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긴 달라요".. 80년대생 학부모의 등장, 학교 바꿀까?
‘80년대생 학부모’가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았다. 자유분방함으로 대변되는 밀레니얼 세대인 1980년대생이 학부모가 됐다. 교육계 안팎에선 코로나로 인해 학교교육에 학부모의 비중이 커진 현실에서, 초등 학부모의 다수를 차지하는 80년대생의 특성이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편집자
경기도 수원의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경력 25년의 A교사는 본지 인터뷰에서 “확실히 달라졌다”며 사례를 소개했다. A교사에 따르면, 새 학기가 되면 학부모들은 대체로 학습 분위기나 교육내용을 물어오기 마련인데 최근엔 돌봄·미세 먼지·학교폭력과 같은 ‘안전’에 관한 문의가 주를 이룬다. 코로나19 영향도 무시할 수 없지만, 변화의 핵심은 질문이 점점 개인적이고 구체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A교사는 “예전엔 ‘교실 분위기 어때요?’ 정도였다면, 요즘엔 ‘우리 아이가 학습진도를 잘 따라가고 있는지’ ‘교실은 미세 먼지에서 얼마나 안전한지’처럼 자녀 개인에 대한 구체적인 문의가 많아졌다”며 “80년대생들이 개인의 인권을 강조해온 세대라 그런 것 같다”고 분석했다.
본지가 전국 14개 초등학교에 ‘새 학기 달라진 학부모 문의’에 관해 의견을 물었더니, 학년과 관계없이 학습보단 학교생활 적응이나 학사일정, 보건·위생에 관한 문의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낯선 환경에서 적응은 잘하는지’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지’ 등 학습 외적 요인이 궁금한 것이다. 물론 학습을 간과하진 않지만, 교육의 양상은 이전 세대와 다르다. 이처럼 80년대생이 학교교육에 기대하는 건 지식보단 자녀의 안전(돌봄) 혹은 창의·인성·공동체 등 ‘사람다움’에 관한 역량이다. 이런 교육의 기대를 모바일 메신저나 학교 알림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담임교사나 학교에 그때그때 전달한다. 담임교사와 자주 연락을 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겉보기엔 자기 주장을 밀어붙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체로 고민이 많고 이타적 사고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경향도 보인다. 경기지역의 한 천문대에서 근무하는 김상재(39)씨 부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달 초 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 아내(39)와 언쟁을 벌였는데 ‘공부·생활습관’을 두고 교육방식이 갈렸기 때문이다. 김씨는 자율적으로 키우자고 하지만, 아내는 초 1부터 학습습관을 잡아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부부는 수차례 토론하며 자녀교육의 본질을 고민했다. 처음엔 여느 학부모처럼 언어나 수학, 과학 등 정규과목의 학습역량을 주제로 이견을 보였다면, 대화가 진행될수록 ‘배움의 즐거움과 어울림의 가치’ 등 부모보단 아이의 관점으로 질문이 옮겨갔다.
1983년생 동갑내기 김씨 부부는 80년대생의 전형성을 보여준다. 이견이 팽팽히 맞서다가도 이내 해법을 함께 고민하면서 합리적 대안을 찾아간다. ‘왜’라는 질문 속에서 차이점을 찾고 본질적 물음을 중심으로 논리를 견주어본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나 회사동료, 학부모 커뮤니티에서 얻은 정보나 깨달음을 바탕으로 배우자를 어떻게 설득할지 곰곰이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이런 모습은 전후 세대나 경제개발세대 특유의 ‘빨리빨리문화’ 혹은 ‘결과중심사고’와 결을 달리한다.
특히 학교폭력이나 친구 간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은 눈여겨볼만하다. 친구와 다툼이 생기면 학교를 찾아가 교사와 친구 당사자에게 사과부터 요구하던 기성세대의 일부 학부모들과도 차이가 있다. 갈등의 원인을 먼저 파악하고 해법을 고민한 후 자기 아이가 직접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조언하는 편이다. 부산 수영구의 한 초등학교 B교감은 “자기 아이를 보호하면서 잘잘못을 따지던 이전 세대 학부모들과 달리, 최근엔 정황을 충분히 들어보고 (가해자든 피해자든) 상대방 아이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쪽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바라봤다. 여기엔 작은 다툼이나 갈등도 결국엔 상대방과 풀어야 할 아이 자신의 문제, 나아가 자기 인생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도록 가르치려는 80년대생 특유의 교육관이 깔렸다.
80년대생들이 자녀교육에 관해 학업성취 못지않게 ‘창의’ ‘인성’ ‘공동체’ 같은 다소 추상적으로 보이는 교육목표를 중시하는 이유는 그들의 산 경험이 바탕에 있다. 70%를 웃도는 고등교육 이수율을 기록한 세대로 고학력자이지만, 동시에 패러다임 전환기를 살아왔다. 학력·학벌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단 걸 몸소 겪은 세대다. 지난해 경기도교육연구원이 펴낸 연구보고서 ’1980년대생 초등학교 학부모의 특성'에서도 “이전 세대의 연장선이 아니라, 새로운 사고와 판단기준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영위하는 세대로 간주해야 한다. ‘성적’을 가장 중시하는 일반적인 학부모들의 생각과 차이가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1980~89년 출생자는 현재 32~41세로 그들의 자녀는 초·중·고교에 고르게 분포한다. 국가통계포털 ‘성 및 연령별 추계인구’에 따르면 올해 30~ 39세 인구는 약 705만명으로 추정된다. 초등 저학년 학부모들이 결혼했을 2011년 기준으로 당시 평균 결혼연령이 30.5세임을 감안하면, 현재 초등 학부모 대다수가 1980년대생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직장과 사회에서 중간관리자급으로, 80년대생 이전과 이후 세대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조정자 역할을 맡고 있다. 유년기의 아날로그 감성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인공지능사회를 맞이하는 인식도 적극적인 한편 신중함을 기한다. 이 같은 80년대생의 특성은 자녀교육에 오롯이 반영되고 있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도 그간 보조자에 머물렀던 학부모에게 학교교육의 주체로서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앞선 보고서 역시 “80년대생 학부모의 성향을 이해하고 그들이 어떤 교육을 원하는지 알아간다면, 코로나19로 인한 학교교육의 혼란과 교육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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