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브레이크 고장난 한국 금융시스템

정해용 기자 2021. 3. 2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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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11월 18일.

금융당국은 공모펀드 운용사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전신인 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을 인가했다.

50명 이상 투자자에게 자금을 모을 수 있는 공모펀드 운용사를 인가할 때 금융당국은 대주주의 적격성부터 사회적 신용, 채무 불이행 여부, 신용내역, 전문인력 규모 등을 살펴본다.

그러나 옵티머스펀드를 공모펀드 운용사로 허가하고 보증해준 금융당국은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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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11월 18일. 금융당국은 공모펀드 운용사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전신인 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을 인가했다. 이후 두 차례 사명 변경을 거친 옵티머스자산운용은 당국의 인가를 받아 있지도 않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며 사모펀드를 팔았고, 결국 5000억원이 넘는 투자자 손실이 발생했다.

50명 이상 투자자에게 자금을 모을 수 있는 공모펀드 운용사를 인가할 때 금융당국은 대주주의 적격성부터 사회적 신용, 채무 불이행 여부, 신용내역, 전문인력 규모 등을 살펴본다. 투자자들은 당국을 믿고, 인가 절차를 끝낸 회사가 만든 펀드는 투자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인가가 일종의 보증인 셈이다.

그러나 옵티머스펀드를 공모펀드 운용사로 허가하고 보증해준 금융당국은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다. 금감원은 "인력이 부족해 모든 운용사의 펀드 운용실태를 관리·감독할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반면 NH투자증권 등 판매회사, 자금을 관리하는 수탁은행인 하나은행, 사무관리회사인 예탁결제원까지 줄줄이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는 금감원으로부터 3개월 직무정지라는 중징계를 통보받았다.

민간 금융회사들은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책임을 진다. 기업을 증시에 상장하는 기업공개(IPO) 과정을 살펴보자. IPO 작업이 마무리되면,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가 해당 기업 주식을 언제든지 사고팔 수 있다. 이 때문에 IPO 주관 증권사 직원들은 상장 수개월 전부터 대상 기업에 상주하며 감사보고서, 이사회 의사록 등을 샅샅이 훑어 본다. 증권사 직원이 IPO 예정 기업으로 수개월간 매일같이 출근하며 조금이라도 법률적으로 문제가 될 부분이 있는지를 살피는 경우도 허다하다.

제대로된 실사를 하지 못하면 무거운 책임도 뒤따른다. 지난 2013년 분식회계로 상장폐지되며 약 2100억원의 투자자 손실을 일으킨 중국고섬공고유한공사의 상장 주관사들은 부실 실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국으로부터 각각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2017년 11월 상장된 후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의 성분을 허위로 기재해 거래정지 상태인 코오롱티슈진 상장 주관사였던 증권사들은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압수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투자자 입장에서 성이 차지 않을 수 있는 조치지만, 금융당국은 이마저도 없다. 금융당국은 옵티머스나 라임 펀드 사태의 경우처럼 사고가 터지면 늘 인력 부족 등을 탓하며 안일하게 대응해 왔다. 금융투자협회에 등록된 공모·사모펀드 운용사는 2015년말 98개사에서 지난해 말 319개사로 3배 이상 늘었다. 모두 금융당국이 인가를 내주거나 자기자본 등 기본 요건만 보고 등록을 허용해준 곳들이다.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은 평소 "포뮬러1 자동차가 최고 속도를 낼 수 있는 이유는 엔진이 좋아서가 아니다. 브레이크가 잘 들기 때문에 그렇게 달릴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을 임직원들에게 자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속 수백 킬로미터로 달리는 경주용 자동차가 마음 놓고 고속주행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는 성능 좋은 브레이크가 있어서다.

인·허가권과 규제, 제재권을 모두 가진 금융당국은 한국 금융시스템의 브레이크와도 같은 존재다. 공모펀드를 운용하라고 허가를 내준 곳이 사모펀드를 모아 부실채권에 투자하고 수천억원 이상의 손실을 냈음에도 당국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현실을 보니 한국 금융시스템의 브레이크는 고장 난 것 같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제2, 제3의 금융 사고는 계속될 것이 자명하다.

[정해용 증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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