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리뷰] 흑백이 품은 다채로움..'자산어보'의 담백한 멋

반서연 2021. 3. 2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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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현재를 반추하는 감독의 시선은 여전히 예리하다.

그렇게 흑백필름은 어느새 단조로움이 아닌 다채로움을 품고 먹먹한 울림을 준다.

'자산어보'는 '왕의 남자' '사도'를 만든 이준익 감독의 열 네 번째 작품이다.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낯선 정약전이라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저서 자산어보의 집필 궤적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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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현재를 반추하는 감독의 시선은 여전히 예리하다. 그리고 그 통찰은 작품과 함께 진화를 거듭한다. 그렇게 흑백필름은 어느새 단조로움이 아닌 다채로움을 품고 먹먹한 울림을 준다.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다.

도성에서 수로로 900리에 이르는 세상의 끝 흑산도. 명문 사대부이자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설경구)은 신유박해 후 이 외딴 섬에 유배를 온다. 홍어부터 돗돔까지, 도성에선 보지 못한 바다 생물에 매료된 그는 어류도감 집필을 결심하고 마침 마을에 바다를 훤히 알고 있는 젊은 어부 창대(변요한)를 만나 도움을 구한다.

하지만 창대의 반응은 차갑다. 천주교를 믿는 '사학죄인'을 도울 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한다. 정약전은 창대가 홀로 글공부를 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거래를 제안하고, 이를 창대가 받아들이면서 어류도감 '자산어보' 제작에 속도가 붙는다. 두 사람 역시 신분과 나이를 뛰어넘어 스승이자 벗이 되고 참된 삶의 가치를 깨달아간다.

'자산어보'는 '왕의 남자' '사도'를 만든 이준익 감독의 열 네 번째 작품이다. 감독의 섬세한 시선은 이번에도 중심보단 주변에 가 닿았다. 윤동주 옆 송몽규를('동주'), 박열 옆 가네코 후미코('박열')를 꺼냈던 감독은 정약용 옆 정약전, 나아가 창대라는 인물에 핀을 갖다대고 시대를 폭넓게 조명한다. 덕분에 백골징포, 황구첨정 등 빛나는 영웅이 아닌 평범한 백성의 고달픈 삶이 빠짐없이 담겼다.

역사 고증과 창작 요소가 적절히 섞인 영화는 신선하다. 전쟁이나 정치사와 같이 사건을 서사의 동력으로 삼는 보통의 사극과 다르다.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낯선 정약전이라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저서 자산어보의 집필 궤적을 따라간다. 이 과정은 생소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한다.

200년 전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지만 자연스레 스며든다. 현실에 두 발을 댄 연출과 연기가 큰 역할을 했다. 차진 현지어 구사부터 음식까지 당대의 생활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생생하다. 류승룡부터 조우진, 김의성까지 화려한 우정출연 라인업도 한몫한다. 유명세보다 낯선 소재가 갖는 허들을 무너트린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정약전과 자산어보에 친숙함을, 전개가 더디게 느껴질 때쯤 리듬감을 더한다. 영리한 선택이다.

메시지를 담는 그릇으로서 흑백이 주는 힘은 세다. 빛과 어둠이 만들어낸 담백하면서도 선명한 전달은 영화를 곱씹을 수 있는 공간을 열어둔다. 정약전과 창대, 두 사람의 우정부터 진정한 삶의 가치까지 어쩌면 컬러일 때보다 더 다양한 색을 볼 수 있다. 색이 없는 것 같지만 많은 색을 담고 있는 자산,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흑산과 닮았다. 여백이 주는 상상력은 관객이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귀한 색이다.

극적 연출 없는 담백한 전개에도 여운이 남는데 배우들의 역할이 컸다. 시선을 분산할 색채감도, 화려한 의상도 없지만 연기력만으로 극을 가득 채운다.

무엇보다 설경구는 명불허전 존재감을 드러낸다. 첫 사극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제 옷을 입는 듯 단숨에 관객을 200년 전 그날로 이끈다. 올곧은 신념을 지닌 사대부부터 호기심 어린 학자의 면모까지 섬세하게 표현해 몰입을 더한다. 영화의 메시지는 그의 입을 빌어 나와 힘을 얻는다.

4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변요한의 변신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평생 살아온 흑산도를 벗어나기 위해 글공부를 하는 청년 어부 창대를 연기했다. 깊은 감정 연기와 수준급의 어류 손질 실력, 능청스럽고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연기가 인상적이다.

러닝타임 126분. 12세 관람가. 31일 개봉.

YTN Star 반서연 기자 (uiopkl22@ytnplus.co.kr)

[사진제공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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