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현실화하는 '백신의 정치화'
中 '백신 여권' 자국 제품 한정
美·EU도 백신 활용 이기적 행태
팬데믹 속 인류애 발현 욕심인가
중국 정부로부터 며칠 전 외국 특파원들에게 연락이 왔다. 외국 특파원 대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신청받겠다는 것이다.

만약 아스트라제네카나 화이자, 모더나 등의 백신이라면 고민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의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등이 이 백신 중 하나를 접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도 공식적으로 접종 의사를 밝혔다. 어느 백신이든 불안감이 있는 상황에서 지도자들이 나서는 것은 사회적 불안을 낮추는 데 일정 부분 효과가 있다.
반면, 백신의 효용성을 고려하면 맞아야 할 듯도 싶다. 우선 백신을 접종하게 되면 중국 본토 내 이동에 있어 제약이 적어질 것이다. 향후 취재를 위해 홍콩, 마카오 등을 오갈 때도 자가격리가 면제될 가능성이 있는 등 현재보다 이동이 더 편해질 듯싶다. 지난 1년간 중국 도착 후 2주간 격리, 수차례 코로나19 검사 등을 겪으며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체감했다.
개인에게 ‘일상으로의 복귀’를 가능하게 해주는 백신 접종은 국가로 보면 나라의 명운과 직결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 전 세계 경제는 최악을 기록했다. 여행업은 멈춰 섰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다른 업종도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가별로 보면 지난해 주요 국가 중 중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라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그나마 작년엔 다른 국가들도 다 같이 힘들다는 점에서 상대적 박탈감은 덜했다.
문제는 올해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일부 국가들이 백신을 활용해 국제사회에서 자국 입지를 높이거나 이익을 취하는 등 ‘백신의 정치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은 ‘백신 여권’을 추진하며 대상 백신을 자국 제품에 한정했다. 입국 비자 발급을 완화하고, 향후 격리가 면제될 수 있는 ‘백신 여권’을 자국 백신 접종자에게만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백신을 승인하지 않은 국가를 대상으로는 자국 백신 접종 시 비자 발급을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한국, 일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경제적으로 밀접한 국가에 대해 자국산 백신 도입을 ‘강요’하는 행위로 비칠 수 있다. 중국 외교부는 최근 “백신 민족주의와 면역 장벽을 만드는 것은 물론 백신을 정치화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반대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중국이 앞장서 ‘백신장성’을 세우고 나선 모양새다.
유럽도 큰 차이가 없다. 유럽연합(EU)은 백신 여권을 추진하면서 유럽의약품청(EMA)이 인정한 백신만 허용했다. EMA는 중국과 러시아 등의 백신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회원국이 각자 다른 백신을 승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권은 허용했다. 얼마 전까지 한 식구였던 영국에서 EU로 보내는 백신 공급이 줄자, EU는 영국으로 수출하는 백신 공급 차단을 경고한 바 있다. ‘백신의 정치화’를 피해야 한다고 말한 국가들이 제일 앞장서는 형국이다.
미국 등 주요국들이 백신을 선점하면서 우려됐던 국제사회에서의 ‘백신의 정치화’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백신 접종과 치료제 투약이 늘면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은 줄어들겠지만, 국가 간 이기적 행태는 되레 늘 듯싶다. 절박할 때 본성이 부각되는 법이다. 인류가 처음 접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국면에 극한의 이기주의보다 인류애가 발현되길 원하는 것은 욕심일까.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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