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튤립 광풍과 부동산 광풍

강수돌 전 고려대 교수·세종환경운동연합 난방특위 위원장 2021. 3. 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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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630년대 네덜란드엔 ‘튤립 광풍’이 있었다. 원래 터키가 원산지인 튤립이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귀족과 부유층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튤립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은 여인들의 환심을 사려는 귀족들에게 탐욕을 부채질했다. 튤립에도 계급이 있어 황제·총독·제독·영주·대장 등 별칭이 붙었다. 희귀종일수록 경매시장에서 보석처럼 가격이 치솟았다. 1636년 내내 오르던 튤립 알뿌리의 가격 상승세는 1637년 1~2월에 절정에 달했다. 한 달 안에도 몇 십 배나 올랐다. 당시 최고가의 ‘황제’ 튤립은 2500길더였는데 돼지 8마리, 황소 4마리, 양 12마리, 밀 24t, 치즈 450㎏, 옷감 108㎏을 다 사고도 남을 돈이었다.

강수돌 전 고려대 교수·세종환경운동연합 난방특위 위원장

그러나 모든 일엔 흥망성쇠가 있는 법! 이 광풍에 일부 서민들까지 ‘영끌’ 투기에 나섰으나 1637년 2월 이후 튤립 가격은 급속도로 추락했다. 사람들이 ‘단순한 꽃을 그리 비싸게 살 필요가 있나?’란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 일단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도미노처럼 전체가 무너졌다. 세계 최초의 시장거품 붕괴다.

이제 21세기 대한민국은 부동산 광풍에 휩싸였다. 황제 튤립에 해당하는 부동산은 당연히 서울, 그것도 강남이다. 황제는 아니라도 총독·제독·영주·대장급의 땅 역시 돈이 된다. 3기 신도시를 둘러싸고 불거진 ‘LH 투기 사태’ 역시 돈 되는 땅을 두고 벌어지는 게임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부동산 적폐 청산”을 강력 추진하겠다고 했다. 투기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에게 자괴감이나 박탈감을 일으켜 삶의 의욕도 죽인다. 나아가 부동산 가격 인상으로 물가를 폭등시키며 삶의 질을 저하한다. 전국 농민들은 피땀 흘려 일하고도 인건비조차 뽑기 어려운데, 농지나 임야 투기로 시세차익을 얻는 자들은 너무나 쉽게 일확천금한다.

그렇다. ‘튤립 공황’처럼 거품이 한꺼번에 터지기 전에, 부동산 광풍을 서서히 잠재워야 한다. 다양한 제안과 의견이 있지만 여기서는 세 측면만 주목해 보자.

첫째, 공직자들 특히 개발정보 접근성이 높은 공직자들이 그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 불로소득을 얻는 걸 제도적으로 차단하자. 이해충돌방지법이나 부패방지법이 긴급 수단이다. 실현된 불로소득은 그 몇 배를 환수하자. 공소시효도 없애자.

둘째, 일반인들도 투기·난개발·불로소득을 추구하지 못하게 하자. 부동산거래신고법(불법전매·다운계약), 농지·산림관련법(가짜농민·직불금·산림훼손), 국토계획법(편법개발), 공정거래법(투기조장·허위매물), 특가법(사기·횡령) 등 법·제도를 철저히 적용하자. 역시 불로소득 징벌 과세와 공소시효 폐지가 필요하다. 전국의 공인중개사와 양심 시민이 수상한 계약 신고 시 포상을 하자.

셋째, 건설사와 기획부동산, ‘토건 마피아’의 유착관계를 발본색원하자. 물론 건축미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주거지나 도시설계, 마을 만들기에 참여하는 회사도 있다. 반면, 상당수는 서류 조작과 공직자 매수, 폭력과 협박 등을 통해 고수익을 얻는다. 경찰·검찰·국수본·공수처 등 사회 정의를 지향하는 공권력의 역할이 막중하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법과 제도, 감시와 처벌로 21세기 대한민국의 부동산 광풍이 모두 사라질까. 부동산 적폐 청산이 제도적으로 잘 이뤄지길 바란다. 하지만 그 제도와 사회 전반의 기저에 지하수처럼 깔린 ‘교환가치의 지배’에 주목하지 않으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꼴이 된다.

과연 교환가치의 지배란 무엇인가. 이것은 정치·경제, 사회·문화, 교육·종교 등 우리 삶의 전반이 교환가치, 즉 돈벌이 원리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일례로, 국회의원 300명 중 과연 몇 퍼센트가 돈과 권력이 아닌 참 민주주의를 위해 일하는가. 살림살이를 뜻하는 경제는 밥·옷·집 등 민생을 잘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밥·옷·집을 인질 삼아 돈벌이를 한다. 아이들 교육도 참된 자아발견과 사회기여를 위한 배움이 아니라 비싼 노동력 상품을 만들어 돈·권력 추구 수단이 됐다. 종교기관마저 ‘비즈니스’가 돼 버렸다. 이 모두가 교환가치의 지배다.

요컨대 땅이나 집은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살림살이 터전이다. 더불어 행복한 살림살이를 위해 개인은, 기업은, 국가는 무엇을 할지 지금부터 원점에서 성찰하자. 제도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나부터’ 바로 서야 한다. 한 사람이 바로 서면 온 사회가 바로 선다. 17세기 튤립 공황의 어리석음을 피하려면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과연 집과 땅이 이렇게 비쌀 필요가 있을까.

강수돌 전 고려대 교수·세종환경운동연합 난방특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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