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은 몇년 못가 쓰레기 돼, 세계 최초..나만의 개념 작업"
돌이 노끈에 묶이다니, 묶인 돌은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듯하다.
황금빛 여체(女體)도 온몸을 노끈이 휘감고 있다.
어쨌든 나의 줄 작업(作業)은 한 매듭 한 매듭 덩리이 응결을 위하여 묶고, 감으며, 풀어주며 애를 태울 것이며 이러한 도전은 금방 새로운 것을 토해낼 것 같은 기쁨과 슬픔이 엉켜있는 채찍에 쫓기며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소리칠 것이다. 모든 것을 버려라, 그러면 미지(未知)의 세계가 열리고 아름다움이란 그것을 버릴 때 완성된다고….
-이승택, '내 비조각의 근원', 『공간』, 155, (5월 1980), pp. 38-39.
이승택 작가는 "'줄 묶기'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바꿔내는 작업이다. 노끈을 감아 딱딱한 돌이 물렁물렁하게 바뀌어지는 것으로, 세계 최초다. 우리도 외국 사조에서 유행한 걸 흉내내곤 했는데, 나는 그 유행이 몇 년 못 가 쓰레기가 된다고 생각했다. 노끈을 감는 등 남이 하지 않는 나만의 개념적인 작업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끈에 묶인 살이 실제처럼 움푹 들어간 듯 보이는 이 작품은 작가의 '묶기' 기법을 대표하는 작업이 됐다. 우리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이승택(88)의 시대를 앞서간 작품들이다. 이승택은 1950년대 이후 현재까지 설치, 조각, 회화, 사진, 대지 미술, 행위 미술을 넘나들며 왕성한 실험과 도전을 계속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이승택의 60여 년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전을 28일까지 개최한다. 전시명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은 모든 사물과 관념을 뒤집어 생각하고 미술이라고 정의된 고정관념에 도전해온 그의 예술세계를 함축한다.
이번 전시는 미술과 비미술의 경계를 허물어온 이승택의 작품 250여 점을 선보인다.
또 돌, 여체 토르소, 도자기, 책, 고서, 지폐 등을 노끈으로 묶는 '묶기' 연작을 통해 사물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바라봤다. 기성 미술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은 1980년 무렵 '비조각'이라는 개념으로 정립된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사회, 역사, 문화, 환경, 종교와 성, 무속 등의 주제를 다루며 퍼포먼스, 대형 설치, 사진 등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전시된 작품 중 어떤 작품이 가장 좋은지 묻자 그는, 물을 흘러내리게 하여 그 변화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대작 '물그림'(1995/2020)을 꼽으며 "세계적인 작품으로, 다른 데에서는 볼 수 없는 작품"이라고 했다.
구순을 바라보지만 우렁찬 목소리로 시종일관 에너지가 넘쳤던 거장은 "이 바람 작품은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거다. 내 나이가 구십이 돼서 몇 년 못산다. 마지막 전시를 여러분이 보고 있는 거다. 영광이다. 이승택의 마지막 전시인 줄 알고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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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곽인숙 기자] cinspai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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