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센과 치히로의 '가오나시'는 3분 만에 만든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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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군용정찰기 중에 지브리라는 게 있거든. 스튜디오 지브리로 하고 싶어."
하지만 세계 애니메이션 팬들이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 전설의 스튜디오는 지금도 지브리로 불린다.
애니메이션 잡지를 만들다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에 참여했고, 현재는 이곳 대표이사다.
지브리가 오랜 시간을 버텨 온 건 콘텐츠뿐만 아니라 조직의 방향을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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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이름을 짓기 위한 회의에서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렇게 말했다. 미야자키는 ‘gibli’라고 알파벳으로 써서 참석자들에게 보여줬다. 다른 이가 “이봐, 정확한 발음은 기블리 아닌가”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미야자키는 “이탈리아 친구가 지브리라고 했다”고 우겼다. 사실 이 알파벳의 정확한 발음은 기블리가 맞다. 하지만 세계 애니메이션 팬들이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 전설의 스튜디오는 지금도 지브리로 불린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탄생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일화다.
이 책 저자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설립자 3인방 중 한 명이다. 그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 곁에서 제작을 지원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맡았다. 애니메이션 잡지를 만들다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에 참여했고, 현재는 이곳 대표이사다. 그만큼 스튜디오 지브리의 비사(비史)를 속속들이 알 수밖에 없는 저자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설립 과정과 제작 뒷이야기를 이 책에 풀어놓았다.
1985년 지브리는 제대로 된 자본금 없이 빚더미에서 출범했다. 사무실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을 정도였다. 설립자들은 일본 도쿄(東京)의 부동산을 전전하다 겨우 작은 사무실을 얻었다. 가장 먼저 만든 작품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성 라퓨타 제국과 그 성을 날아다닐 수 있게 하는 전설의 돌을 둘러싼 모험을 그린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1986년)다. 모험극으로 성공했지만 지브리는 기존의 성공 코드를 답습하지 않는다. 요괴와 어린이가 교류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의 ‘이웃집 토토로’(1988년)로 지평을 넓혀간다. 귀여운 캐릭터 토토로에 대한 열풍이 불면서 토토로 인형이 불티나게 팔렸다. 저자는 “토토로는 두 팔을 들어 만세를 부르고 싶을 만큼 지브리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고 환호한다.
지브리는 매혹적인 캐릭터와 풍부한 색감으로 세계를 사로잡았다. 또 자연과 인간이 공존해야 한다는 철학을 담아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대중성과 작품성,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가장 눈에 띄는 건 ‘천재성’이다. 초등학생 치히로가 신들이 찾는 목욕탕에서 기이한 일들을 겪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년)에 등장하는 캐릭터 가오나시는 3분 만에 탄생했다. 미야자키는 회의 도중에 가면을 쓴 요괴처럼 생긴 기묘한 캐릭터를 쓱쓱 그려냈다. 그 캐릭터가 목욕탕에서 난동을 부린다는 스토리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저자는 “놀라운 집중력”이라고 평가한다.
지브리가 오랜 시간을 버텨 온 건 콘텐츠뿐만 아니라 조직의 방향을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열악한 애니메이션 업계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1990년대 초반부터 스태프를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당시에는 흔치 않던 직장 내 어린이집도 지었다. 여성 스태프에겐 넓은 화장실을 제공하는 등 세심하게 배려했다.
책 말미에는 3인방이 나눈 대담이 실려 있다. 여기서 미야자키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소수 정예라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자신에게 없는 재능을 가진 사람은 많지만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소수정예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스스로 천재임에도 공동 작업을 강조하는 그의 태도가 30년 넘게 지브리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원동력 아닐까.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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