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천박한 인권 의식 보인 외국인 코로나 검사 소동

2021. 3. 20.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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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구실로 통제늘어, 외국인 차별에 각국 항의
친부 찾는다고 100여명 DNA 검사도 인권 침해
민주주의는 인권 증진 과정..역사 퇴행시키나

외국인에 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의무화했던 서울시가 비난 여론이 일자 권고사항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서 서울시는 17일 외국인노동자의 코로나19 검사를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을 31일까지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튿날 사이먼 스미스 주한영국대사는 “불공정하다”며 한국 정부에 항의했다. 캐나다 등 다른 나라 대사들도 공감을 표했다고 한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도 서울시와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지난 8일부터 비슷한 조치를 시행해온 경기도는 음성 판정을 받은 외국인노동자만 고용할 수 있는 방안까지 검토했지만, 논란이 일자 철회했다. 경북·전남·강원 등 다른 지자체도 유사한 조치를 시행 중이다.

세계 경제 10위권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만약 유럽과 미국·일본 등에서 한국인에게 이런 명령이 내려졌다면 어땠을까. 단순히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내국인과 차별하는 건 명백한 인권침해다.

현 정부의 인권침해 사례는 이뿐 아니다. 지난 1년간 방역을 구실 삼아 시나브로 기본권을 제한해왔다. 방역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5인 이상 모임 금지와 신고·포상금 제도는 전 국민을 감시 영역으로 몰아넣었다. 과도한 역학조사와 신상공개, 고무줄 방역기준으로 기본권이 침해되는 상황이었지만 국민은 팬데믹 극복을 위해 인내해왔다.

그 사이 국가는 개인의 내밀한 사적 영역에 아무렇지 않게 침투했다. 최근 경북 구미의 3세 여아 사망사건을 보자. 아이의 친부가 밝혀지지 않자 경찰은 100여명의 유전자를 검사했다는 말이 나온다. 혐의점을 찾기 어려운 택배기사까지 DNA 조사를 했다는데, 당국의 인권의식은 영화 ‘살인의 추억’이 배경인 1980년대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인권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이들이 집권하면서 인권 증진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컸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유엔이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에 제기한 인권 문제(35차례) 중 절반이 넘는 18건이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졌다.

민주주의 역사는 인권 증진의 과정이었다. 17세기 영국 권리장전에서 18세기 미국의 독립선언과 프랑스혁명으로 이어지는 시민혁명의 근간은 천부인권 사상이다. 자연법에 주어진 인간의 기본 권리는 양도될 수 없으며 사회계약을 통해 시민의 권한을 이양받은 국가는 인권 수호의 의무를 지닌다. 이를 망각한 독재와 전체주의에 맞서 싸운 것이 지난 300여년간 민주주의의 역사다.

문재인 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민주화 운동과 집권 후 적폐청산의 주요 명분으로 내세웠던 게 인권이었다. 검찰 개혁의 목표도 피의자 인권 보호 아니었던가. 그러나 집권세력의 인권의식은 민망한 수준이다. 지난해 12월 여당이 강행 처리한 대북전단금지법은 미 하원이 문제 제기에 이어 청문회까지 벼르고 있다. 내일로 꼭 6개월이 되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1948년 제정된 세계인권선언은 자유와 평등, 생명의 가치를 강조한다. 고귀한 생명을 가진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며 그 권리는 모두가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8·15 축사에서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갖도록 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표현만 보면 인권이 최상위 가치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 말이 진심이라면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와 공공연히 가해지는 차별과 통제부터 조속히 시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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