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권 유린" 포문열자 中 "흑인 학살" 맞불..얼굴붉힌 상견례

신헌철,손일선 2021. 3. 1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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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첫 고위급 회담 난타전
10여분으로 계획된 모두발언
1시간 넘게 거친 설전 이어가
中 "美가 세계여론 대변 안해"
美 "中정부 행동 심각한 우려"
양측 '레드라인' 안넘겠지만
회담 공동성명 채택 어려울듯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양측이 얼굴을 붉힐 정도로 치열한 공방을 벌이며 양국 관계 험로를 예고했다.

미·중 양국은 18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회담 시간만 9시간에 달하는 마라톤 회담을 하고 향후 바이든 행정부 4년의 미·중 관계를 가늠할 탐색전을 벌였다.

미국에서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중국에서는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참여한 '2+2' 형태 회담이었다.

이날 언론에 공개된 모두 발언은 수교 이래 최악의 상황에 처한 미·중 관계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통상 공개 발언에서 주고받던 덕담은 자취를 감추고 시작부터 불꽃이 튀는 신경전이 펼쳐졌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는 신장·홍콩·대만·미국에 대한 사이버 공격과 동맹에 대한 경제적 강압 등을 포함해 중국의 행동과 관련한 우리의 깊은 우려를 논의할 것"이라며 "이 같은 행동은 세계 안정을 유지해온 규칙에 기반한 질서를 위협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설리번 보좌관도 "미국은 중국과의 갈등을 추구하지 않지만 거센 경쟁은 환영한다"며 "우리 국민과 친구들을 위해 원칙을 사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포문을 열었지만 중국의 역공은 더욱 거셌다. 양 정치국원은 무려 15분에 걸친 '장광설'로 미국을 훈계하고 나섰다. 양 정치국원은 "미국은 군사력과 금융 헤게모니를 이용해 다른 나라를 억압하고 있다"며 "국가 안보라는 개념을 남용하고 중국을 공격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을 선동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신장·홍콩·대만 문제에 대한 미국 측 발언에 "미국의 내정간섭을 단호히 반대한다"면서 "미국의 인권이야말로 최저 수준에 있다"고 응수했다.

이번 고위급 회담은 애초 미·중 양측 대표자 4명이 차례로 2분간 모두발언을 한 뒤 비공개 회담으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진 촬영을 위해 10여 분 진행되는 모두발언이 무려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자리를 뜨려는 기자들을 붙잡은 뒤 반박에 나서는 등 마치 공개적인 'TV토론'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이날 양 정치국원은 "미국은 국제적 여론이나 서구 세계를 홀로 대변하지 않는다"며 "이라크·리비아·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적 개입으로 혼란과 불안을 만들고 관세를 부과해 정상적 무역행위를 방해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심지어 미국은 스스로 인권침해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흑인들이 학살당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왕 부장은 "미국은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고질병을 고쳐야 한다"고 비판했다. 왕 부장은 "미국은 중국 내정에 의도적으로 간섭하는 관행을 포기해야 한다"며 "중국과 홍콩 관리에 대한 제재는 손님을 맞이하는 방법이 아니라 모욕"이라고 말했다. 미국 언론은 왕 부장이 블링컨 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가리켜 "중국인의 두 친구"라고 말한 것을 두고 왕 부장이 '굿 캅(좋은 경찰)', 양 정치국원이 '배드 캅(나쁜 경찰)'을 맡은 듯했다고 평가했다.

양국은 이번 회담이 시작되기 전부터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태평양 4개국 간 '쿼드(Quad)'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에 대한 공동전선을 구축했고 곧바로 블링컨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일본과 한국을 방문하며 중국의 신경을 건드렸다. 게다가 회담 직전에 중국 관리들에 대한 무더기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가 중국 인권 문제에 대해 개입 수위를 조절했던 것과 달리 바이든 정부는 공개적으로 신장웨이우얼자치구·홍콩·대만 문제를 거론하며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이날 고위급 회담 공개 석상에서 먼저 중국을 비판한 것은 미국 측이었다.

하지만 비난 수위는 중국 측이 더 높았다. 그간 누적된 불만의 표출일 수도 있지만, 중국 내부 여론을 고려한 의도적인 행동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미국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중국은 내부의 눈길을 끌려는 연극을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나온 듯하다"며 "중국은 외교상 의전을 무시했다"고 비난했다고 ABC 뉴스가 전했다.

미·중 양국 모두 이번 고위급 회담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다. 구체적인 성과를 내놓을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조성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사전 브리핑에서 이번 회담은 고위급 정례 대화의 시작이 아니라 일회성 만남이라고 선을 긋고, 공동성명이 도출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회동의 파국이 양측 모두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는 만큼 '레드라인'을 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 베이징 = 손일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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