번 국도’는 앞서 들은 ‘다 필요 없어’에 나온 “그대”와 같은 그대를 만나러 가는 길일 터. 이렇듯 화자는 놓칠 뻔 했던 자신의 마음을, 기억을, 관찰을 노래를 통해 되찾고 떠올려 우리와 함께 바라본다.

통기타 한 대와 가사(노래). 이것이 전부다. 지금 김형환이라는 사람에게 중요한 건 노래의 기교나 연주의 현란함, 화려한 편곡보다 설렁설렁 기타치며 하고 싶은 말을 세상에 전하는 일이다. 전성기라 일컫는 1970년대를 지나 지난 20년 가까이 이 땅의 포크 뮤지션들이 해온 방식대로 김형환은 노래 부르고 기타 친다. 단, 거기엔 간간이 찌르고 들어오는 사회의식이 있다. “믿는대로 보고 듣고 믿는대로 말을 하”는 인간 군상을 애틋하게 바라본 ‘믿는대로’에서 그의 날선 노래는 언뜻 과거 김태춘이나 근래 정밀아의 그것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물론 “누구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빨갱이라 부르는” 세상에서 이런 목소리는 더 필요하고 더 번져야 하겠다.

[사진제공=KHH]

*이 글은 본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뮤직매터스 필진
대중음악지 <파라노이드> 필진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국내)’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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