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한국인, 그다음엔 경찰 되고파"..모스크바大 출신 러여성 진로 바꾸다

문광민 2021. 3. 1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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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계명문화대 카라살 알리나
모스크바대서 경영학 전공
한국인 남편 만나 진로 급변경
올해 경찰행정 전문대 입학
귀화·외사경찰 동시에 준비
한·러·중 등 6개국어 구사해
"한국인으로 귀화하고 관광경찰이 돼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꿈이에요."

카라살 알리나 씨(Kara-Sal Alina·33·사진)는 올해 대구의 계명문화대 경찰행정과에 입학해서 경찰의 꿈을 키우고 있다. 알리나 씨는 한국어, 투바어(투르크계 언어), 러시아어, 영어, 터키어, 중국어 등 6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 능통자다. 한국에 살며 이 같은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직업으로 그는 관광경찰을 꼽았다. 관광경찰의 주업무는 외국인 관광객의 불편을 해소하고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다.

알리나 씨는 3년 전만 해도 자신이 한국에서 살게 될지 몰랐다. 2018년 3월 대구의 어느 러시아 식당에서 대만 유학 시절 만난 대구 출신의 한국인 친구들과 식사 자리를 가졌던 게 알리나 씨 미래를 바꿨다. 다른 테이블에 있던 남자(지금의 남편)가 알리나 씨에게 다가와 전화번호를 물었다. 알리나 씨는 다음날 러시아로 돌아갔다.

"그때 러시아에서 신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친구들과도 연락하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의 남편은 그 당시 잘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메신저로 대화한 10개월간 매일같이 저를 응원해줬어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게 됐어요."

알리나 씨는 애국가와 '국민의 4대 의무' 등을 외우며 귀화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모스크바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러시아국립인문대에서 도시행정학을 공부하는 등 2개 졸업장을 갖추고 번듯한 직장도 있었지만 그는 삶의 터전을 새로 정했다. 그는 "결혼해서 한국에서 지내게 된 만큼 외국인이 아닌 한국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알리나 씨의 오랜 꿈이다. 2017년 러시아에서 경찰직업시험에 최종 합격해 경찰학교 입교를 앞두고 있었지만 알리나 씨는 포기했다. 러시아에선 경찰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알리나 씨는 2019년 대구의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면서도, 지난해 대학 입학원서를 내면서도 경찰의 꿈을 내려놓지 않았다. 전문대학 중 경찰공무원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곳이라는 소개에 그는 계명문화대 경찰행정과를 택했다. 현재는 학교 '공무원 양성반'에서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외사경찰 특별채용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나이로 서른다섯인 알리나 씨는 학교에서 '언니' '누나'로 통한다. 알리나 씨는 경찰행정과의 첫 외국인 학생인 동시에 가장 나이가 많은 신입생이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학생들이 보기에도 딱딱한 용어들이 가득한 '형법총론' 수업이라도 듣고 나면 알리나 씨는 진이 빠진다. 그는 "공부를 시작하기 전 다짐했다. 잘 이해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알리나 씨에게 공부보다 힘든 것은 날씨다. 올해로 그는 대구에서 세 번째 여름을 맞는다. 그의 고향은 러시아 시베리아 남단에 위치한 투바공화국이다. 연중 최저기온이 영하 50도, 최고기온이 40도인 극단적인 지역이다. 그는 "대구의 여름은 너무 덥고 습하다. 숨 쉬기도 어렵다. 공기가 없다는 느낌마저 든다"고 말했다.

알리나 씨가 생각하는 훌륭한 경찰의 자질은 공감과 소통 능력이다. 그는 외국에서 한국으로 스며든 자신이 한국 사회에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관광경찰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경찰이 된 미래의 모습을 아직 구체적으로 그려본 적은 없다. 그는 남을 돕고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러시아에서 큰 수술을 받기 전 생각이 많았어요. 위험한 수술이라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어요. 지난 인생이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남을 제대로 도와준 적이 없다는 게 가장 마음 아팠어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게 제 인생의 목표이고 행복이에요."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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